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품질 좋은 차나무 숲속으로
글 : 저스틴 진 사진 : 저스틴 진
중국 징마이산 고지대에서는 토착민인 차 재배농들이 현대식 농법을 거부하고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술을 고수하며 최고급 차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차의 인기가 전에 없이 치솟고 있다.
중국 징마이산 고지대의 초록빛 봉우리 위로 동이 트면서 따스한 햇살이 차나무 고목을 휘감았다. 잎이 우거진 수관을 향해 쭉 뻗어 있는 너비 1.2m의 나무줄기가 거대한 가지들을 뻗친 채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중국 도처에 있는 기업형 농장에 빽빽하게 늘어선 작은 차나무들과는 달랐다. 윈난성 남서부 벽지에 있는 이 나무는 특별했다. 게다가 쓰임새도 아예 달랐다.아이롱(41), 커란팡(36) 부부가 연로한 부모와 함께 나무 앞에 모여 이 지역 토착민들이 구사하는 부랑족 언어로 읊조리듯 기도를 하고 있었다. 토착민들은 이 지역 전역에서 차나무 숲 다섯 곳을 경작하고 있는데 모두 합치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크다.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이 나무가 한낱 숲의 일부로 보이겠지만 아이롱 가족에게는 살아 있는 사원의 심장부였다. 그들은 차나무 정령에게 기도하며 이제는 신령이 된 조상 파아이렁에게 풍성한 수확을 빌었다. “1000년 묵은 나무예요.” 아이롱이 커다란 나무줄기를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믿음은 끊임없이 시험에 드는 것 같았다. 이 지역 특산품인 차가 널리 주목을 받으면서 고가에 거래됐지만 그와 동시에 갈수록 종잡을 수 없는 유례없는 자연의 위력과 씨름해야 했기 때문이다.
차는 세계에서 물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음료다. 녹차와 홍차부터 우롱차에 이르기까지 세계인들은 다양한 종류로 1년에 약 1700억ℓ의 차를 마신다. 가공 기법의 차이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지만 바탕이 되는 원료는 모두 동일하다. 바로 차나무다. 꽃을 피우는 상록수인 차나무는 특히 19세기 초 식민 지배 시대에 영국인들이 인도에 차나무를 들여오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 이때를 계기로 차에 대한 중국의 독점권은 깨지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징마이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차가 하나 있다. 부랑족은 또 다른 토착민인 다이족과 함께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주 오래된 아삼종 숲을 계속 가꿔온 것으로 여겨진다. 아삼종은 이 산에서 생산하는 색과 향이 진한 보이차를 비롯해 홍차를 만드는 데 쓰이는 차나무 아종이다. 일부 차 감별사들은 인기가 많은 이 차를 ‘마실 수 있는 금’이라고 부르는데 많은 생산자들이 깊은 맛을 내고 그 가치가 높아지도록 최소 10년 동안 차를 발효시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늘어나는 중국 부유층 사이에서는 고소한 향에 흙냄새가 나면서 살짝 쓴맛도 나는 이 차를 고급 와인에 비견해왔다.
아이롱 가족은 약 4000그루의 차나무가 심긴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한때는 수익을 내기 위해 여러 해에 걸쳐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러다가 2015년에 최상급 보이차를 판매하는 고급 브랜드와 손을 잡기로 결심했다. 현재 이들은 농업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37가구에서 차를 가공하는데 해마다 상품 1t 정도를 생산한다. 보이차는 둥글납작한 형태로 압착해 숙성시킨 다음 포장하는데 이렇게 만든 약 360g짜리 긴압차는 한 덩이당 330달러에 팔린다. 징마이 지역 내 평균 소득은 20년 전에 비해 껑충 뛰었다. 아이롱과 커란팡은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연간 4만 달러에 이르는 소득을 올리게 됐다. 이는 인근에 있는 후이민시의 가구 소득 평균보다 많은 액수다.
