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등반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드는 방법
글 : 마크 시노트 사진 : 레난 오즈터크, 테일러 셰퍼
세계 정상급 등반가 두 명이 그저 미국에서 가장 험한 편에 속하는 산에 도달하기 위해 자전거와 배를 타고 급류를 통과하며 노를 저어 4200km에 이르는 거리를 이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암벽 등반가들이 장엄한 절벽을 올라도 그 사실이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등반 스포츠계의 두 거장이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난 10년 동안 토미 콜드웰(46)과 알렉스 호놀드(39)는 선구적인 업적을 잇달아 달성하고 유명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며 등반을 주류 스포츠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콜드웰이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2015년에 찾아왔다. 이때 콜드웰은 동료와 함께 그 당시 세계에서 등반하기 가장 어렵다고 여겨지던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돈 월을 19일 만에 완등했다. 그로부터 2년 뒤 호놀드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상징인 엘카피탄 바위산을 밧줄 없이 오르는 데 성공했고 이때부터 ‘자유 등반’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됐다. 호놀드가 등반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 두 사람은 지금도 등반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지만 제각각 환경 문제에도 점점 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지난여름 그들은 새로운 시도를 위해 힘을 모았다. 당시 콜드웰은 ‘에코 포인팅’에 관심을 갖게 된 참이었다. 에코 포인팅은 화석 연료를 태우지 않고 인간의 힘만 이용하는 탐험을 설명하기 위해 유럽 출신의 일부 등반가들이 널리 퍼뜨린 용어다. ‘친환경 탐험은 궁극적으로 어떤 형태를 띨까?’ 콜드웰은 궁금했다.
두 사람은 ‘데블스섬’을 목표로 삼았다. 데블스섬은 미국 알래스카주에 있는 2700m 높이의 외딴 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등반할 수 없다고 여기는 곳이다. 그들은 모험을 더 극적으로 만들고자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콜드웰의 자택에서 자전거로 출발해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편에 속하는 곳들을 통과하는 장장 4200km 거리의 이동 경로를 계획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정에는 난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암벽 등반은 말할 것도 없고 요트 타기, 카약 항해, 휴대용 뗏목을 이용한 급류타기, 원시 우림에서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는 도보 여행이 포함돼 있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본 협회의 신작 다큐멘터리 <더 데블스 클라임>은 이 두 등반가의 여정을 시간순으로 담았다. 전문 산악 안내인인 기자 마크 시노트가 콜드웰과 호놀드와 함께 두 사람이 여정에서 겪은 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에코 포인팅의 어려운 점, 일의 위험성과 어린 자녀들을 둔 아버지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그들이 균형을 맞춰나가는 방법, 피자 상자만 한 크기의 정상에서 아슬아슬하게 사진을 찍을 때 주의해야 했던 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본 인터뷰는 지면 분량과 명료성을 위해 편집됐다.
마크 시노트: 어떻게 이런 여행을 구상하게 됐나요?
토미 콜드웰: 늘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여행이 통가스 국유림을 알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알래스카주 남동부쪽의 좁고 길게 뻗은 지역을 대부분 뒤덮고 있는 이 국유림은 세계 최대 규모의 온대 우림입니다.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세간의 관심을 끌 방안을 늘 궁리하고 있었어요. 원래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알래스카주까지 가고 싶었는데 친구와 함께하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렉스에게 전화를 걸었죠. 처음에는 거절하더군요.
알렉스 호놀드: 분명히 말하자면 토미의 당초 계획에 알래스카주 해안 전역을 카약으로 항해하는 일이 포함돼 있어서 거절했던 거예요. 두 달 반이 소요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있기에도 너무 긴 시간이었고요. 기가 막힌 자전거 여행을 몇 차례 경험한 터라 풍경에 푹 빠지는 데 자전거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모험을 통해 일종의 개인적인 변화 같은 것을 겪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죠.
시노트: 생각대로 됐나요?
