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는 빙하를 추적하다
글 : 세라 기븐스 사진 : 아르만도 베가 외 1명
본 협회 소속 탐사대가 가뭄과 온난화로 물 공급 위기에 직면한 칠레 중부 지역에 도움을 주기 위해 안데스산맥의 고지대에 기상 관측기를 설치했다.
칠레 투푼가토산의 해발 5800m를 조금 넘은 지점에서 베이커 페리와 그의 동료들이 이른 아침부터 예기치 않은 눈보라에 휩싸였다. 그들은 맹렬한 바람과 소용돌이치는 눈발에 발이 묶여 텐트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팔래치안주립대학교의 기후학자 페리가 달관한 듯한 태도로 당시를 떠올렸다.
“강렬한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산의 매력 중 하나죠. 이런 곳에 기상 관측기가 별로 없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이고요.” 페리는 말한다.
페리는 지난 2월에 결성된 다국적 탐사대의 공동 대장이다. 이들은 안데스산맥 남쪽에 있는 휴화산인 투푼가토산의 정상 바로 아래에 기상 관측기를 설치하기 위해 코로나19 사태를 무릅쓰고 빽빽이 쌓인 눈을 헤치며 장장 15일간의 트레킹과 등반을 감행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은 이 기상 관측기는 남반구와 서반구에 설치된 것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과학자들이 이 지역의 기후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탐사대는 본 협회가 조직하고 롤렉스의 ‘퍼페츄얼 플래닛 이니셔티브’의 지원을 받았다.
과학자들은 기상 관측기가 수집한 기온, 풍속, 적설량에 관한 자료를 통해 기후변화로 가뭄이 심해지고 산의 급수탑 역할을 하는 빙하나 설괴 빙원이 줄어들면서 칠레 중부와 수도 산티아고가 앞으로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 급수탑들의 하류에는 수백만 명이 살고 있어요.” 영국 러프버러대학교의 기후학자로 탐사대의 일원인 톰 매튜스가 말한다.
투푼가토는 칠레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자 산티아고와 그 인근에 살고 있는 670만 명의 인구에게 물을 공급하는 수계인 마이포강 유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투푼가토 같은 산꼭대기의 강수량에 관해 더 상세한 자료를 갖는다면 정부 관리들은 한 해에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할당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생 동안 빙하와 적설량의 엄청난 변화를 목격해왔죠.” 칠레 정부 산하 빙하관리국의 국장이자 탐사대의 공동 대장인 지노 카사사가 말한다.
카사사에 따르면 건조한 해의 여름 끝 무렵에 마이포강에 공급되는 물의 3분의 2가 현재 줄어들고 있는 빙하에서 나온다.
칠레 중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같은 지역들과 기후가 비슷한 지중해성 생태지역이다. 이곳은 지구상에서 극지를 제외하고 가장 건조한 지대인 아타카마 사막 남부에 있으며 안데스산맥과 태평양 사이에 끼어 있다.
칠레인들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건조한 해에 익숙하다. 2010년도 그런 해였다. 하지만 2011년에도 2012년과 2013년에도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이 되자 의심이 짙어졌어요.” 2014년에도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았다면서 칠레대학교의 기후학자 르네 가로가 말한다. 그는 이번 탐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2015년 가로와 그의 동료 학자들은 그 지역이 그들이 ‘대가뭄’이라 칭하는 시기에 돌입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가뭄은 10년 이상 지속됐다. 2010년 가뭄이 시작된 이후로 해마다 평균적으로 강우량이 예년의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가뭄이 발생한 이후 가장 건조한 해였던 2019년에는 강우량이 정상적인 수준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부 자연의 가변성이 10년간의 총 강우량에 영향을 미치지만 기후변화가 대가뭄의 큰 원인이라는 점은 틀림없다고 가로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기후변화는 건조한 지역을 더욱 건조하게 만들고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 더욱 많은 비를 내리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칠레는 예전에도 가뭄기를 겪었지만 이렇게 지독하고 오래 지속된 적은 없었다. 세계적인 온난화 현상은 한때 비를 불러왔던 기후 양상들을 바꿔놓았고 기후 예측 모델들은 이러한 양상들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마이포강 유역의 산악 급수탑들을 통해 담수를 얻고 있는 칠레 중부 지역에는 불길한 소식이다. 2019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한 논문에 따르면 안데스산맥에서 히말라야산맥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급수탑들이 기후변화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2년 전 페리와 매튜스는 에베레스트산에 기상 관측기를 설치했다. 당시에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한 기상 관측기가 됐다. 이번 칠레 트레킹은 본 협회가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한 환경에 놓인 장소 중 한 곳에서 기후와 환경적 변화를 조사하고 연구하기 위해 가장 최근에 추진한 탐사 활동이다.
