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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의 은밀한 유령 코끼리들

글 : 그레이슨 샤퍼 사진 : 야스퍼 두스트

앙골라에서 수십 년간 이어진 무력 분쟁 이후 많은 앙골라인들은 코끼리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끼리를 숭배하고 녀석들과 공존해온 현지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 이른바 ‘유령 코끼리’를 찾아 나선 탐사대 덕분에 이 거대한 동물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놀라운 진실이 드러난다.

아브라앙 안토니우 루호케(41)가 쟁반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얕게 팬 흙 위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유령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법이지만 나는 이곳 앙골라 동부 고원 지대의 모래 언덕 위에 뚜렷하게 찍힌 그 발자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때는 건기에 속하는 6월 하순의 어느 쾌적한 날이었다. 초크웨족 출신으로 전직 군인이자 현지 사냥꾼인 루호케는 여섯 명으로 구성된 우리 탐사대가 아침나절 내내 코끼리 무리를 찾아 헤매는 동안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있었다. 이 코끼리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데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탓에 수십 년 동안이나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었다.

루호케의 뒤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생태학자이자 본 협회의 탐험가인 스티브 보이즈(46)와 세 명의 앙골라인이 성큼성큼 따라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역시 본 협회의 탐험가이자 보이즈와 함께 리시마 재단을 공동 설립한 컬렌 코스타(39)도 있었다. 코스타는 리시마 재단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리시마 프로젝트’의 앙골라 지부장을 맡고 있다. 우리 탐사대는 경계심이 많은 이 코끼리 무리를 기록하고 연구하며 보호하려 애쓰고 있었다. 우리가 추적하던 코끼리는 20마리 정도였지만 보이즈는 약 100마리의 코끼리가 여전히 이 지역을 오간다고 추정한다.
 
유령 코끼리들을 추적하려면 미세한 단서를 포착하는 예리한 눈이 필요하다. 부러진 어린나무나 나무에 남은 흔적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눈앞 모래 위에 찍힌 거대한 발자국을 발견하듯 쉽게 알아차릴 때도 있다.
지난번 탐사 때 보이즈는 친장가라는 마을의 한 공동체 지도자로부터 눈에 잘 띄지 않는 코끼리 무리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 지도자는 녀석들을 ‘유령 코끼리’라고 부르면서 이 계곡에 사는 사람들조차 몇 달에 한 번 한 마리를 볼까 말까 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 코끼리들은 지구상의 다른 코끼리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녀석들은 해발 약 1200m의 고원 지대에 서식하고 사람을 피해 주로 밤에 움직이며 몸집이 거대하지만 소리 없이 이동한다. 보이즈는 이러한 습성이 여러 세대에 걸쳐 겪은 폭력 때문에 생겨난 행동적 적응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코끼리들이 너무도 능숙하게 숨어 지내온 까닭에 녀석들이 지난 수십 년간 이 지역을 완전히 떠났다가 최근에 다시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줄곧 이곳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인지조차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어느 쪽이든 보이즈는 아직 이 코끼리들을 지킬 기회가 남아 있다고 본다. 유령 코끼리들이 단 몇 년 만이라도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녀석들이 서서히 인간에게 다시 익숙해지고 다른 코끼리들처럼 평범하게 행동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유령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또 있다. 앙골라 동부 고원 지대에 사는 토착민들은 코끼리의 거대한 몸에 조상의 영혼과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는 정령이 모두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곳 앙골라에 사는 사람들과 코끼리들이 부족한 자원을 두고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지만 이런 믿음만큼은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보이즈가 이번 임무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단순히 코끼리를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코끼리들을 추적 관찰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400명 규모의 경비대를 조직해 코끼리를 지키려 애쓰는 현지 지도자들을 돕고 싶어 한다. 보이즈의 원대한 꿈은 인간이 달라졌고 다시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됐다는 사실을 코끼리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보이즈와 대원들은 이 코끼리들을 찾아내야만 했다. 며칠간 현장을 다니고 오지 깊숙이 수 킬로미터를 들어간 끝에 이 발자국을 발견했다. 우리가 그 코끼리 무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첫 번째 분명한 증거였다. 정말 유령 코끼리다웠다.
 
