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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의 비밀

글 : 벤 맥그래스 사진 : 알렉스 사베리

발견된 일지와 감춰져 있던 수로 덕분에 기자 피라미드의 건설을 둘러싼 비밀이 새롭게 드러났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결과적으로 피라미드는 일종의 수상 운송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지금은 모래뿐인 기자 고원이 과거에는 번화한 항구와 맞닿아 있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오늘날 사막에 있는 거대한 삼각형 구조물은 어른들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지지만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친숙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 피라미드들을 두고 온갖 기상천외한 설이 난무했으니 오래전부터 이 태고의 신비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굳어져버렸다. 피라미드가 외계인이 남긴 산물이라는 주장도 잊을 만하면 등장했다. 어마어마한 자재를 조달하고 운반했다는 사실 자체가 도무지 납득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라진 나일강 지류가 발견되면서 이런 의문점들은 점차 해소되고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최종 건축 방식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다. 피라미드가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동서남북 방향에 맞춰져 있다는 것과 그 밑변이 놀라울 만큼 정사각형에 가깝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전부다. 이 사실은 피라미드 건설에 육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정밀함과 수학적 지식이 뒷받침됐음을 보여준다.
 
2013년, 홍해 연안에서 연구를 진행하던 다학제 연구 팀이 파피루스 일지를 발견했다. 일지에는 투라 채석장에서 대피라미드 건설 현장까지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운반한 과정이 기록돼 있었다.
약 100년 전, 미국 켄터키주 출신의 투시 능력자 에드거 케이시는 피라미드와 피라미드를 만든 고도로 진화한 영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계시는 그가 무아지경 상태에 있을 때 떠올랐다고 한다. 그 존재들은 신화 속 섬인 아틀란티스가 바다에 가라앉기 전에 이집트로 이주했다. 케이시가 본 환상에 따르면 그들은 신전을 세우기에 적합한 장소로 기자를 선택했다. 기자가 지구 땅덩어리들이 모인 중심부에 있거나 그 근처에 위치해 있어 파괴적인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재해에도 비교적 안전한 장소로 봤기 때문이다. 이는 BC 1만 500년경의 이야기다.

“피라미드의 돌들은 철을 공중에 떠 있게 하는 자연의 힘을 이용해 띄워졌습니다.” 케이시가 읊조리는 동안 비서가 이를 받아 적었다. 희한하게도 케이시는 대피라미드를 세우는 데 10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고대 역사학자들과 오늘날 이집트학자들이 추정하는 20-30년보다 훨씬 긴 기간이다. 갓돌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거나 애초에 존재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케이시에 따르면 피라미드에 갓돌을 올릴 때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큰 울림소리가 났는데 이로 인해 교회의 종소리를 울리는 풍습이 생겨났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200만 개가 넘는 돌덩어리로 건설됐으며 수천 년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이었다.
아틀란티스인들은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기록하고자 기자의 스핑크스 오른쪽 앞발 밑에 기록의 전당을 묻었다고 한다. 미국 노스다코다주 출신으로 기록의 전당에 기록된 비밀에 큰 흥미를 느낀 마크 레너는 이집트로 건너가 카이로 아메리칸대학교에서 공부에 전념했다. 그렇게 수십 년에 걸친 조사와 발굴 작업이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레너는 물론 고되기는 하더라도 증거에 기반한 철저한 연구에 더 가치를 두게 됐다. 레너는 이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이집트학자 반열에 올랐다. 비주류에서 집요한 학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변모한 것이다. 어쩌면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뚜렷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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