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에 걸쳐 건설된 그리스 운하
글 : 샘 킨 사진 : 디미트리오스 팔리스
허황된 꿈처럼 보였던 코린트 운하가 어떻게 공학적 걸작으로 탄생했는지 그 반전의 운명에 대해 알아본다.
사람들은 공기 지연에 대해 불평하지만 건설 계획이 발표된 후 무려 2500년이 지난 뒤에야 개통된 그리스의 코린트 운하에 비하면 그 어떤 현대의 운송 시설 건설 사업도 더디다고 할 수는 없다.수선에서부터 거의 80m 높이로 솟아오른 암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코린트 운하는 약 6km 길이로 코린트만과 사로니코스만을 연결한다. 이론상 이 항로는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우회하는 항로보다 수백 킬로미터를 단축시켜준다. BC 600년경에 코린트의 통치자 페리안드로스가 처음 이 운하의 건설을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운하 대신 석회암이 깔린 도로에 원시적 형태의 선로를 설치했고 그 위로 소형 선박을 끌어올려 지협 사이를 이동하게 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칼리굴라는 이 운하 건설 계획을 부활시키려 했으나 실제로 공사를 시작한 인물은 AD 67년 네로 황제였다. 인부 수천 명이 동원돼 약 3km 길이의 수로를 굴착했지만 그가 축출되면서 건설 작업은 중단됐다. 이후 무려 1800여 년이 지나서야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한 한 그리스 기업이 이 과업을 완성했다.
1893년에 마침내 코린트 운하가 개통됐다. 하지만 이 물길은 곳에 따라 폭이 21m로 점점 대형화되던 해운 업계의 선박이 통과하기에는 너무 협소해 상업 항로로는 이용되지 못했다.
오늘날 코린트 운하는 주로 관광 명소로 사용된다. 코린트 운하의 총괄 관리자 예오르게 주글리스는 올해 약 1만 5000척의 선박이 이 운하를 통과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또한 선박 대다수가 화물 대신 관광객을 태운다는 사실은 이 수로의 경이로움을 한 치도 퇴색시키지 않는다. “이곳을 지나는 모든 선박의 선장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겁니다.” 주글리스가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