탐사대가 해발 6500m 지점에 있는 투푼가토산의 정상에 도달하는 데는 약 10일, 내려오는 데는 5일이 소요됐다. 여정에 오르기 몇 달 전부터 대원들은 강도 높게 훈련을 했다.
대원들은 관목과 덤불이 군데군데 형성돼 있는 식생대인 해발 1875m 지점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이후 며칠 동안 그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풍광을 지나치며 산을 올랐다. 여정은 쉽지 않았다.
탐사대는 페리와 카사사, 칠레 수자원부에 속한 그의 동료들, 산악 안내인들 그리고 짐을 실은 노새와 말을 산 위로 모는 노새몰이꾼들로 구성됐다.
“등반로가 뚫려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보다 이틀 먼저 말들을 보냈죠. 눈이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말의 목까지 찰 정도였어요.” 페리가 말한다. 말을 탄 네 명과 짐을 실은 노새들이 탐사대보다 앞서서 나아갔다. 산길이 가파랐을 뿐 아니라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눈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눈 속으로 푹푹 빠지기 일쑤였다.
탐사대가 투푼가토산 위로 가져간 기상 관측기는 무게가 54kg에 이르고 높이가 1.8m이며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접이식 삼각대다. 기상 관측기는 분해해 배낭 여러 개로 날라도 될 정도로 가볍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한 편에 속하는 바람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한다. 탐사대가 눈을 헤치며 힘겹게 나아갈수록 말들이 탐사대가 원했던 고도까지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페리는 말한다. 남은 구간에서는 기후 관측기를 헬리콥터에 실어 나르도록 카사사가 연락을 취했다.
정상 부근에 기상 관측기를 설치하려면 우선 삼각대를 바위에 볼트로 고정한 후 당김줄로 잡아당겨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기상 관측기는 태양열 충전식 건전지로 동력을 얻고 위성 통신에 필요한 안테나를 갖고 있다. 이 관측기가 이미 시속 186km가 넘는 풍속을 측정했다고 페리는 말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얼어붙은 토양의 온도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정상 근처에 있는 영구동토층의 1m 깊이의 땅속에 온도 감지기들을 설치했다. 기상 관측기는 방사선과 적설 깊이, 알베도(지표면에 반사되는 태양 복사에너지의 반사율)를 측정할 것이다. 알베도는 중요하다. 눈이 적게 내리고 얼음이 녹으면 알베도가 낮은 눈과 마침내 노출될 검은 바위가 주변의 지표면 온도를 상승시키고 해빙 현상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온이 따뜻해지면 빙하는 매우 빠르게 후퇴할 겁니다.” 매튜스가 말한다.
칠레의 산악 지대에 얼마나 많은 양의 담수가 저장돼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언제쯤 심각하게 낮아질지 알아내려면 복잡한 예측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매튜스는 말한다. 단기적으로는 열이 눈과 얼음이 녹는 현상을 가속화시켜 더 많은 양의 물이 생기면서 홍수가 날 수 있다. 하지만 녹는 현상이 빨라지면 빙하는 결국 “아주 작아질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빨리 녹는다 해도 녹는 양이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흐르는 물의 양이 적어질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과학자들은 단기적으로 물이 급증하는 현상이 장기적으로 물이 부족한 상황으로 바뀌는 이런 전환점을 ‘피크 워터’라고 부른다.
마이포강 유역에 설치된 다른 고산용 기상 관측기는 두 대뿐이다. 카사사는 이번에 새로 설치한 기상 관측기를 시작으로 자신과 동료들이 칠레 전역에 기상 관측기를 많이 설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칠레를 포함해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들이 기후변화를 부채질하는 배기가스를 줄이고자 애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칠레 중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산티아고 북서쪽에서 한 사기업이 식수와 농업, 광업에 필요한 물을 제공할 수 있는 일반적인 용도의 담수화 공장을 최초로 짓고 있다. 이는 칠레 중부에 믿을 만한 담수를 확실히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둔 여러 방편들 중 하나라고 칠레 가톨릭대학교 소속 토목공학자 세바스티안 비쿠냐가 말한다. 그는 칠레가 기후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지역의 상수도 회사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은 마이포강의 지류에 댐을 건설해 물을 저장해두고 우물이 마른 지역들에 식수를 트럭으로 날라 제공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비쿠냐와 그의 동료들이 개발한 기후 예측 모델에 의하면 가뭄은 금세기 중반까지 계속될 것이며 산티아고에 믿을 만한 식수를 제공하려면 농작물에 필요한 물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현재 빙하가 후퇴하고 있지만 “해마다, 특히 가뭄 때는 빙하가 여전히 매우 믿을 만한 수원”이라고 비쿠냐는 말한다. 예상대로 결국 빙하가 사라진다면 물 저장소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