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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자의 비밀을 파헤치는 사람들

글 : 조슈아 해머

전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이제껏 한 번도 번역된 적 없는 마지막 미지의 문자들을 해독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학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인 돌파구를 활용해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수수께끼를 풀고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지 알아본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우리가 있는 방은 잠겨 있다. 벽에는 창문도 없고 천장에는 형광등만이 실내를 밝히고 있다. 복도에는 어두운 정장 차림의 경비원들이 묵묵히 순찰을 돌며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긴장감을 더한다. 우리는 지금 영국 런던 시내에 있는 한 건물 지하 2층의 대여 금고실에 와 있다. 이 금고실에는 이란계 영국인 예술품 수집가이자 세계적인 고대 근동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수장가 캄비즈 마부비안이 특히 가치가 높은 소장품들을 삼엄하게 보관하고 있다.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마부비안이 녹색 비닐봉지에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는다. 그는 봉지에서 오래전에 고부조 기법으로 두드려 만들어진 은제 잔을 꺼낸다. 잔에는 부조 장식이 띠처럼 둘러져 있다. 마부비안이 찻주전자 크기의 그 유물을 탁자 위에 올려놓자 우람한 체구에 투구를 쓰고 길게 땋은 수염을 늘어뜨린 남자가 두 팔을 바깥으로 펼친 채 경건한 자세를 취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부비안이 내게 좀 더 가까이 와서 보라고 손짓한다. “만져봐도 될까요?” 내가 묻는다. “물론이죠.” 그가 답한다.
 
엘람인들이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서 사용했던 청동기 시대의 문자 체계인 엘람 선문자는 100년 넘게 언어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다 고고학자 프랑수아 데세가 희귀한 은잔(위)들을 이용해 엘람 선문자를 해독하려 시도했다.
정교한 기호들이 잔 둘레를 따라 가지런하게 줄을 이루며 새겨져 있다. 더듬이 같은 돌기가 달린 삼각형, 빗금이 그어진 마름모, 번개 무늬, 별표 등 의 기호 말이다. 조명 아래에 잔을 비춰 들자 내 손이 살짝 떨린다. 금속 재질이 너무 연약하고 물러서 손가락으로 잡으면 부서질까 두렵다. 이 은잔이 초기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니 장인이 이 문양들을 은에 세심하게 새겨 넣은 때가 약 4300년 전이라는 뜻이다. 이 모든 기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고고학자들과 사학자들을 오랫동안 당혹스럽게 만든 수수께끼였다.

이 문자는 엘람 선문자라고 불리는 문자 체계에 속하며 오늘날의 이란 남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융성했던 엘람 왕국에서 BC 2700-2300년에 등장했다. 엘람 선문자는 수백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다가 다른 문자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다 불과 100여 년 전, 엘람 왕국의 수도 수사를 발굴하던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돌과 점토에 새겨진 19개의 새김글을 발견했다. 연속적으로 길게 나열된 기호들은 틀림없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 터였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대 문자 해독학자인 프랑스 출신의 언어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오른쪽)은 1822년에 이집트 상형 문자를 해독했다. 샹폴리옹은 위 사진과 같은 공책에 해독 과정을 기록했으며 세 가지 다른 문자 체계로 칙령이 새겨진 로제타석을 참고해 마침내 언어학적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엘람 선문자를 연구해온 언어학자들은 한 가지 결정적인 이유로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문자 자료의 전체 분량이 겨우 40개 남짓한 새김글로만 이뤄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언어를 조합해 문자를 해독하는 연구원들은 일반적으로 방대한 분량의 기호를 바탕으로 반복과 규칙, 문자군을 파악하며 이를 통해 문법과 통사, 인명, 지명에 대한 단서를 얻는다.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 즉 엘람 선문자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에 뛰어든 학자 중 한 명이 바로 프랑스 출신의 고고학자 프랑수아 데세였다. 데세는 호기심을 발판 삼아 엘람 문자 체계를 해독하기 위해 20년의 여정을 이어갔다. 최근 그가 해독에 성공했다는 주장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끄는 한편 회의론자들의 반발도 불러일으켰다. 또한 이 사건은 고대 문자 연구가 획기적인 전환점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부각시켰다.
 
라파누이족에 의해 주로 나무에 새겨졌고 이스터섬에서 발견된 사진 속 상형 문자는 롱고롱고 문자 체계의 일부다. 롱고롱고 문자 체계는 19세기부터 여러 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어왔다. 롱고롱고 문자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최신 방사성 연대 측정 결과 적어도 한 점의 목판은 15세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아직까지 10여 가지의 고대 문자 체계가 여전히 해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학자들은 종종 첨단 기술을 등에 업고 고대인들의 마지막 비밀을 밝히기 위해 나서고 있다. 최근 학자들은 인공 지능(AI)를 활용해 고고학 유적지를 찾아내고 판독이 불가능한 문서를 복원하며 언어 규칙을 분석해 문법과 어휘를 추론해냈다. 그러나 AI가 소수의 학자만 알고 있던 언어와 문자의 번역 속도를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미지의 문자를 해독하는 데 요구되는 창의성은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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