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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 동굴 속으로

글 : 엠마 리라 사진 : 아르투로 로드리게스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에 있는 한 화산에서 솟구쳐 나온 용암류가 지표면을 뚫고 흘러내리며 수 킬로미터 길이의 동굴을 형성했다. 현재 과학자들과 탐험가들이 냉각 중인 이 지하 동굴을 돌아다니며 지구뿐 아니라 다른 행성에도 존재할지 모르는 생명체에 관해 통찰력을 키우려 한다.


우리는 다른 행성에 있는지도 모른다. 바위투성이의 혹독한 지표면이 검은 잿더미로 뒤덮인 비탈면 사이에서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것은 활발한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 카나리아제도의 라팔마섬에서 새로 분출한 용암류다. 이 용암류는 2021년 가을 이 섬의 타호가이테 화산에서 세 달 동안 1900억ℓ 이상의 용융암이 분화하면서 형성됐다.

이 용암 지대의 대부분은 여전히 과학자들과 환경직 공무원들만 접근할 수 있다. 나는 옥타비오 페르난데스 로렌소 카나리아제도동굴학연맹 부회장과 동행하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스페인지질광물연구소(IGME) 소속의 연구원들과 함께 용암이 빠져나간 자리에 생긴 터널들을 탐사 및 조사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이 터널들은 대부분의 과학 문헌에서 용암 동굴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 라팔마섬에서는 더욱 시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 바로 ‘카뇨스 데 푸에고’, 즉 ‘불의 관’이다.

페르난데스는 내게 안전모를 건네고 우리가 가진 물의 양을 점검한 뒤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 표지가 붙은 하얀 울타리로 향한다. 우리를 이곳으로 이끈 도로가 갑자기 끊기며 두껍게 쌓인 용암층 밑으로 사라진다.

용암 동굴은 지구상에서 화산 활동이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난 곳이라면 거의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그러나 모든 화산이 용암 동굴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적정량의 용암이 배출되려면 분화가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돼야 한다. 또한 용암은 충분히 뜨거워야 하며 유체 상태를 유지하기에 적합한 물질로 구성돼 있어야 한다. 게다가 적절한 속도로 비탈면을 흘러 내려가야 한다.

약 985℃의 온도면 파호이호이 용암이 흐를 수 있다. 파호이호이는 하와이어로 ‘매끄럽다’는 뜻이다. 나는 그 모습을 꽤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눈부시게 빛나는 시럽 같은 용암류가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바깥층이 공기와 닿는 순간 냉각되며 굳기 시작해 딱딱한 표면을 형성하고 이것이 동굴의 지붕이 된다. 용암은 이렇게 열을 가두는 표면 아래에 격리된 채 계속해서 수 킬로미터를 흐른다. 분화가 잦아들며 통로에서 용암이 전부 빠져나가면 지하에는 미로처럼 얽힌 텅 빈 터널들만 남는다. 이 터널들과 지표면 사이에는 오직 화산의 바깥층만이 존재한다.

날카로운 천연 암석들로 뒤덮인 비탈면을 따라 용암 동굴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린다. 여기 보이는 것은 ‘아아’ 용암이다. 하와이어로 ‘거칠고 돌이 많다’는 뜻이다. 화산학계에서는 화산 활동이 활발하며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미국 하와이주의 여러 화산 지대에서 유래한 말들을 용어로 채택해왔다.

우리는 천천히 걷는다. 페르난데스가 아주 작고 결점 하나 없이 새하얀 화산쇄설암을 주워 내게 건넨다. 이것은 인근에 있는 엘이에로섬의 라레스팅가 지역에서 지난 2011년 분화가 일어난 뒤 현지의 연구원들이 레스팅골라이트라고 부르는 암석이다. 당시 허여스름한 암석 수백 조각이 바다에 떠다니는 모습이 관측됐는데 이때 불거진 과학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암석들의 기원을 둘러싼 한 가지 가설이 있다. 바로 이것들이 라팔마섬의 토대를 이룬 파편들, 즉 200만 년 된 해저에서 나온 고대 해양 침전물이라는 것이다. IGME에서 극단적인 현상 및 유산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지질공학자 다비드 산스 망가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창 같죠.”
 