앙골라인인 컬렌 코스타는 코끼리 추적을 비롯해 자연 및 문화 보존 활동에 15년간 몸담아왔다. 이 활동은 부족 지도자들이 관리하는 외딴 지역에서 험준한 지대를 넘나들어야 하는 고된 과업이다.
앙골라는 1961년부터 1974년까지 포르투갈에 맞서 독립 전쟁을 치렀고 1975년부터 2002년까지는 유례없이 잔혹한 내전을 겪었다. 이 시기에 앙골라에 서식하던 코끼리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같은 시기에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군인들이 광범위하게 매설한 지뢰는 지금까지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인간도 야생동물도 모두 전쟁을 피해 나미비아와 보츠와나, 잠비아로 도망쳤다. 우리가 코끼리들을 찾아 헤매던 앙골라의 남동부 지역은 반군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가 2002년에 사망할 때까지 반군의 본거지였다. 사빔비의 군수지원부대는 코끼리들을 사살해 상아를 취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보이즈는 더 폭넓은 보존 계획을 염두에 두고 이 지역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2015년, 보이즈는 앙골라의 강과 야생동물이 오카방고 삼각주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알아보고자 통나무배를 타고 쿠이투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갔다. 오카방고 삼각주는 보츠와나에 자리한 광활한 내륙 습지로 보이즈가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가져온 곳이기도 하다. 그 여정에서 보이즈는 오카방고 삼각주의 건강이 전적으로 강의 발원지인 앙골라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카방고 삼각주를 살리고 싶다면 그 발원지를 보호해야 합니다.” 보이즈는 말했다.

현지 루차지족 사람들은 앙골라 동부 고원 지대를 ‘리시마 리야 음워노’, 즉 ‘생명의 근원’이라고 부른다. 보이즈가 설립한 리시마 재단의 이름도 여기에서 따왔다. 이 재단은 앙골라의 생태계를 조사하고 보호하며 복원하는 일에 전념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을 안내인과 관리원, 연구원으로 채용한다. 보이즈는 첫 탐사 때 성체 수컷 코끼리 한 마리가 가꿔놓은 듯한 공터를 발견하고 그곳을 ‘코끼리 정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만약 코끼리 개체군이 그렇게 북쪽에 실제로 살고 있다면 실로 엄청난 발견이 될 터였다.

2016년, 보이즈는 코끼리를 꼭 찾아내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코끼리 냄새가 나기 시작했지만 정작 녀석들의 모습이 보이거나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죠.” 그는 말했다. 감시 카메라에는 표범과 호저, 버빗원숭이, 덤불멧돼지가 포착됐지만 코끼리는 없었다. 보이즈는 2019년에 다시 한 번 도전했다. 이번에는 헬기까지 동원해 아프리카의 거대한 세 강인 오카방고강과 콩고강, 잠베지강의 발원지를 이루는 토탄 늪지대와 미옴보 숲 능선을 샅샅이 뒤졌다. 여전히 코끼리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루호케가 나타났다.
 
앙골라 고원 지대를 흐르는 쿠안두강 위로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아프리카의 거대한 세 강인 오카방고강과 콩고강, 잠베지강의 발원지가 있다. 이곳의 다채로운 경관은 인간과의 접촉을 피하려는 코끼리들에게 훌륭한 은신처를 제공한다.
“나는 2021년에 사냥을 다니고 있었죠. 당시 친구 중 몇 명이 이미 스티브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요. 코끼리의 흔적을 보고는 코스타에게 당신들이 지금 엉뚱한 곳을 수색하고 있는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죠.” 루호케가 말하고 코스타가 통역했다.

