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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 대수층에서 샘솟는 물

글 : 애덤 니콜슨 사진 : 찰리 해밀턴 제임스

구멍이 숭숭 난 허연 바위를 뚫고 솟구치는 영국 잉글랜드의 백악질 하천은 낚시꾼과 시인들에게 귀중한 존재다. 현재 이 하천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옹호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버드나무와 오리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수심이 1m쯤 되는 잉글랜드의 백악질 하천에 발을 들이는 순간 무릎과 허벅지 주변으로 수압과 찬기가 느껴진다.

발밑에 깔린 자갈은 강바닥까지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거렸다가 그늘지기를 반복한다. 온 사방에서 물이 지속적으로 막힘없이 흐르고 있으며 물살이 빨라지는 법도 없다. 백악질 하천의 물은 샘에서 공급되기 때문에 토사가 거의 유입되지 않아 수족관의 물 만큼이나 깨끗하다. 하천에서 노니는 송어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위 위로 흐르는 이 물줄기에는 바위의 성질이 녹아 있다. 알칼리성에 광물질이 풍부하며 탄산칼슘이 녹아 있지만 침전물은 거의 없다. 하천은 수 킬로미터에 걸쳐 뻗은 깨끗한 부싯돌 자갈 바닥을 따라 바다로 흘러든다. 백악층 깊숙한 곳에 있는 대수층에서 생성된 샘에서 샘물이 솟아올라 형성된 이 하천은 박하속 식물과 물망초에 둘러싸인 계곡 사이로 흐른다. 이 식물들 위로는 종종 야생 동식물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이 하천은 더욱 단단한 바위 위로 흐르는 강들의 급류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잉글랜드 남부와 동부에 걸쳐 완만한 지형이 굽이치듯 펼쳐진 백악 지대를 관통하며 끊임없이 흐른다.

백악은 해양생물의 자잘한 껍데기가 퇴적돼 형성된 순수한 석회암의 일종이다. 잉글랜드의 경우 약 4000만 년 전 알프스산맥의 융기 현상으로 지층이 흔들리면서 넓은 석회암 띠가 표면으로 상승했다. 석회암은 다공질 구조에 균열이 많은 특성상 암석 입자 사이사이의 공간이 전체 부피의 최대 40%를 차지한다. 백악 지반에 떨어진 비는 땅속으로 흡수되는데 때로는 언덕을 통과해 땅속으로 스며드는 데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천은 주변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나름대로 규칙적인 흐름을 유지한다. 폭풍우가 불어도 범람하지 않으며 가뭄이 들어도 강물은 계속 흐른다. 하천 물은 암석 지반에서 온기를 얻기 때문에 1년 내내 10-12°C의 수온을 유지한다. 이는 곧 백악질 하천에 사는 동식물이 일관된 조건의 환경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만약 백악질 하천에서 스노클링을 한다면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간 듯 어떤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은 채 그곳에 푹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영국 왕립조류보호협회 소속 환경 보호 활동가이자 틈만 나면 강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니콜라 크록포드는 말한다. 이 하천에는 물속에서 처음 하얀 꽃을 피우는 미나리아재비속 식물뿐 아니라 밝은 녹색을 띠는 별이끼속 식물이 군데군데 있으며 이들 식물이 드리우는 그늘 속에서 송어와 회색사루기가 배회한다. 자갈 바닥에서는 날도래류 유충을 감싼 자루가 작은 막대기처럼 보인다. 호랑이처럼 몸에 줄무늬가 있는 송어 치어는 파르르 떨면서 물살에 맞서 한구석에서 자리를 지킨다. 녀석들의 몸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이 강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곳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식 없는 사랑이 묻어난다. 잼 베어링은 형제들과 함께 잉글랜드 햄프셔주에서 ‘이첸 스토크’라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발포성 와인 포도밭에 속한다. 베어링은 자신이 기르는 포도나무들이 “머리는 햄프셔주의 백악 구릉에 두고 발끝은 반짝이는 이첸강 상류에 담그고 있다”고 묘사한다. 평생 낚시를 즐겨왔으며 환경 단체 웨식스 리버즈 트러스트의 공동 부회장인 베어링은 수많은 강을 복원하는 작업을 이끄는 데 기여했고 작디작은 하천도 소중하게 여긴다.
 
