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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글 : 레이철 하티건 사진 : 키아나 하예리 외 9명

알력과 회복력: 해묵은 갈등과 새로운 갈등이 격화한 가운데 생존자들의 사연을 통해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전 세계에 당장 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무력 충돌을 멈추고 우리 삶의 진정한 싸움에 함께 집중할 때입니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의 호소는 묵살됐다. 공중 보건에 닥친 재앙이 전 세계 사람들을 위협하는 와중에도 갈등은 격화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십 건의 갈등이 계속해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무력 분쟁 위치 및 사건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ACLED)’의 보고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수만 건의 전투와 폭동, 폭발, 시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태로 해마다 10만여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2021년에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휩쓸어 20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았다.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포를 쐈고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공습으로 대응했다. 에티오피아 북부에 있는 티그레이주에서는 내전이 발생해 치명적인 기아 사태의 씨앗이 뿌려졌다.

한편 미국에서는 폭도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했고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으면서 시위자들이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아이티 출신의 이주민들은 분쟁과 굶주림, 자연재해를 피해 고국에서 탈출했지만 미국 국경에서 폭력을 마주했다.

갈등의 이유는 다양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나라를 다시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는 세력에 의해 갈등이 발생했다.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권력을 내놓기를 거부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에서는 단순하게 말해서 누가 어디에 살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가 갈등의 원인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해묵은 정치적 원한이 폭발한 탓이다. 미국 내 갈등은 잘못된 정보의 위험성뿐 아니라 권력과 안전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최악의 갈등에 동원되는 전술은 비슷하다. 바로 폭력과 기아, 강간의 일상화다.
 
[5월 17일, 재앙을 초래한 내전, 에티오피아 티그레이주, 사진 린지 아다리오] 에티오피아 총리 아비 아머드와 수십 년간 연방 정부를 장악했던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TPLF) 사이에서 벌어진 정치적 대립은 내전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해 특히 티그레이주에서 수백만 명의 생명이 위기에 놓였다. 또한 국가의 존립 자체도 위태롭다. 2020년 11월에는 에티오피아군과 에리트레아군뿐 아니라 인접한 암하라주의 민병대까지 티그레이주를 침공해 구호 물자의 보급을 차단하고 민간인을 상대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 여성은 자신이 일주일 새에 15명의 에리트레아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녀들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내게는 세상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녀는 말한다.
린지 아다리오는 12개 국가에서 20년 넘게 갈등 상황을 사진기에 담아왔다. 그녀는 세계 전역에서 강간이 하나의 무기로 사용되는 사실을 목격해왔다. 강간은 행위 자체로도 끔찍할 뿐만 아니라 그 영향으로 공동체가 파괴된다. 그것이 바로 강간을 저지르는 자들이 의도하는 바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모와 남편이 강간을 당한 여성을 내쫓아 가족이 해체된다.

티그레이주에서는 에리트레아군과 에티오피아군이 체계적이고도 잔혹하게 티그레이주의 여성들을 강간해왔다. 지난 5월 아다리오가 내전이 민간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티그레이주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당시 에티오피아군이 장악하고 있던 주도 메켈레의 한 병원에 있는 보호소에 찾아온 여성들을 만나게 됐다. 모두 억류돼 있다가 탈출하거나 풀려난 여성들이었다.

“내가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없었어요. 내가 그동안 촬영해온 사람들 중 누구라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이야기를 더 넓은 세계에 알리는 겁니다.” 그녀는 말한다.

아다리오는 이 여성들의 고통과 비탄 가운데서 그들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려 노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름다움은 독자들이 짙은 여운을 느끼고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희생자가 아니라는 내 생각을 전달하죠. 그들은 생존자들이에요.” 그녀가 촬영한 생존자들 중 한 명의 사진이 위에 등장한다.
 
[5월 31일, 대학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 사진 베서니 몰렌코프] 1921년 털사 인종 대학살이 발생한 지 100년 만에 알려지지 않은 사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당시 털사에서 번영을 누렸던 흑인 지역사회 그린우드에서 백인들이 난동을 부려 300명이나 되는 흑인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집 1000여 채와 사업체 141군데가 파괴됐다. 털사에 사는 흑인 인구의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약 1만 명이 집 없는 신세가 됐다. 여러 세대에 걸쳐 상속됐을 재산의 손실액은 오늘날의 가치로 6억 1100만 달러로 추산된다. 그들은 재산을 보상받지 못했다. 고고학자들이 집단 매장지 한 곳을 발굴했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묻힌 장소들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갈등의 영향은 싸움이 끝난 후에도 오래 지속된다. 상처가 몸에 남고 끔찍한 기억이 머릿속에 남는다. 아다리오가 촬영한 티그레이주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사정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무장 충돌이라는 톱니바퀴에 낀 다른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갈등을 겪은 지 오래됐거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사람들조차 여전히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021년에 되새겨본 고통스러운 사건 두 가지를 생각해보자. 바로 20주기를 맞이한 9·11 테러 사건과 100주기를 맞이한 털사 인종 대학살 사건이다. 털사 인종 대학살 사건 당시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번창하던 한 흑인 지역사회가 백인 이웃들에 의해 파괴됐다.

그러나 갈등과 반목 사이의 고요한 순간들이 반성의 여지를 남긴다는 사실도 헤아리자.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리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언젠가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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