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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만의 두 얼굴

도쿄만 일대는 현란한 도시문명이 꽃을 피우고 있지만 산업화의 폐해, 부정부패, 그리고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향후 일본의 척도가 될 도쿄만 지역의 문제와 변화하는 세태를 진단해본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도쿄만의 잿빛 바다 위로 올라가는 회전식 관람차에 오른 나는 고질라에게 함께 타자고 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꼬리만 한번 휘두르면 저기 저 다리는 가루가 될 걸!" 그 유명한 공포영화 '고질라'의 주인공이 손으로 허공을 할퀴면서 으르렁거린다. 배우의 이름은 사쓰마 겐파치로. 그는 고질라 영화에서 도마뱀처럼 생긴 고무 의상을 입고 도쿄만을 복제한 세트를 짓밟는 고질라역을 맡았었다. 일본의 최대 도시 도쿄의 심장부에 있는 도쿄만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겐파치로라면 뭔가 특별한 얘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관람차를 같이 타자고 했던 건데, 관람차가 점점 높이 올라가면서 건물들로 빼곡이 들어찬 도쿄만이 한눈에 들어오자 그는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제트기가 착륙할 때 나는 소리같이 "쉬-잉" 소리를 내며 기분 나쁘게 눈동자를 번득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제일 꼭대기에 닿자 "바로 여기가 고질라의 정확한 눈높이죠"라고 말했다. 그 지점은 고질라의 키보다 약간 높은 115m였다. "아니, 내가 지난번 영화에서 저 건물들을 모조리 부숴버렸는데 저것들은 또 뭐지?" 그가 멀리 굽어보며 투덜거렸다. 도쿄만 일대에 사는 많은 주민들이 그렇듯 겐파치로가 이곳 풍경을 낯설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수년 동안 건설붐이 일면서 도쿄만의 경관이 많이 바뀌어 이제는 화려한 호텔이나 세계 최고 수준의 수족관, 컨벤션 센터 같은 세련되고 멋진 최신 건물들이 공장, 굴뚝, 석유저장탱크와 같은 오래되고 낯익은 시설들 속에 뒤섞여 있는 것이다. 사실, 1954년 극장영화에서 겐파치로의 전임자인 초대(初代) 고질라가 이 바다에서 마구 날뛰는 장면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후 도쿄만 지역은 일본을 일약 세계 무대의 스타덤에 올려놓은 주역이 되었다. 오늘날 도쿄만 주변에 위치한 5대 주요 도시(도쿄, 요코하마, 가와사키, 후나바시, 지바)들과 그 근방에 있는 4대 현(縣)은 미국 다음 가는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의 위상을 확고하게 지켜주고 있다. 1억2700만 일본 인구의 거의 4분의 1이 살고 있는 도쿄와 그 위성도시들은 일본 전체 부의 3분의 1이 집중돼 있으며, 정치·예술·상업·통신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본이 2차대전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눈부신 고속성장을 하는 동안, 도쿄만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새로운 생활방식을 제공해주었다. 겐파치로도 30년 전 영화배우의 꿈을 안고 이곳으로 왔지만 초창기에는 제련소의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쇳물 양동이를 나르는 일을 했다.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고질라역 오디션을 받아보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감독은 고무로 만든 고질라 의상을 입고도 더위에 기절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죠." 겐파치로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관람차에 몸을 싣고 은백색 하늘을 빙빙 도는 동안 서서히 과거의 꿈에서 깨어났다. 12년째 계속되는 전후 최악의 불경기 여파로 도쿄만 역시 악성 부채와 기업 파산, 그리고 높은 실업률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겐파치로도 일자리를 잃었다. 요즘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다 특수효과 스튜디오에서 컴퓨터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혐오스러워요." 겐파치로가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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