루호케는 수색 범위를 앙골라 동부 고원 지대에 자리한 작은 마을 캉감바 주변으로 좁히자고 제안했다. 루호케가 리시마 프로젝트에 합류한 후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불과 몇 달 만에 감시 카메라에 코끼리의 모습이 잠깐씩이라도 포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24년 9월에는 비록 영상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휴대전화로 코끼리 모습을 뚜렷하게 담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루호케는 고원 지대를 누비며 어린나무들이 짓밟힌 흔적을 찾아내는 역할을 맡게 됐다. 첫 번째 발자국을 발견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갑자기 숲이 탁 트이더니 마치 술 취한 불도저 기사가 밀고 지나간 듯한 공터가 나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축구공만 한 크기에 아직 점액질로 번들거리는 배설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유령 코끼리들이 제아무리 은밀하고 야행성이라고 해도 배설까지 안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보이즈와 리시마 프로젝트 팀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와 협력하고 있다. 두 대학교의 연구진이 점액에서 DNA가 풍부한 세포를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면 아프리카코끼리 및 둥근귀코끼리 개체군과 비교해 이 유령 코끼리들이 계통상 어디에 속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보이즈는 검체 채취용 용기의 뚜껑을 열고 아직 따끈따끈한 배설물 더미에서 시료를 채취할 준비를 했다.
 
루차지족 족장인 음웨네 치부에카 6세는 약 3000km²에 이르는 침빈디 지역을 다스리고 있다. 이 지역에는 약 100마리의 코끼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음웨네 치부에카와 루차지족 부족민들은 조상들이 코끼리로 둔갑해 나타난 것이라고 믿으며 코끼리와 녀석들이 사는 땅을 보호하는 일을 신성한 의무로 여긴다.
앙골라의 환경 보호 활동가들은 약 10년에 걸친 코끼리 추적 끝에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고 듣는 현지 지도자들이 가장 귀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가 풀숲으로 떠나기로 한 날 아침, 리시마 프로젝트의 앙골라 지부장인 코스타는 헤제도르 카케체(‘현지 지도자’라는 뜻)의 집 대문 앞에서 몸을 낮췄다. 코스타는 우리를 맞이해줄 지도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두 손바닥을 살짝 오므린 채 모아 살며시 손뼉을 쳤다. 보이즈와 다른 대원들도 코스타를 따라 했다. 은캉갈라족(은강겔라족의 하위 부족)의 지도자 헤제도르 카케체는 캉감바 외곽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주거 단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지도자는 표범 가죽을 걸친 채 우리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헤제도리아(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의 행정 구역) 제도는 한때 포르투갈인들이 토착민을 지배한 수단이었지만 앙골라가 독립한 이후 헤제도르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관리하는 문화 중개자나 지역 족장에 더 가까운 역할을 하게 됐다.

“우리가 어떤 지역에서 활동해야 할 일이 생기면 먼저 전통 지도자에게 허락을 구합니다.” 코스타는 리시마 프로젝트의 계획을 설명하며 헤제도르 카케체를 안심시켰다. 지도자는 축복을 내린 다음 코스타에게 몇 가지 부탁을 했다. 영토 내에서도 특히 접근이 힘든 지역에 두 개의 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그 방법을 지역사회가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또한 코끼리를 감시할 추적 전문가와 경비대원으로 지역 주민들을 고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여러분이 찾고 있는 존재는 코끼리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헤제도르 카케체는 통역사를 통해 설명했다.

우리는 앙골라 루에나 근처에서 여정을 멈추고 쿠바카네 무쿰비 리밤바를 만났다. 그는 루차지족 족장으로 음웨네 치부에카 6세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일흔이 넘은 그는 3000km²에 이르는 ‘침빈디’라는 헤제도리아를 포함해 넓은 영토를 관할하는데 이 지역은 현재 연구 중인 코끼리 서식지 가운데 일부이기도 하다.
 
