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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미라 구출 작전

페루의 한 빈민촌에 불어닥친 도시개발로 인해 훼손될 위기에 처한 잉카 시대의 공동묘지. 수백여 구에 달하는 미라와 각종 무기, 도예품, 직물을 구해내기 위해 고고학자들이 발벗고 나섰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리마 외곽에 있는 빈민촌 투팍 아마루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이들 발 밑에는 여태껏 페루에서 발견된 잉카 묘지 가운데 최대 규모에 속하는 공동묘지가 있는데, 아주 건조한 이 지역 토양 덕택에 지금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다. 고고학자들 사이에 '푸루추코-와케로네스'라고 알려져 있는 이 공동묘지는 스페인에게 정복당하기 이전의 잉카제국(1438~ 1532년)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국립 기념물로 지정돼 있지만 현재 진행중인 도시개발로 유적지가 파괴되기 전에 발굴을 서둘러야 한다. 이 학교 운동장은 우리가 지난 3년 간 발굴한 15개 지역 중 하나로, 120구가 넘는 미라가 출토됐다. 시신과 부장품들은 모두 천으로 겹겹이 싸여 있었는데, 이는 잉카제국 이전 시기부터 잉카제국 말기까지 행해지던 전형적인 매장 방식이다.
투팍 아마루의 형성 과정도 페루의 다른 빈민촌들과 비슷하다. 1989년, 고산지대의 게릴라들을 피해 약 340가구가 이 지역에 정착했고, 이주민들은 정부로부터 곧 토지소유권을 인정 받게 될 것이라는 부동산업자들에게 속아 돈을 주고 이곳에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편 지하 2m 지점에 묻혀 있던 미라들은 갑자기 유입된 상·하수로 인해 썩기 시작했고 몇몇 이주민들은 미라를 파내 태워버렸다. 발굴작업이라도 시작되면 개발이 지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수년에 걸쳐 유적지가 많이 훼손된 후에야 페루 국립문화유적연구소(INC)가 이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평가작업을 요청했다. 나는 1999년 리마에서 발굴팀을 이끌고 투팍 아마루에 갔다. 빈민촌은 1240여 가구로 늘어나 있었다. 정부에서 강제이주 명령을 내렸으나 이에 불복한 주민들은 건물 신축을 위한 지반 정지 작업을 중단키로 합의하고 돈까지 걷어주며 발굴작업에 협조했다. 주민들은 그것이 일종의 장기투자라고 보았다. 그렇게 하면 토지소유권을 인정해주고 상하수도 등의 기본 설비를 갖춰주는 등 부동산업자들이 해주지 않았던 것들을 정부가 대신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에 주민들은 우리가 도굴을 하거나 대충 하고서 남은 기금을 착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자신들을 고용해 발굴작업에 동원하자 우리를 신뢰하게 됐다. INC 관계자들도 현장을 매주 방문했다. 발굴팀은 세 차례의 발굴 작업에서 75년에 걸쳐 매장된 다양한 신분과 연령대의 미라 2200여 구를 발굴, 조사, 촬영했다. 8ha에 달하는 이 공동묘지는 지금까지 페루에서 발굴된 묘지들 중 수백 년 동안 조성된 안콘 묘지에 이어 두번째로 크지만, 매장 기간으로만 따지면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다. 유물들은 이지역 박물관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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