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타마리호의 마지막 항해
미국 플로리다 연안에서 침몰한 노예선 헨리에타마리호가 아프리카 노예들의 처절했던 이야기를 증언해준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배는 원래 영국 상선이었으나 잔혹한 노예무역에 동원된 뒤로는 푹푹 찌는 선창을 화물 대신 포로들로 가득 채웠다. 1700년 5월 18일, 헨리에타마리호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긴 항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지막 행선지인 자메이카의 해안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당시 이 노예선에는 최대 300명의 아프리카인 포로들이 실려 있었다. 이들은 반목중인 타부족들이 영국 선원들로부터 주로 철막대나 구리막대를 받고 팔아넘긴 아프리카인들이었는데 항해 도중 죽는 사람들이 속출해 사망률은 평균 20%에 달했다. 수평선 너머로 육지가 보이기 시작하자 빨리 장사를 하고 싶었던 토머스 챔벌린 선장은 포로들을 준비시키라고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선원들은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갑판에 몰아놓고 먹이고, 씻기고, 면도시키고, 기름을 바르고, 상처도 그제서야 치료하는 등 채비를 했다.포로들은 자메이카의 포트로열에서 발가벗겨진 상태로 사슬에 묶인 채 경매대에 올라갔다. 노예를 사러 온 사람들은 이들의 배를 찔러보거나 치아 검사를 위해 손가락을 입에 쑤셔넣기도 했는데 심지어 건강 상태를 알아본다며 땀을 찍어서 맛보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헨리에타마리호의 항해를 후원한 투자자들이 노예를 팔아 남긴 이익을 추정해보면 3000파운드(현재 우리 돈으로 약 5억 원)를 훨씬 웃돈다. 포로들 대부분은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가 죽도록 일만 하다가 5~10년을 살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챔벌린의 관심 밖이었다. 6월 말 선장과 선원들은 귀향길에 올랐고, 배에는 신세계에서 가져온 설탕·면화·목재·인디고(암청색 천연염료)와 팔고 남은 물건들이 실렸다. 그러나 폭풍우를 만난 헨리에타마리호는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 55km 떨어진 뉴그라운드 리프에서 침몰해 바닷속으로 사라져갔다.
난파선 유물들이 처음 인양된 것은 거의 300년 뒤, 멜 피셔가 고용한 보물사냥꾼들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금을 원했던 이들은 곧 이 배를 버리고 다른 보물선을 찾아 나섰다. 그 뒤 과학자들이 유물보존에 나서면서 1980~90년대에 인양작업이 재개됐다. 지금은 과학자들이 직접 바다에 들어가 선체를 조사하고 유물들을 발굴한다. 이러한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헨리에타마리호가 발굴된 노예선들 중 가장 오래된 데다가 아메리카대륙 근해에서 발견된 노예선들은 몇 척 안 되기 때문이다. 해양고고학자 데이비드 무어는 "이 배는 역사의 주요 부분"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