루차지족 부족민이 시작한 계획적 방화 관행은 숲의 재성장을 촉진하는 동시에 대규모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도 한다.
음웨네 치부에카는 표범 가죽으로 만든 깔개 위에 사자 가죽을 덧깔아서 만든 왕좌에 앉은 채로 루차지족의 조상들이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에 속한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의 동부에서 이동해 와 앙골라에 정착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루차지족의 조상들은 오늘날 앙골라와 콩고민주공화국의 북동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카사이강을 처음으로 건넌 사람들이었다.

음웨네 치부에카 역시 헤제도르 카케체처럼 코끼리가 인간의 조상이며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준비가 돼야만 비로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코끼리가 그저 짐승에 불과하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허가를 내주고 코끼리들에게 영적인 메시지를 보내 서로 만나게 해줬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죠. 코끼리는 단순한 짐승이 아니니까요.” 치부에카는 코스타에게 말했다.

탐사대는 비록 왕의 영적인 개입에는 의존할 수 없었지만 대신 현대 기술을 활용할 수는 있었다. 한 달 앞서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이자 본 협회의 탐험가인 야스퍼 두스트가 루호케를 비롯한 현지 사냥꾼들로부터 코끼리가 자주 출몰한다고 전해 들은 약 800km² 구역에 여섯 대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뒀다. 헤제도르 카케체를 만난 후에 우리는 카메라를 확인하고 코끼리들이 모습을 드러낼 준비가 됐는지 살펴보러 풀숲으로 향했다.
 
한 전통 가면이 앙골라 루안다에 있는 국립인류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 가면은 한때 앙골라 동부 지역에서 성인식과 수확 의례에 사용됐다. 이와 같은 공예품들은 대대로 숲과 강, 코끼리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는 데 쓰였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야영지를 향해 5시간에 걸친 여정길에 올랐다. 쌀과 정어리 통조림, 감자, 카사바가 담긴 포대를 높이 쌓아서 중국산 125cc 케웨세키 오토바이에 단단히 묶었다. 나는 마르쿠스 무솔레(41)의 허리를 꼭 붙들고 있었다. 무솔레는 달리는 내내 포르투갈어로 외치며 경고했지만 나는 그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쿠안두강에 도착하고 보니 헤제도르 카케체가 왜 다리를 놓고 싶어 했는지 금방 이해가 됐다. 토탄층으로 된 강바닥을 따라 맑은 강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보이즈는 이 강물을 마셔도 괜찮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앙골라인들은 옷을 벗고 약 130kg이나 되는 오토바이를 단단한 나무 막대기에 걸어 어깨에 메고 강을 건넜다. 맨살이 드러난 무솔레의 등에는 7.62mm 탄환에 맞아 생긴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1999년 쿠티티 인근에서 발생한 습격 당시 생긴 흉터였다. 같은 마을 출신으로 전쟁 중에 뱃사공이었던 엘리아스 칼루에요는 강둑 근처 물속에 잠겨 있던 나무껍질 통나무배로 우리의 물품을 실어 날랐다.

우리는 켐부강 옆에 야영지를 꾸렸다. 이튿날 아침에는 코뿔새와 덤불멧돼지의 배설물, 덩굴과 나무껍질을 엮어 만든 올가미 덫을 지나쳤다. 나무 위에 설치된 사냥용 발판 옆에는 스페인산 산탄총 탄피들이 흩어져 있었다. 앙골라 루안다의 정부 관료들은 현지 사냥꾼들이 칼라시니코프 돌격 소총 대신 러시아제 12구경 단발 산탄총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산탄총은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독화살보다 파란다이커를 잡는 데 조금 더 위력이 있을 뿐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루호케는 한때 파란다이커를 사냥해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루안다에서 도시 생활을 하며 도회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때 가족들이 너무 그리웠어요. 우리는 풀숲에서 지내는 삶이 익숙했기 때문에 결국 도시를 몰래 빠져나와 난민 캠프에 있던 가족들을 찾아냈죠.” 루호케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또한 풀숲은 유령 코끼리들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반군 지도자 사빔비가 사망한 이후의 세월도 전쟁 못지않게 코끼리들에게 가혹했다. 내전이 한창일 때는 반군이 중앙군수지원부대를 통해 상아 유통을 통제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숲이 무장한 남성 실업자들로 넘쳐 났다. 이들에게는 고기와 상아를 구하는 일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태학자인 스티브 보이즈는 지난 10년간 지역사회 중심의 접근 방식을 바탕으로 앙골라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힘써왔다. 보이즈는 ‘리시마 프로젝트’를 통해 현지 주민들을 안내인과 관리원, 연구원으로 채용한다.
오후가 깊어질 무렵 보이즈는 나뭇조각이 섞인 코끼리 배설물 더미를 헤집으며 유전학자들에게 보낼 표본을 계속해서 채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개활지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밤 기온은 0℃ 가까이 떨어졌다. 루호케가 몸을 녹여줄 모닥불을 피웠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그는 코끼리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냈다.