디아스가 한 용암 동굴 속에 탐침 온도계를 설치하려는 페르난데스에게 길을 안내해주기 위해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이처럼 위험한 지역에서 드론은 꼭 필요한 장비다. 이 동굴은 화산이 분화한 지 2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냉각되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반드시 불안정한 입구의 가장자리로부터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라팔마섬에서 화산이 분화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과학자들은 여러 용암 동굴을 발견했다. 맨눈으로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분화가 일어나는 동안 드론으로 포착한 영상 덕분에 용암 동굴이 생겨날 만한 경로를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용암 동굴은 분화가 멎고 6개월 뒤인 2022년 6월, 딱딱하게 굳은 용암류 위에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려던 작업반원들이 발견했다. 그들은 우연히 동굴 같은 공간을 발견하고는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 산스가 연구 팀에 합류해 라팔마섬에 새로 생겨난 이 용암 동굴들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화산 공동들이 있는 하와이 군도에서 얻은 현장 정보를 바탕으로 분화가 일어나고 약 2년 뒤부터 용암 동굴들을 탐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곳의 경우 쉽지는 않겠지만 동굴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죠.” 그는 말한다. 

드론은 현장 조사에 꼭 필요하다. “임무의 첫 단계는 용암 지대에 뚫린 입구들을 조사하기 위해 일련의 열 감지 비행에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입구들을 조금씩 탐사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죠.” 그가 설명한다.

이른바 ‘붉은 동굴’은 3년 전 소도시 토도케로 흘러 내려온 용암류의 산물이다. 현재 약 60m가량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입구를 통해 공기가 들어와 동굴 내부를 순환한다. “뜨거운 공기를 배출하는 대신에 입구를 통해 외부에서 신선한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이죠. 이 용암 동굴은 현재로서 우리가 용암류의 냉각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최상의 실험실입니다.” 페르난데스는 말한다. 우리는 헤드램프를 켜고 안으로 기어 들어가 놀라운 붉은 빛깔의 벽면을 마주한다. 천장에는 물방울 모양의 진갈색 용암 종유석들이 보인다.

용암 동굴의 안쪽은 조사 결과 온도가 50-100℃로 벽면에 비해 서늘하다. 우리는 장갑 낀 손으로 이 벽들을 짚으며 균형을 잡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습도와 뒤섞인 온도 때문에 동굴은 튀르키예식 증기탕 느낌을 자아낸다.

열 감지 드론을 이용해 페르난데스가 기온을 잰다. 입구에서 90m쯤 들어갔을 때 그가 우리에게 멈추라고 말한다. 열기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동굴이 좁아지며 250℃ 이상의 열기를 내뿜고 있다. 촬영 영상을 보니 공기가 신기루처럼 흔들린다.

이 입구는 주로 하늘에 드론을 띄우는 방식으로 현재까지 확인한 100여 개의 입구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몇몇 입구는 감쪽같이 숨어 있어서 공중에서 확인하기가 어렵다. 탐사가 이뤄진 입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온도가 적당할 때만 입구를 탐사할 수 있다. 두께가 20m에 이르는 용암류의 경우 냉각 과정이 2년 반 동안 이어질 수 있다. 두께가 45m나 60m에 달하면 2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이 동굴망은 최대 세 개의 층이 중첩돼 있는 형태로 구성돼 있을 수도 있다. 산스는 이곳이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한 용암 동굴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 기록은 인근에 있는 테네리페섬의 테이데산 지하에 형성된 비엔토-소브라도 동굴계가 보유하고 있다. 터널들이 18km 넘게 이어진 이 동굴계는 잠시 동안 세계 최대 규모의 화산 동굴로 여겨졌다. 1995년에 해리 시크라는 남성이 하와이섬에 있는 자신의 집 마당에서 한 동굴 입구를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알고 보니 시크가 발견한 입구는 킬라우에아 화산에서 시작된 65km가 넘는 길이의 용암 동굴로 들어가는 진입점이었다.
 
열화상에서 페르난데스가 한 용암 동굴의 천공광 아래에 서 있다. 이처럼 자연적으로 생성된 입구는 외부의 공기를 빨아들여 온도를 낮추고 탐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준다. 안쪽으로 몇 미터 더 들어가면 용암 동굴이 강렬한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통행이 불가능해진다. 면 소재로 된 전신 작업복을 입은 페르난데스는 몸이 너무 뜨거워질 때면 상황을 감지한다. “다리미질할 때의 냄새가 나거든요.”
이 터널들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지구에 대한 정보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페인 세비야에 있는 천연자원 및 농업생물학 연구소(IRNAS) 소속 지구미생물학자 아나 셀리아 밀러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체들에 현미경의 초점을 맞춰왔다. 그녀는 라팔마섬의 용암 동굴에서 첫 발견을 이뤄냈다. 당시 그녀는 동굴 생성물, 즉 광물 퇴적층을 연구하고 있었다.

밀러는 극한미생물, 특히 무기질에서 성장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세균들에 대한 연구를 계기로 유럽우주국(ESA)의 판게아-X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그녀의 임무는 인근에 있는 란사로테섬의 한 용암 동굴 내부에서 우주 비행사들이 미생물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일이었다. 그 동굴은 조건이 달과 화성에 존재하는 용암 동굴과 비슷해 보였다.

