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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글 : 예브게니아 아르부가에바 사진 : 예브게니아 아르부가에바

러시아 북단의 기나긴 극야 기간 동안 삶의 방식과 이곳에 얽힌 전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듯하다.

사람들은 당신이 북극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언제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어린 시절 툰드라를 뛰어다녔고 해가 뜨지 않는 극야에는 북극광을 보며 학교로 걸어갔다. 극야란 두 달 동안 해가 뜨지 않는 겨울철 극지의 밤뿐 아니라 이때 느끼는 기분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이다. 나는 오래전 내 고향인 러시아 랍테프해 연안에 있는 외딴 항구 도시 틱시를 떠나 여러 대도시와 외국에서 살았다. 하지만 북극은 계속해서 나를 불러왔다. 나는 북극에서 느껴지는 고립감과 느린 일상이 사무치게 그립다. 북극의 얼어붙은 풍경 속에서 내 상상력은 거침없이 뻗어나간다. 나는 이곳에 있을 때만 진짜 내 모습으로 돌아간다.

내가 찍는 사진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나는 내 사진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각양각색의 꿈을 보여주지만 이 땅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돼 있어 마치 여러 장으로 이뤄진 한 권의 책과 같다고 생각한다. 꿈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저마다 사연을 갖고 있다.

처음으로 들려줄 이야기는 뱌체슬라프 코롯키의 꿈에 관한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바렌츠해의 외딴 반도에 있는 호도바리하 기상관측소의 소장으로 근무했다. 코롯키에 따르면 그곳은 마치 배처럼 느껴지는 좁고 척박한 땅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입고 있는 방수포 재킷을 한눈에 알아봤다. 소련 시절 내 고향에서는 남자들이 누구나 그런 옷을 입었다. 그는 북극 전문가로 북극에서 평생 일했고 지금도 날씨를 보도하는 일을 돕고 있다.
 
호도바리하
조용하고 바람 한 점 없는 어느 날, 뱌체슬라프 코롯키가 호도바리하 기상관측소 인근에 있는 바렌츠해의 좁은 만에서 직접 만든 배를 타고 혼자 떠다니고 있다. 그는 외딴 북극 기지에서 거의 평생을 보냈으며 20년 동안 집이라고 부른 이곳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기상관측소 밖으로 나오니 얼음이 움직이고 갈리는 소리와 바람에 전선이 휘날리며 나는 소리가 들렸다. 기지 안은 고요했다. 코롯키가 내는 발소리와 끽끽거리는 문만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세 시간마다 관측한 내용을 중얼거리며 들락날락했다. “남남서풍, 초속 12m, 돌풍은 최대 초속 18m로 불겠고 점점 강해지겠음. 기압은 하강하고 눈보라가 접근 중.” 그런 다음 그는 지지직거리는 낡은 무선 통신기를 이용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기상 관측 상황을 보고하곤 했다.

어느 날 극야 때문에 온갖 상념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바람에 나는 기분이 울적해졌다. 나는 차 한 잔을 들고 코롯키에게 가서 어떻게 이렇게 매일매일이 똑같은 곳에서 혼자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기대하는 것이 너무 많아요. 그게 정상이겠죠. 그런데 이곳에서는 매일매일이 똑같지 않아요. 오늘 밝게 빛나는 북극광과 바다가 얇은 얼음으로 뒤덮이는 아주 드문 광경도 봤잖아요. 일주일 넘게 구름 뒤에 숨어 있던 별들도 봤죠. 정말 멋지지 않았나요?” 나는 바깥 세상을 관찰하는 것을 잊은 채 내 내면에만 천착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열심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 달간 나는 러시아의 또 다른 얼어붙은 변방에서 기상 자료를 수집하는 젊은 연인 예브게니아 코스티코바와 이반 시브코프와 함께 지냈다. 이들은 시베리아에 있는 한 도시에서 함께 1년을 보냈는데 그 후 코스티코바가 연인인 시브코프에게 북쪽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두 사람은 날씨를 관찰하고 장작을 패고 요리를 하고 등대를 지키며 서로를 돌봤다.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의지할 것은 먼 곳에 있는 헬기뿐이었는데 날씨가 궂을 때는 몇 주간 이륙이 지연되기도 했다.
 
카닌노스
코스티코바와 시브코프가 반려견 드래곤과 함께 물 시료를 채취한다. 백해와 바렌츠해가 만나는 좁다란 카닌반도 주변에 흐르는 바닷물의 염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고립된 탓이 크겠지만 에누르미노 마을에 사는 추크치족 300명은 부족의 전통을 지켜왔다. 그들은 조상들이 그랬듯 땅과 바다에서 난 것으로 먹고 살며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을 신봉했다. 사냥꾼이 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며 마을 사람들은 기나긴 겨울 동안 공동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바다코끼리와 고래를 사냥할 때 연방 정부와 국제기구가 정한 할당량을 지킨다. 나는 에누르미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통나무 오두막에서 바다코끼리를 연구하는 과학자와 함께 2주를 보냈다. 한번은 약 10만 마리의 바다코끼리가 오두막 주변에 나타나는 바람에 우리는 녀석들을 놀래 키지 않으려고 3일간 오두막 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녀석들이 꿈틀대며 싸우는 통에 오두막이 흔들리곤 했다.
 
에누르미노
“바다코끼리들에 둘러싸이자 오두막이 흔들렸어요. 녀석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밤새 잠을 자기가 어려웠죠. 오두막 밖에 있는 바다코끼리들의 체온 때문에 내부 온도도 급격하게 올라갔어요. 이곳은 태평양바다코끼리의 대규모 번식지인데 온난화로 바다코끼리가 올라가 쉴 수 있는 해빙이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약 10만 마리나 되는 녀석들이 떼를 지어 해안으로 올라온 것이었죠.” 아르부가에바가 말한다.
카라해 연안의 딕손에는 세계 최강을 꿈꾸던 소련의 야망이 서리에 묻혀 있다. 전성기를 구가했던 1980년대에 딕손은 러시아 북극권의 수도로 불렸으나 소련이 붕괴된 후 유령 도시가 되다시피 했다. 이토록 엄청난 공을 들인 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딕손에 도착하고 처음 몇 주간 나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고 실망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북극광이 나타나면서 몇 시간 동안 온 세상을 네온 빛으로 물들였다. 초록빛으로 물든 군인 기념비는 메리 셸리의 책 말미에서 결국 고립된 땅 북극으로 도망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보였다. 그 후 북극광이 희미해졌고 마을은 다시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니 마침내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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