코끼리만큼 거대한 동물을 추적할 때조차 여전히 미세한 흔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무줄기 약 3m 지점에 엉겨 붙은 털과 진흙을 보면 그곳에서 코끼리들이 몸을 긁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원들은 찰람바강을 건너는 지점에서 보이즈와 함께 모여 논의한 끝에 모두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추적해온 20마리 규모의 큰 코끼리 무리가 또 다른 24마리의 코끼리 무리와 만났다는 것이다. 두 무리는 잠시 교류하다가 우리가 추적하던 무리는 강 상류 쪽으로 이동했다. 코끼리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녀석들이 앞발을 질질 끌며 남긴 발자국은 자신들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증거였다.

야생동물 추적은 추론과 공감 능력에 기반한 인류 최초의 과학이라 해도 무방하다. 추적가는 코끼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흔적의 패턴에서 녀석들의 의도를 읽어내야 한다. 이 코끼리들은 사냥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성체 코끼리에게는 천적이 없지만 이 코끼리 무리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이제는 밤에 먹이를 찾고 낮에는 은신처를 찾아 숨는다.

마침내 우리는 두스트가 설치해둔 감시 카메라 중 첫 번째 카메라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카메라는 망가져 있었고 나무는 뿌리째 뽑혀 있었다. 보이즈는 낙담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담배를 말아 피웠다. 코스타는 망가진 카메라 케이스를 열고 메모리 카드에 저장된 사진들을 훑어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새까만 늪과 컴컴한 밤 풍경뿐이었다. 유령 코끼리들은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은 채 카메라를 부숴버린 것이었다.
 
오를란두 카분제라는 한 남자가 앙골라 캉감바 인근을 흐르는 루앙긴가강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오랫동안 이 물줄기를 보호해왔으며 이를 통해 인근 환경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 전역으로 흘러가는 하류 유역까지 보존해내고 있다.
며칠 후, 칼루에요는 두스트가 설치해둔 감시 카메라에서 나머지 메모리 카드를 모두 회수한 다음 새로운 메모리 카드와 배터리로 교체했다.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과 론영양, 칠흑같은 어둠이 담긴 1만 장의 사진 중에서 중년의 암컷 코끼리 한 마리가 찍힌 몇 장의 사진만이 발견됐다. 그 코끼리는 카메라를 응시하다가 이내 느릿하게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DNA와 배설물 표본은 스탠퍼드대학교로 보내졌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연구원들 덕분에 적어도 한 가지 궁금증은 풀 수 있었다. “100% 확률로 아프리카코끼리예요. 그렇게 높은 지대에 코끼리 개체군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전혀 몰랐습니다.” 유전자 검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생태학자 조다나 마이어 모건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러나 예비 분석 결과는 또 다른 사실을 보여줬다. “이 코끼리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염기 서열을 분석한 그 어떤 코끼리와도 유전적으로 뚜렷이 구별됩니다. 녀석들은 수백 년 동안 고립돼 살아온 것처럼 보여요.” 마이어 모건과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보존유전학자 케이티 솔라리는 말했다.

