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국 뉴욕시를 누볐던 전기 택시
글 : 크리스토퍼 클라인 사진 : 사이언스 포토 라이브러리 외 2곳
미래의 자동차로 여겨지는 전기차는 사실 1800년대 말에 크게 유행했다. 그 많던 전기차는 왜 사라졌을까?
19세기 말, 뉴욕시는 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거리와 골목은 약 15만 마리의 말들로 붐볐으며 매일 말 한 마리가 배출하는 배설물은 16kg이 넘었다. 그 많은 배설물을 처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뉴욕 시민들은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을 간절히 찾고 싶어 했다. 그리고 새롭게 발명된 자동차가 그 해결책인 듯 보였다.
1897년, 뉴욕시에 최초로 자동차 택시 서비스가 도입됐을 때 택시는 오늘날의 뉴욕 시민들이 깜짝 놀랄 만한 청정에너지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택시들이 모두 전기차였던 것이다. ‘전기 자동차 회사’라는 기업이 생산한 이 자동차들은 ‘일렉트로배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시장을 선도하는 전기차로 떠오르고 있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발명가 헨리 모리스와 페드로 살롬은 1894년에 일렉트로배트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으며 2년 만에 더 작고 빠른 모델을 개발했다. 무게가 1315kg에 달한 이 새로운 모델은 납축전지를 동력원으로 사용했다. 최고 속도는 시속 32km에 이르렀으며 1회 충전으로 최대 40km까지 주행이 가능했다.
1890년대에 뉴욕시 시내에 전기차가 돌아다녔다는 사실이 공상 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자동차 시대가 막 시작됐을 무렵에는 내연 기관 차량보다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하는 차량이 더 많이 팔렸다. 전기차는 소음이 적고 친환경적이며 운전하기가 쉬웠다. “그 당시에는 아침에 내연 기관 차량에 시동이 걸리면 운이 좋은 거였어요. 내연 기관 차는 시끄럽고 오염을 발생시키며 덜거덕거리는 반면 전기차는 스위치만 돌리면 바로 시동이 걸렸죠.” 책 <아직 멀었나? 미국 자동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자율 주행>의 저자 댄 앨버트는 말한다.
당시는 전기의 시대가 막 시작됐을 때로 전기를 활용하는 기술이 어떤 문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으냐고 물으면 다들 전기가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전기차 역사학자이자 책 <전기차와 역사적 부담>의 저자인 데이비드 A. 커시는 말한다. “전기로 불을 밝혔고 전차를 끌었습니다. 전기가 어디에나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를 곳곳으로 데려다줄 겁니다.”
모리스와 살롬은 뉴욕시에 일렉트로배트를 가져와 자사 택시의 지속적인 운행을 가능하게 해줄 기발한 배터리 교환 체계를 브로드웨이의 스케이트장이었던 공간 내부에 만들었다. 직원들은 엘리베이터와 유압식 기계로 차량을 움직여 천장에 있는 기중기가 방전된 560kg 무게의 배터리를 꺼내고 완충된 배터리를 집어넣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은 불과 3분 만에 이뤄졌다. “이는 말을 교체하는 시간보다 훨씬 빨랐으며 아마 오늘날 우리가 주유하는 데 드는 시간만큼이나 빨랐을 겁니다.” 커시는 말한다.
빠른 가속이 가능하고 주행 소음이 적다는 일렉트로배트의 특징은 예기치 못한 문제를 일으켰다. 1899년 5월, 택시 운전사 제이콥 저먼은 시속 약 20km로 렉싱턴가를 질주하다가 과속으로 체포된 최초의 자동차 운전자가 되고 말았다. 몇 달 뒤에는 전기 택시가 어퍼웨스트사이드의 전차에서 내리던 부동산 중개인 헨리 블리스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차량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 최초의 보행자는 일렉트로배트가 접근하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모리스와 살롬은 차량을 판매하는 대신 월 단위 또는 1회 운행 단위로 대여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전기 마차 회사’라는 이름으로 운영된 이들의 택시 서비스는 뉴욕시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897년에 10여 대의 택시로 서비스를 시작한 그들은 1899년 100여 대를 운용하기에 이르렀다.
사업이 성장하자 모리스와 살롬은 더욱 창대한 미래를 꿈꿨다. 그들은 부유한 투자자들에게 새로 투자를 받았는데 그중에는 뉴욕시의 전차를 전기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잘 알려진 뉴욕시 자본가 윌리엄 휘트니도 있었다. 소유권이 휘트니에게로 넘어간 상태에서 이 회사는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 또한 인수해 미국 전역의 전기차 시장을 대부분 장악하고자 했다.
‘전기 자동차 회사’는 필라델피아와 시카고, 보스턴 등 주요 도시로 택시 운행 서비스를 빠르게 확장시켰고 마침내 미국 최대 규모의 자동차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급격한 사업 확장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뉴욕시 외의 지역에서는 사업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899년 <뉴욕 헤럴드>의 취재를 통해 이 회사가 부정한 방식으로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투자자들은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주가가 곤두박질쳤고 1902년쯤 회사의 재정 상태는 심각하게 악화됐다.

1910년대가 되자 전기 택시는 뉴욕시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밀번 라이트 일렉트릭’ 같은 초기의 전기차들은 내연 기관 자동차로 대체되기 전인 1920년대까지 꿋꿋이 운행됐다.
대형 화재로 인해 이 회사가 보유한 택시의 상당수가 소실되고 1907년에는 대공황으로 미국 전역이 경제 위기에 빠지면서 자동차 생산량이 급감했고 이는 뉴욕시의 전기 택시 사업에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내연 기관 자동차가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1907년 현지 사업가 해리 앨런은 프랑스에서 수입해온 휘발유 택시 65대로 택시 사업을 시작했다. 1년 만에 그가 운용하는 택시가 700대까지 늘었다. 뉴욕시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을 듯했다.
전기차 시대는 특히 1908년에 합리적인 비용의 내연 기관 자동차 ‘모델 T’가 출시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전기차가 1920년대까지 힘겹게 버티는 동안 내연 기관 차량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졌고 미국의 다음 100년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전기차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2022년에 뉴욕시에서 순수 전기차 택시 25대가 운행을 시작하며 이 미래의 자동차는 다시 한 번 우리 곁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