2년 전, 유네스코는 징마이산을 세계유산으로 공식적으로 지정했다. 세계유산은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장소에 부여하는 영예로 차 재배와 관련된 장소로는 징마이산이 유일하다. 우연이 아니겠지만 10여 년 전 세계유산 등재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징마이산에서 재배된 차 가격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 지역 주민 6000명은 자연 농법을 이용해 1580ha 면적의 땅에서 100만 그루가 넘는 차나무를 돌보고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이 방식도 기후변화 때문에 새로운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2024년 봄, 이 지역은 6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에 시달렸고 유난히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에 아이롱 가족이 기도를 올리던 봉우리에서 예기치 않게 벌레가 들끓어 소중한 찻잎이 수확 직전에 큰 위기를 맞았다.
부랑족의 차나무 정령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구전 역사에 따르면 10세기경 파아이렁은 백성들을 이끌고 징마이에 정착했는데 이곳에서 야생 차나무의 약효를 발견하고는 차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년에 전수한 지혜는 여전히 아이롱과 커란팡 같은 농부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소를 주면 병으로 죽을 수도 있네. 금을 주면 흥청망청 써버릴지도 모르지. 그러니 대대손손 부를 안겨줄 차나무를 주겠네.” 파아이렁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징마이 주민들이 공들여 관리한 땅은 단일 품종만 심은 계단식 차 농장에 비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숲 지붕을 이루는 수관은 그늘에서 잘 자라는 차나무에 보호막이 된다. 하층 식생인 양치식물과 허브는 숲 바닥을 덮고 있어 동물에게 풍성한 서식지를 제공하고 토양이 생명 유지에 필수인 수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차나무의 안식처인 이곳은 또한 서로 격리되도록 전략적으로 구획돼 있어 질병 및 해충의 확산을 막는다.
부랑족은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연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숲을 돌볼 때 가지치기 같은 거친 방식은 물론이고 살충제나 제초제도 기피한다. 커란팡은 나무 사이에 난 풀을 1년에 두 번만 칼로 벤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징마이에서 사용하는 임업 기법은 여전히 효과적이다. 최근 중국 중앙민족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징마이산 고지대의 나무로 만든 차는 저지대의 나무로 만든 차보다 쓴맛이 덜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지속가능한 농법을 사용하면 기업형 차밭보다 생물다양성이 훨씬 높다. 현재 징마이 차 가격은 일반 농장에서 생산되는 차보다 6.5배 비싸다.
아이롱 가족은 소중한 차나무를 수천 그루나 갖고 있었지만 아이롱이 어릴 때만 해도 차 상품에 대한 수요가 전혀 없었던 탓에 가난하게 살았다. 20세기 후반에 중국은 생산성이 높은 대규모 계단식 농장에서 차를 대량 생산하는 데 몰두했기 때문에 노동 집약적 방식으로 수확하는 고목들은 관심 밖이었다. 윈난성 내 다른 산지의 차 재배농들은 오래된 숲을 싹 밀고 생산성이 높은 어린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징마이 사람들은 꿋꿋이 버티면서 보물 같은 수목을 지켜냈다. 현실적인 제약도 이들의 결의에 보탬이 됐다. 현대식 도로가 없어 고목들이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착민 공동체들은 제멋대로 방치된 듯 보이는 숲을 지켰다.
2000년 무렵, 중국 정부가 농촌 지역의 도로 및 전기 시설에 투자하고 나서면서 징마이의 운명이 바뀌었다. 차를 사겠다는 신규 고객들이 서서히 징마이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더 많은 문제가 생겼다. 새로운 건물에 쓸 목재를 구하기 위해 숲 일부를 파괴하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수익성을 높인다며 나무에 해로운 화학 물질을 뿌리고 마구 가지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2003년, 은퇴한 초등학교 교사이자 파아이렁의 후손을 자처하는 수구오웬은 행동에 나설 때라고 생각했다. 사실인지 증명할 길은 없지만 파아이렁은 숲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지키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마을 회의에서 수구오웬은 이 가르침을 거론하며 오래된 관행과 전통을 계속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단기 수익은 손해를 보더라도 길게 보면 재배농에게 이롭다는 논리였다. 촌장인 아이선 역시 다이족을 규합해 정성 들여 가꿔온 생물권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두 사람 모두 벌목 및 화학 물질 사용을 금지하자고 촉구했다.