이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유령 코끼리들이 앙골라 내전을 피해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둔하는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유령 코끼리들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파악해 지도화하면 어떤 이동로를 보호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틀간의 횡단 조사를 마친 후 보이즈는 떠났고 리시마 프로젝트 팀은 루에나에 있는 공항으로 다시 모여 두스트를 맞이하러 갔다. 두스트는 코끼리 사진을 단 몇 장이라도 건졌다는 사실에 몹시 감격해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칼루에요의 고향 마을인 쿠티티였다. 남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쿠티티는 쿠안두강과 켐부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코끼리들이 얼마나 넓은 지역에서 자취를 감췄는지 조사하고 앞으로 코끼리들에게 닥칠 미래를 가늠해보기 위해서였다. 폭이 약 3km에 달하는 범람원에는 치타와 악어, 론영양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었지만 한때 거대한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던 코끼리는 거의 모습을 감췄다. 쿠티티까지 가려면 10명의 일행이 장비를 가득 실은 랜드크루저를 타고 15시간을 달려야 했다.

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현지 어부들과 거래를 막 마친 여성 사업가들과 마주쳤다. 그들 앞에는 말린 메기와 아프리카타이거피시가 담긴 38개의 마대 자루가 쌓여 있었는데 그 무게만 해도 5t에 달했다. 그 위에는 왕도마뱀 한 마리도 올려져 있었다. 안젤리나 카푸티(37)와 친구들은 트럭을 빌려 구매한 물건을 루에나로 실어갈 예정이었다. 정부 보조를 받던 연료값이 크게 오르면서 이윤은 거의 남지 않는 상황이었다. “살아남으려면 해야 할 일을 찾아내야만 해요.” 카푸티는 말했다.

지역 거래의 제한적인 특성 덕분에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열악한 도로 상태와 저기술 수확 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한 소규모 농사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더 나은 기반 시설이 갖춰져 대형 트럭이 다닐 수 있게 되면 범람원은 순식간에 황폐해질지도 모른다. 어업도 마찬가지다. 좁은 물길에 나일론 자망을 몇 개만 쳐도 물고기 떼를 전멸시킬 수 있다. 앙골라 국토의 일부 지역이 여전히 야생동물의 피난처로 남아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천연 자원을 대규모로 개발하거나 경제적으로 이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부인 조르제 응군가는 이 강에서 20년째 조업을 해왔다. 그의 조카딸인 호자 카수에카는 어획량이 꾸준히 유지돼왔다고 말했다. 내전 때문에 개발이 중단된 것이 오히려 환경 보호 측면에서는 작은 기회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관건은 이런 작은 기회들이 과연 코끼리들의 생존을 돕는 데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쿠안두강과 켐부강의 합류 지점을 건너려면 수풀과 우각호를 헤치며 약 8km에 달하는 강행군을 해야 했다. 칼루에요는 무시비나무로 만든 약 4m 길이의 통나무배를 장대로 밀며 나아갔다. 그 통나무배는 갈대 사이를 가르며 빠르게 나아갈 수 있을 만큼 날렵했다. 칼루에요는 내전 당시 반군을 위해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소년 뱃사공으로 징집되기도 했다.
 
앙골라 내전 당시 군인이었던 아브라앙 안토니우 루호케는 현재 리시마 프로젝트에 참여해 코끼리 추적을 돕고 있다. 사진 속 소련 시대의 전차는 오늘날에도 앙골라 곳곳에 남아 있는 내전의 흔적 중 하나다.
“이 계곡에는 언제나 코끼리들이 가득했어요. 내전 중에는 사냥이 통제하에 이뤄졌죠. 반군은 상아를 얻으려고 큰 코끼리들을 잡았고 고기는 특정 마을로 보냈어요. 하지만 내전이 끝난 후에는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한동안 코끼리들은 이곳에 남아 있었지만 그 후 완전히 자취를 감췄어요.” 칼루에요가 코스타를 통해 말했다.

