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인스타그램 보기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키즈

매거진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흰머리수리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여러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미국의 국조(國鳥) 흰머리수리.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던 이 새들은 인간의 가혹한 대우와 살충제의 위험을 극복하고 지금은 안정적인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유럽인들이 북미대륙에 첫발을 내디뎠던 17세기에는 양 날개를 펼치면 2m에 이르는 흰머리수리들이 하늘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대륙 전체에 50만 마리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가축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착민들이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하면서 이 위풍당당한 새들의 수가 격감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인구밀도가 낮았던 알래스카주와 캐나다에 서식하던 흰머리수리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알래스카를 개척하던 20세기 초, 어부와 여우 사육 농장주들이 흰머리수리 때문에 자신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17년 준주 의회에서는 이 새를 잡으면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제정했다. 그때부터 1953년 이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희생된 흰머리수리의 수는 적어도 12만8000마리에 이른다. 그리고 알래스카주의 흰머리수리 개체수가 원래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 20년이란 세월이 소요됐다. 미국에서 멸종위기종보호법이 통과된 1973년에는 알래스카주와 캐나다 여러 지역에서 흰머리수리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요 없을 만큼 녀석들의 개체수가 안정되었다. 현재 이 두 지역에서는 10만 마리 가량의 흰머리수리가 번성하고 있다.
미국 본토 48개 주의 상황은 녀석들에게 훨씬 불리했다. 1940년 흰머리수리보호법이 제정된 이후로는 이 새를 총으로 쏘거나 다른 방법으로 해치는 일이 금지됐지만 알 껍질을 얇게 해 부화할 때 깨질 가능성을 높이는 농약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번식 가능한 흰머리수리가 400쌍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 미국의 국조(國鳥)로 다른 새를 찾아야 할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레이첼 카슨은 1962년에 펴낸 자신의 대표작 '침묵의 봄'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1972년에 DDT 살충제 사용 금지령을 비롯한 기타 법안들이 제정되면서 흰머리수리의 개체수는 놀랄 만큼 회복돼 1995년에는 '멸종위기종'에서 '취약종' 수준으로 사정이 나아졌다. 오늘날에는 거의 6000쌍에 이르는 흰머리수리가 번식하고 있어 머지않아 보호종 명단에서 완전히 빠지게 될지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미국을 상징하는 이들의 생존이 보장됐다고 할 수 있다.
사진기자 로징은 벼랑 꼭대기에 튼 둥지 근처에서 잠복하며 흰머리수리 한 가족을 몇 주 동안 촬영했다. 이곳은 캐나다 뉴펀들랜드주 플래센티아만 근처로, 이 주에는 흰머리수리 400쌍이 살고 있다. 뛰어난 낚시꾼인 녀석들은 높은 공중에서도 물고기를 찾아내 쏜살같이 내려오는데, 최고 15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먹이감을 잡은 수리가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둥지에 돌아왔다(위). 부화한 지 2개월 된 배고픈 새끼 두 마리에게 먹이를 나눠주고(아래) 수리는 다시 먹이사냥에 나선다(왼쪽). "새끼들에게 하루에 세 차례에서 다섯 차례 먹이를 갖다주죠." 로징의 말이다. 머지않아 새끼 수리들도 둥지를 떠나 하늘을 날아다니겠지만 그래도 몇 주간은 더 둥지 주변에서 머물 것이다.

포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