하천 관리인들이 햄프셔주 에이번강에서 미나리아재비속 식물을 제거하고 있다. 이런 식물은 강에 사는 생물에게 그늘과 은신처를 제공하지만 여름철에 과도하게 자라면 낚시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이 강은 외딴 황야에 있는 물길이 아니다. 낚시꾼이자 언론인 겸 작가인 찰스 랭글리-윌슨은 백악질 하천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시골 지역의 강이라고 부른다. “이 하천은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접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죠. 하지만 바로 문 앞에 있기 때문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는 말한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피해는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20세기 중반에 들어 변화와 파괴의 규모가 점점 더 커졌다. 도시와 농장은 일상적으로 이 하천을 오염시켰다. 토지 소유자들은 댐을 건설하거나 강폭을 넓히는 공사를 해 유속을 늦추고 구불구불했던 강줄기를 직선화했으며 쓰러진 나무를 제거했다. 낚시꾼들에게는 쓰러진 나무가 한낱 방해물에 불과하지만 물고기나 하천에 사는 다른 생물들에게는 이로운 존재다.

유속이 느려지면 강바닥에 토사가 두껍게 쌓여 송어와 연어가 알을 낳는 데 필요한 깨끗하고 공기가 잘 통하는 자갈을 뒤덮게 된다. 어린 무척추동물을 위한 요람 역할을 하는 이로운 잡초는 환하고 물살이 빠른 곳에서만 자란다. 잡초가 없으면 하루살이류와 강도래류, 날도래류 등 매우 중요한 곤충들의 삶이 무너진다. 곤충들이 없으면 물고기도, 갈색송어도, 회색사루기도 존재할 수 없다. 물고기가 없으면 수달도 살 수 없으며 강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비하고 재빠르며 몸을 마구 움직이는 생물들도 살 수 없다.

햄프셔주의 백악 구릉을 거쳐 사우샘프턴 근처 하구까지 수 킬로미터를 흐르는 이첸강과 테스트강은 신경 써서 풀을 벤 둑과 낚시꾼들을 위한 적갈색 오두막, 대규모 양식장에서 기른 송어가 있는 낚시하기 좋은 공원으로 변모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낚시터의 하루 이용료는 600달러를 웃돌기도 한다. 빠른 물살로 인해 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물과 자연 하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생태학적 서식지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필연적으로 구석구석까지 오염 물질이 침투한다. 세제와 미세 플라스틱, 의약품, 중금속, 변기에 내려 보내는 쓰레기까지 온갖 것들이 하천에 도달한다. 낚시꾼 폴 제닝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하수 처리장에서 런던 북쪽의 체스강으로 90일 넘게, 그중 68일간은 쉬지 않고 쓰레기를 흘려보내는 광경을 목격했다. “끔찍했어요. 그곳에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았죠. 악취에 탁한 물까지… 잿빛 물에는 인분 덩어리도 보였죠.” 그는 말한다.

“비 온 뒤 강에 제일 먼저 떠내려오는 것은 도로에서 씻겨 나온 디젤유예요.” 테스트강의 일부 구역을 아우르는 한 사유지에서 일하는 하천 관리인 피터 패로우는 말한다. 물고기는 깨끗한 자갈에 의존해 살아가는데 강가에서 부주의하게 밭을 일구다 흙이 강으로 들어가면 깨끗한 자갈 중 다수가 흙에 뒤덮여버리고 만다. 또한 농사를 지을 때 과도하게 사용하는 인산염과 질산염 비료는 강의 양분 농도를 지나치게 끌어올린다. 그렇게 되면 강바닥이 온통 실 같은 잡초들로 뒤덮이는데 이런 잡풀은 “무척추동물이 낳은 알들의 숨통을 조이고 물고기의 아가미를 틀어막으며 물에 산소를 공급하는 유익한 식물을 질식시킨다”고 민물생태학자이자 환경 보존 단체 ‘와일드피쉬’의 부대표인 자니나 그레이는 지적한다.