칼루에요가 빠르게 앞서가는 동안 남은 우리들은 유리 섬유로 만든 배를 장대로 밀며 나아갔다. 전통 방식으로 엮은 통발 옆으로 잘게 잘린 슬리퍼와 아스트로 콜라 페트병을 부표 삼아 띄워놓은 수 킬로미터 길이의 나일론 자망이 이어져 있었다. 코스타가 그물에 걸린 붉은왜가리 한 마리를 풀어주는 동안 파피루스 줄기 사이에서 말라카이트물총새들이 퍼드덕 날아올랐다.

100명가량이 거주하는 마을 쿠티티는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다. 휴대전화 신호도 없고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다. 심지어 라디오도 없다. 세상 소식은 누군가가 이틀 거리에 있는 마을에 갔다 올 때만 전해진다. 우리가 마을에 도착한 일요일, 마을 소년들은 교회에 갈 때 입었던 옷을 축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이곳의 생활 방식은 기독교 신앙과 더 오래된 정령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칼루에요의 소떼는 브라치스테기아속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고 막내딸은 우리를 맞이하러 달려 나왔다.

“어디를 걷든 동물이 있었어요. 코끼리는 사방에 널려 있었죠. 코끼리들은 사람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았어요. 사냥은 통제됐죠. 아무나 사냥할 수 없었어요. 관리가 됐죠.” 마을의 원로인 구스토 루이스 카볼로(56)는 옛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카볼로는 숲을 가리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녀석들은 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죠.”
 
코스타가 고원 지대에 있는 호수에서 아침 물안개를 가르며 노를 젓고 있다. 지역 전통에 따르면 이 물에는 ‘무키시’라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믿음 덕분에 개발을 막고 습지를 보존할 수 있었다.
앙골라의 유령 코끼리들이 전쟁 중에 더 큰 피해를 입었든 전쟁 이후에 더 큰 타격을 받았든 분명한 것은 그 코끼리들이 거의 멸종 직전이라는 사실이다. 녀석들은 최대한 먼 곳으로 숨어들었다.

보이즈가 코끼리 보호와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던 시기는 새로운 종류의 환경 보호 모델이 부상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정책 전문가들은 이 보호 모델을 ‘기타 효과적인 지역에 기반한 보전 조치(OECM)’라고 부른다. 이 모델은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보호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야생동물 서식지와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중점을 두며 주로 그 관리 권한을 토착민과 지역 공동체에 맡기는 방식을 취한다. 앙골라처럼 한때 아프리카코끼리가 널리 살았던 땅에 이 토착 최상위 포식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만큼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명확한 신호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앙골라는 재건 과정에서 다른 우선 과제들도 안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 23년이 지났지만 루안다 같은 대도시는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재건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루안다에서 아프리카 12개국 정상이 참석한 미국-아프리카 경제 회담이 열렸다. 각국 정상들이 타고 온 전용기가 활주로에 줄지어 서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이 루안다 외곽에 깨끗한 새 공항 터미널을 지어줬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 속에서 야생동물 보전이 과연 앙골라의 핵심 과제가 될지는 미지수다.
 
어부이자 노련한 코끼리 추적가인 엘리아스 칼루에요가 나무로 만든 기다란 노 ‘은카시’를 어깨에 메고 쿠안두강의 습지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 노는 자신이 사는 쿠티티 마을로 통나무배를 타고 돌아갈 때 사용될 것이다.
탐사 마지막 날까지도 우리는 코끼리를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쿠안두강 강둑에서 다시 모여 마지막 야영지를 꾸렸다. 그날이 일요일이라 루호케는 혼자 떨어져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칼루에요는 그날 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합류하기로 했다. 나는 강에서 긴 하루를 보낸 터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에 난데없이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알고 보니 독사인 뻐끔살무사 한 마리가 코스타의 텐트 안으로 들어와 그의 맨다리에 몸을 비비며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코스타는 뱀에게 물리지 않았다. 우리가 응급 구조를 받을 수 있는 곳까지는 여전히 이틀 거리나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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