호놀드: 딱히 그렇지 않았죠. 분명 엄청난 모험이었고 멋진 등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자전거로 미국 서부를 누비는 게 고단했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좀 슬프기도 했어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미친 영향을 보게 됐죠. 우리는 자전거로 약 3800km를 이동했는데 기본적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곳은 국립공원뿐이었어요. 그 외의 지역들은 전부 벌목이니 채굴이니 어떤 식으로든 착취를 당한 상태였죠. 게다가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마을 중 다수가 쇠퇴하고 있는 듯했어요. 한창 나무를 베어낼 때는 마을이 북적북적했다가 나무가 다 잘려나가면 몰락해버리는 것이죠.
콜드웰: 애초에 우리가 여행을 시작한 이유는 어느 정도 이 같은 인간의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직접 보고 나니 우리가 세상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이미 파괴했는지 절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국립공원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됐죠. 자연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었으니까요.
호놀드: 나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내륙 지역의 사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 여행에 나섰어요. 그래서 북쪽으로 갈수록 야생 원시림이 더 많을 것이라 짐작했죠. 그런데 지난 100년 동안 나무가 모조리 잘려나간 사실을 알게 됐어요. 물론 도로변에는 나무들이 작은 가림막처럼 늘어서 있으니 자동차를 타고 시속 120km로 달리다 보면 나무들밖에 안 보이죠.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 가림막 너머의 풍경을 볼 여유가 생기고 이런 말이 나오게 되죠. “저런, 뒤쪽에는 나무가 없네.” 우리는 암벽 등반가로서 야생 지역과 산꼭대기, 가장 외지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이 많이 남아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요점은 지구상에서 지금까지 인간의 무지막지한 손길이 미치지 않은 장소는 접근하기가 대단히 어렵거나 경제적 가치가 없는 곳뿐이라는 겁니다.
콜드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채굴업체들은 항상 경제적 번영을 불러올 것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채굴 행위를 정당화하지만 번영은 결코 영원히 이어지지 않죠. 지역사회는 고통을 겪고요. 우리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내륙 지역에서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을 피우고 끔찍한 가정 폭력이 횡행하며 총격 사건이 빈발하는 모습을 봤어요.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달린 ‘하이웨이오브티어스(눈물의 고속도로)’는 수많은 원주민이 납치를 당한 곳이죠. 결국 이 모든 불행은 우리가 자연 환경을 강탈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고 지역사회는 그저 이런 관습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여행은 그런 관습을 철폐할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 좋은 계기가 됐어요. 계속 지금처럼 방치하면 결국에는 가장 외딴 곳마저 자원을 잃게 되고 말 테니까요.
시노트: 긍정적인 경험도 분명 있었겠죠?
호놀드: 물론이죠. 해돋이와 해넘이를 수없이 봤어요. 폭풍을 뚫고 캐나다 앨버타주 아이스필즈 파크웨이를 자전거로 달리며 진정 자연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기억도 나네요. 이런 게 모험의 묘미 아니겠어요?
콜드웰: 와이오밍주 남부에 가니 풍광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 있고 비를 동반한 돌풍이 일대를 휩쓸었으며 야생마들이 달려와 우리를 맞았죠.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우리는 마지막으로 ‘인사이드패시지’라는 뱃길을 따라 데블스섬을 향해 이동했어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는 작은 만에 배를 대고 카약으로 바다를 누볐어요. 작은 돌로 조개껍데기를 까고 있는 해달 무리가 보였죠. 하루는 바다표범이 50마리 정도 있는 섬으로 노를 저어 갔는데 내가 다가가자 녀석들이 모두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갔어요. 산을 오르는 중에는 연어 떼가 회귀하는 모습을 봤는데 어찌나 바글바글하던지 강에 물보다 물고기가 더 많은 것 같았어요. 죽은 연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고 곰들은 실컷 잔치를 벌였죠.
시노트: 험하기로 악명 높은 데블스섬에 올랐잖아요. 이제 두 분 모두 부모가 됐는데 자녀가 생기고 나니 위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던가요?