2009년 일본이 쏘아 올린 한 우주 탐사선이 달에 있는 화산 동굴 중 한 곳의 입구일지도 모르는 ‘마리우스 언덕의 천공광’을 발견한 이후로 과학계는 지구와 다른 행성들의 화산 동굴 간 유사점을 연구해왔다.

“화성과 달에 있는 동굴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굴들과 환경적인 조건과 중력 면에서 크게 다른데 이 두 가지 요소는 동굴의 규모와 안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견되는 동굴들의 형성 과정과 주변 환경은 지구상의 동굴들과 생각보다 더 많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어요.” ESA 소속 과학자이자 본 협회의 탐험가인 프란세스코 사우로는 말한다. 만일 이 같은 별세계의 용암 동굴에 생명체가 존재하거나 존재했다면 라팔마섬의 용암 동굴에 사는 생물들처럼 미생물의 형태를 띨 수 있다.

“최근에 라팔마섬에서 일어난 분화 덕분에 새로 형성된 이 용암 동굴들의 초기 미생물 무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밀러는 말한다. 이 섬의 화산 동굴들에는 이미 생명체가 살고 있다. 밀러의 연구 팀은 알려진 세균뿐 아니라 수도모나도타문과 박테로이도타문에 속하는 다른 생명체도 발견했다. 이 생명체들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종들로 인정될 수도 있다.
 
분화구에서 빠져나온 유황 증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결정을 이룬다.
라팔마섬에서 용암류가 이동한 경로는 일반에게 다시 개방됐다. 이 길은 이 섬의 독특한 풍경을 드러내는 오래된 등산로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여전히 화산재로 뒤덮인 오솔길 하나가 또 다른 동굴로 이어진다. 부분적으로 탐사가 진행된 이 동굴은 과학자들에게 ‘작고 예쁜 화덕’이라는 뜻의 ‘오르니토 보니토’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한 관광객 무리와 우연히 마주친다. 이들은 최근에 ‘타호가이테(토착 언어로 ‘갈라진 산’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은 화산의 주요 원뿔구를 보기 위해 산을 올라온 터였다. 이 외에 다른 구역에 가려면 허가는 물론 가스 측정기와 마스크까지 필요하다. 이곳의 환경은 순간순간 바뀌기 때문이다.

잿더미로 가득한 화산 지대는 분화가 멎고 난 뒤의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작은 분화구들로 뒤덮여 있다. 분화구에는 저마다 진주를 품은 굴처럼 둥근 돌이 들어 있다. 이 돌들은 화산이 뿜어낸 끈적이는 파편들로 공기와 마찰하며 표면이 매끄러워졌다. 이것이 화산탄이라고 페르난데스가 알려준다.

“표지가 붙고 감시가 이뤄지는 도보 여행길 연결망을 조성해 모두가 이 새로운 지질학적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인 일이겠죠. 경관을 훼손하거나 어떠한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은 채 말입니다.” 페르난데스는 말한다. 그는 우리의 발걸음을 면밀히 살피고 의심스러운 소리라도 나면 방향을 튼다. 굳은 용암층은 두께가 5cm도 안 되는 얇은 비스킷 같다. 그 밑에는 온도가 480℃를 웃돌 수도 있는 거품덩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르니토 보니토는 모래성처럼 솟아 있다. “이 동굴들은 소형 화산 같아요. 이것은 고작 사흘 만에 형성됐죠.” 페르난데스는 설명한다. 이 동굴은 화산이 분화할 당시 용암이 공중으로 30m가량 솟구치면서 주요 원뿔구의 북쪽 면 바로 위에 생겨났다. 분화가 잦아들면서 기체가 올라오기 시작하며 화산쇄설물이 방출됐고 그것이 쌓여 원뿔대 모양의 탑이 형성됐다.

근처에 있는 입구는 용암 동굴 속으로 내려가는 거대한 구멍으로 쏟아져 내린 용암류가 퍼져 나가는 동안 그 주변으로 단단한 가장자리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짐작케 했다. 환한 흰색 가루가 온 사방에 내려앉아 바늘처럼 가느다란 작고 하얀 종유석으로 응결된 것처럼 보이는데 연구원들은 여전히 그 조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종유석들은 수명이 짧은 광물질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형체가 바뀌고 사라지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이 물질의 정체를 파악할 무렵이면 이것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땅은 재해가 닥친 장소들에 대해 경외감을 갖게 한다. 마침내 우리는 용암 지대를 가로질러 다시 우리의 차량으로 향한다. 비가 내리며 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옷이 흠뻑 젖었지만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천연 암석에서 여전히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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