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가다
아프가니스탄을 40여 차례나 방문 취재했던 한 베테랑 기자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를 다시 방문해 오사마 빈 라덴, 탈레반, 그리고 반군 지도자 마수드 암살범들과 직접 만났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내가 빈 라덴을 처음 만난 때는 1989년 2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주였다. 빈 라덴은 동부 산악지대에서 자원병들과 함께 군사활동을 펴고 있었는데 병사들은 주로 아랍인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아프간인은 소수였다. 소련을 몰아냈던 여러 파벌들은 변방 통치권을 장악하고자 이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으며, 일부에서는 소련군이 철수했는데도 카불을 지키고 있는 공산정권을 몰아내려는 투쟁이 계속중이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동행하고 아랍인들이 주둔하는 잘랄라바드 외곽에서 방송 다큐멘터리 소재를 찾고 있었다. 이때 키가 훤칠하고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무장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가왔다. 그는 미국식 발음이 약간 섞인 유창한 영어로 내가 누구이며 나 같은 '카피르(이교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뭘 하고 있는지 말하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45분 동안 전쟁·종교·외국인을 주제로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는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서구세계의 취약성과 도덕성의 결여를 비판했다. 아랍인들이 전쟁에 참여하기도 전인 초반부터 서구의 기자들과 구호인력은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지 않았느냐는 나의 지적에 그는 경멸스럽다는 듯 침을 뱉었다. 그는 날더러 다시 오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일주일 후, 산너머에서 공산군이 빈 라덴의 참호를 향해 박격포를 퍼붓고 있을 때, 나는 무자헤딘과 다큐멘터리 제작진을 이끌고 다시 그곳으로 갔다. 그의 참호를 향해 차를 모는 나를 보자마자 빈 라덴이 고함을 쳤으며 순간 공산군에 대항해 한편에서 싸우던 아랍군과 아프간군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다. 내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과 함께 갔기 때문에 빈 라덴 밑에 있던 아프간군이 의심을 받은 것이다. 아랍군 한 명이 소련제 AK-47 가스총을 우리 촬영기사 등에 갖다 대고 "다 죽여버릴 거야! 모조리 없애겠어!"하며 방아쇠 당길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나와 동행했던 아프간 통솔자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이슬람을 위해 좋지 않다고 설득하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후퇴했다.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던 그 남자가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는 사실은 불과 몇 년 전에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