호놀드: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에요. 아이들이 더 즐겁게 놀 수 있는 나이가 되다 보니 딸들과 어울리며 멋진 일을 하고 싶어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지면서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일이 줄어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반대가 되기도 쉬워요. 이따금씩 특별히 더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죠. 나는 자유 등반을 너무 사랑하거든요.
콜드웰: 등반가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버지는 내게 빙벽 등반과 밧줄 없이 하는 자유 등반은 피하라고 누누이 말씀하셨어요. 세계 최고봉을 등반하러 나섰다가 이혼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을 주변에서 숱하게 봤거든요. 여전히 내가 비교적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알렉스만큼 모험에 목말라하지는 않아요. 이따금씩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지만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 능력에 더욱 확신이 생기면서 예전보다는 몸을 덜 사리게 됐을지도 모르겠네요.
시노트: 도대체 등반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렇게 끌리는 건가요?
콜드웰: 인간관계의 형성, 지역사회, 자연에 푹 빠져드는 경험, 모험에 대한 욕구 등등 너무 많아서 하나만 콕 짚기가 어렵네요.
호놀드: 등반하면서 취하는 동작들이 너무 짜릿해요. 또한 계속 발전하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마음에 듭니다.
시노트: 이번 등반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면요?
호놀드: ‘디아블로트래버스’를 완등했다는 겁니다. 이는 데블스섬 산괴의 다섯 봉우리를 모두 등반했다는 의미예요. 우리는 이를 하루 만에 밧줄 없이 해냈습니다. 획기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흥미진진했죠.
콜드웰: ‘캣츠이어즈스파이어’는 내가 오른 봉우리 중 가장 살벌한 곳이었을지도 몰라요. 풍경이 오금을 저리게 만들죠. 산들이 정말 뾰족하거든요. 큰 빙하가 급경사를 이루고 북서면에서 눈사태가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굉음도 피할 수 없어요.
호놀드: 어떤 봉우리는 꼭대기의 크기가 피자 상자만 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가 힘들었어요. 아주 작은 공간 위에 서 있는 셈이었으니까요. “프레임에 안 잡혀요. 뒤로 좀 가요”라고 말하는 순간 둘 다 떨어져 죽는 거죠. (웃음)
시노트: 인간의 힘으로만 여행을 하려 한 이유가 뭔가요?
콜드웰: 유럽의 등반가들은 ‘에코 포인팅’이라는 개념에 빠져 있어요. 말하자면 차 없이 암벽까지 가는 건 데요. 세바스티앙 베르테라는 벨기에 출신의 친구가 돈 월에 다시 가고 싶어 했는데 베르테는 비행기를 타지 않기 때문에 대서양을 항해하기로 했죠. 한 달이면 끝날 여행이 장장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이 됐어요. 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베르테와 그의 동료들을 만났는데 그 경험이 그들을 매우 끈끈하게 만들어준 게 느껴지더군요. 이처럼 환경적 이유를 들어 제약을 두면 훨씬 더 거창하고 멋진 여행이 됩니다.
시노트: 당신들을 촬영한 제작 팀은 두 분만큼 친환경적인 여행을 하지 않았는데요. 이 점을 어떻게 조율했나요?
콜드웰: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완전히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가는 것과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죠. 통가스 국유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상에 알릴 수 있다면 여행에서 친환경적인 면을 조금 포기하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호놀드: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세상에서 친환경적인 탐험을 하는 것은 힘든 일이죠. 일부 구간은 돛을 단 배로 이동하려 했지만 바람과 파도가 적당하지 않아서 내내 경유 엔진이 달린 배로 이동했어요. 탐험하는 동안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끝내주는 모험이기는 한데 이게 정말 올바른 방법일까?’
콜드웰: 알렉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에코 포인팅이 세상의 환경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아니지만 해결책을 고민하다 보니 2개월 동안 여행에 완전히 몰입했죠. 솔직히 말해 이 여행은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경험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