2010년 무렵 마을 어르신들이 중국 정부와 힘을 합쳐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정부는 추진 과정의 일환으로 징마이산으로 가는 유일한 도로에 검문소를 세워 사람들이 외래종 동식물을 들여오지 못하게 막았고 차 향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아스팔트 대신 돌을 사용해 도로를 깔았으며 지역 내 건설 공사 및 삼림 벌채를 공식적으로 제한했다.
중국 안후이대학교 소속의 주오징 교수는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유산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힘을 보탰다.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받는 그의 연구 팀은 친환경 집을 지어 현대 기술이 어떻게 고대 건축물을 보존하면서도 위생과 난방, 전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 입증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집에 빠르게 적응했다. “징마이산은 오래된 차나무와 같습니다. 독특한 역사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며 계속해서 성장하는 강인한 생명력도 지니고 있거든요.” 주오징은 말한다.
가족과 함께 기도식을 올릴 즈음에 아이롱과 커란팡은 봄철 수확 작업에 합류해 오랜 세월 이어온 방식대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일했다. 부랑족과 다이족을 비롯해 여러 부족 사람들은 커다란 바구니를 어깨에 둘러메고는 울퉁불퉁한 땅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면서 고목들을 살펴봤다. 가장 보드라운 잎을 찾으면 다른 가지들을 살며시 밟고 서서 그 잎을 땄다. 이렇게 하면 잎이 짓눌리지 않아 나중에 차를 우릴 때 말린 잎이 예쁘게 펴진다.
바구니에 싱싱한 잎이 가득 차자 부부는 집으로 돌아와 복잡한 변환 작업에 돌입했다. 두 사람은 잎을 살짝 마르도록 펼쳐놨다. 산화 작용을 막기 위해 아이롱이 뜨겁게 달군 우묵한 냄비에 잎을 던져 넣자 방 안이 고소한 향으로 가득 찼다.
잎이 식자 커란팡이 손으로 잎을 비비는 세심한 작업을 시작했다. 찻잎을 하나씩 살살 비틀면서 세포를 파괴해 풍미를 더하는 것이다. 잎을 조심스레 널어 말린 뒤에는 압축, 포장, 숙성 작업에 들어간다. 이 과정을 거치면 햇보이차가 탄생하는데 풍미가 절정에 이르려면 앞으로 10년 넘게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2024년도 수확량은 가뭄으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노동 집약적 기법 덕분에 그나마 어느 정도의 찻잎을 건질 수 있었다. 병충해가 들끓자 많은 사람들이 가장 귀한 나무들에 달라붙어 몇 주 내내 쉬지 않고 손으로 벌레를 잡았다. 병충해는 이 오래된 숲의 다른 지역까지 번지지는 않았는데 이는 구획을 나눠 차나무를 심은 조상들의 방식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아이롱과 커란팡은 최근 몇 년 동안 자신들이 살고 있는 목조 주택의 1층을 개조해 고객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징마이 차 시장이 계속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오늘날 이 지역 소득의 90%는 차에서 나온다. 심지어 젊은 세대는 중국 전역에서 늘고 있는 소셜 미디어 팔로워들을 대상으로 차 시음 장면을 실시간으로 방송한다. 또한 유네스코가 건축학적 보물이라고 언급한 웡지와 누오강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전통적인 목조 가옥을 멋진 상점으로 개조했다. 어떤 이는 차의 값어치가 점점 뛰어서 시간이 지나면 값진 골동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온습도가 조절되는 창고를 지어 긴압차를 보관한다. 지난 5월 홍콩에서 열린 경매에서 1917년산으로 추정되는 이 지역의 희귀한 긴압차 한 덩이가 놀랍게도 44만 8057달러에 낙찰됐다.
한편 가뭄이 계속될 듯하자 재배농들은 전통 신앙에 의지해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부랑족 마을 어르신들은 옛날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이쑤시개를 꽂은 닭 뼈로 천기를 점치려고 애썼으며 종교 관습이 다른 다이족 공동체 구성원들은 부처에게 나서달라고 간청했다.
5월에 마침내 첫비가 쏟아져 수관 아래의 그늘진 땅을 흠뻑 적셨다. 여름이 시작되자 비는 폭우로 변했다. 마치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보호를 받는 듯 징마이는 기운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