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인스타그램 보기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키즈

매거진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일리노이주, 시카고

도심을 달리는 육중한 전차가 이토록 안락하고 흥미로운데다 인간적인 정취까지 풍긴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도심을 달리는 육중한 전차가 이토록 안락하고 흥미로운데다 인간적인 정취까지 풍긴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동네를 한바퀴 도는 관광열차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단돈 1달러 50센트를 내고 링컨파크의 고가전차에 오르면 차창 밖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핑크빛 목욕 가운을 걸친 아가씨가 에스프레소 커피를 끓이는 모습, 세련된 카키색 바지의 젊은이가 아기에게 음식을 떠먹이는 모습. 승강장에서는 전차를 기다리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신문을 들고 커브스(시카고의 야구팀)의 기사를 찾느라 열심인 모습도 보인다. 더 지나자 창가의 화분들과 2층 테라스들이 길게 이어지며 지나가는데 어찌나 가까운지 전차가 달리고 있지만 않다면 승객과 주민이 대화를 나누거나 손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것이 110년 된 시카고의 명물, 고가전차 'L' 주변의 풍경이다. L은 링컨파크 지역의 경제를 되살리는 데도 한몫했다. "살다보면 소음에 익숙해져요." 어느 날 오후 L이 지나는 웹스터 애비뉴에서 술집, 켈리스 펍을 운영하는 존과 폴리 켈리 부부가 말한다. 이 때 퇴근길인 듯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첫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진한 색 나무로 인테리어를 한 술집 안은 낡은 스포츠 사진들로 가득했는데, 주욱 둘러봐도 전차 소음에 신경쓰는 이는 없다. 이 우편번호 구역에는 전차역이 세 개 있는데 켈리스 펍을 사이에 두고 두 블록 남쪽으론 아미티지역(驛)이, 두 블록 북쪽으론 풀러튼역이 있다. 구역의 면적은 불과 9k㎡에 불과한데 역이 많은 편이다. 이 술집 손님들은 전차가 지나갈 때마다 진동을 느끼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다음 얘깃거리를 궁리한다고. "첫 데이트 장소로는 그만이지요." 존의 말이다. 낙후돼 있던 링컨파크에 지금은 카페와 세탁소, 스포츠 센터, 콘도, 아름다운 정원과 100만 달러 이상 호가하는 주택들이 다시 들어섰다. 이렇게 된 데에는 L이 한몫했다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1871년의 대화재로 시카고가 폐허로 변하자 노스사이드를 비롯한 도시 외곽에서 야채를 재배해 트럭에 실어 내다 파는 사업이 등장했다. 곧이어 링컨파크라는 마을이 생겼고, 2층짜리 빅토리아양식의 건물들이 대거 들어섰다. 얼마 후 L도 등장했다. 뒤이어 호경기가 도래했고, 독일인과 아일랜드인들이 와서 정착했다. 갱단이 판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 대공황을 맞았다. 켈리스 펍은 금주법이 발효되고 나서 문을 열었는데 당시에는 이름이 L 태번이었다. 그 후 자동차가 흔해지면서 사람들은 교외로 이주했고 도심은 쇠퇴해갔다. 아울러 전차 이용자의 수도 줄어들었다. 자동차가 늘면서 도로의 정체가 극심해지자, 많은 젊은이들이 L 노선이 많아 교통이 편리한 링컨파크로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통계에 따르면, 1998년 브라운선(線)의 이용객은 1120만 명으로 1987년에 비해 37%나 증가했다. 켈리스 펍의 위층으로는 드폴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살고 있는데, 이런 젊은 독신자들은 밤이면 거리로 나와 곳곳에 즐비한 레스토랑과 동창들이 모이는 술집을 찾아다니며 즐긴다. "돈이 많아졌다는 사실만 빼면 학생 시절과 다를 게 없어요." 이곳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포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