강의 건강보다 값싼 수돗물을 더 우선시하는 정치권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염된 백악질 하천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강이 생명과도 같은 물을 잃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하 대수층에서 물을 끌어올리고 있는 탓이다. 어떤 지역의 경우 지하수면이 6m 이상 낮아졌다.
 
유리같이 투명한 스투어강 수면에 비친 풍경이 잉글랜드 캔터베리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준다. 이곳 강둑에는 수도원과 제분소, 양조장 등 수백 년 된 건축물들이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백악 지대 전역에서 하천 보호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생겨났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동제한령이 시행되자 많은 사람들이 지역 하천에 주목하게 됐고 변화를 외치는 대중의 압력은 어느 때보다 거셌다. 보존 단체와 수도 회사, 정부 부처들은 지난 20여 년간 백악층에서 취수되는 물의 양을 줄이기 위해 저수지와 탈염 공장, 가정용 수도 양수기, 물 수송망 등을 위한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될 대규모 계획을 수립해왔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하천이 본연의 형태를 회복해가고 있다.

사이먼 케인은 1984년 어느 여름날 오후, 충격적인 일을 겪은 후 남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은 채 잉글랜드의 백악질 하천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잉글랜드 윌트셔주에 있는 에블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물이 초콜릿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상류 쪽을 보니 한 커다란 굴삭기가 삽을 강바닥에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 목초지의 지하수면을 낮추기 위해 정부의 재정 지원하에 에블강 준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파편 더미에서 “저녁 공기 속에 허우적거리는” 가재 수백 마리가 보였다.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종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도 에블강의 해당 유역은 여전히 활기를 잃은 채 암울한 모습이다.

건강한 강의 세 가지 주된 요소는 “경사도와 유속, 구불구불함”이라고 강 복원 전문 업체를 설립한 케인은 말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의 회사는 수많은 강에서 둑과 댐을 철거하고 물길을 거칠게 만들며 식물과 무척추동물, 물고기를 위한 다양한 서식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만곡부와 모퉁이를 형성해 강을 더욱 건강한 형태로 바꿨다.

많은 하천 복원가들이 케인의 길을 따랐다. 잉글랜드 노퍽주 북부에서 나르강의 일부 구역을 되살리기 위해 케인과 함께 일한 랭글리-윌슨도 그중 한 명이다. 수 세기 동안 이 구역은 제분소로 이어지는 직선 수로에 갇혀 있었다. 경사도 없고 구불구불한 부분도 없으며 흐름이 없었던 이 강은 토사가 쌓이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랭글리-윌슨은 나르강을 계곡과 다시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구불구불한 물길을 복구했을 뿐 아니라 물의 흐름과 서식지를 다양화하기 위해 나무를 끌어왔으며 자연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뒀다.

어느 날 오후, 나는 랭글리-윌슨과 함께 낚시를 하러 갔다. 새로 길을 낸 지 2년이 채 안 된 한 수로에 도착하자 우리 곁으로 강물이 세차게 흘렀다. 랭글리-윌슨은 30초 만에 야생 송어 한 마리를 낚았다. 그러더니 연달아 두 마리를 더 낚았다. 녀석들은 모두 무게가 200g 정도로 작았다. 그런데 이내 랭글리-윌슨이 또 다른 뭔가를 발견했다. “오, 저기에 멋진 송어가 있네요. 녀석은 저 둑 밑에 숨을 겁니다.” 그가 미끼를 단 낚싯대를 던지자 낚싯대가 휘어졌다. 그는 자갈이 깔린 얕은 물 쪽으로 그 송어를 옮겼다. 랭글리-윌슨이 조성한 그 강은 생명체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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