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 가족의 마지막 희망
제인 구돌이 탄자니아의 숲에 첫 발을 내딛은 지도43년, 곰베에서는 새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피피는 또 엄마가 되었고 프로도는 우두머리 자리에 올랐으며 그렘린은 쌍둥이들에게 흰개미 잡는 법을 가르치느라 여념이 없다는데…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지금은 국립공원이 된 탄자니아의 모래 사장에 첫 발을 내딛은 것도 어느덧 40여 년 전의 일이다. 탕가니카 호(湖) 기슭에 우거진 밀림 계곡과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줄기를 배경으로 내 생애 가장 가슴 뛰는 경험 가운데 하나가 막을 올렸다. 당시 내가 가진 거라곤 비서 자격증과 동물들에 대한 열정뿐이었는데, 고생물학자인 루이스 리키의 충고가 큰 힘이 됐다. 그는 나에게 "먼저 야생 침팬지들이 당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도록 하라, 그런 다음 그들의 행동을 관찰해 그 결과를 기술하라."고 말해주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이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여러 차례 기사로 소개되었다. 당시에는 침팬지에 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소한 사실도 대단한 발견처럼 여겨졌다. 평화적인 채식주의자인 줄로만 알았던 침팬지들은 엄청나게 복잡한 성격과 감정의 소유자인 동시에 강하고 지능적인 사냥꾼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세계에도 의사소통, 이타성(利他性), 정치적 연대, 영아 살해, 전쟁 등이 존재했다. 게다가 녀석들은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믿어왔던 도구 제작 능력까지 보여주었다. 당시 과학계의 관행을 몰랐던 나는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녀석들의 다양한 성격을 사람처럼 묘사했는데, 이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에게서 호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몇몇 침팬지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꼈다는 것은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연구 대상과 공감할 수 있어야 그들의 기분이나 태도의 미세한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복잡한 사회적 작용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이러한 믿음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 자신은 침팬지 보호에 전념하고자 1986년 이후 현장에 자주 나가지 않았지만 곰베스트림연구센터는 유능한 신세대 과학자들과 헌신적인 탄자니아 현장 요원들이 잘 지켜나가고 있다. 이들은 현재 새로운 세대의 침팬지들을 관찰하고 있어, 곰베의 침팬지들은 역사상 가장 오래 연구해오는 동물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우리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침팬지의 복잡한 행동 양상에서 초기 인류의 삶에 관한 것까지 수많은 논문과 저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 나는 연간 300일 이상 세계 각지에서 강연을 하는데, 일정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곧장 곰베로 향한다. 곰베 공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은 '더피크'라는 곳이다. 이 근방은 내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는 이름을 지어준 침팬지가 처음으로 나를 피하지 않고 곁에 있도록 허락해준 장소이기도 하다. 녀석은 내가 본 침팬지들 중 처음으로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흰개미를 개미집에서 끄집어냈다. 이를 전해 들은 리키 박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제 우리는 인간과 도구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든지 침팬지를 인류에 포함시켜야 한다." 개성 강한 곰베의 침팬지들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를 놀라고 또 기쁘게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1960년대 초 새끼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침팬지들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피피가 마흔 넷의 나이로 아홉 번째 출산을 했다. 대개 완전히 자라서 생식 능력을 갖출 때까지 살아남는 새끼가 한 어미당 두세 마리에 불과한 데 비해 피피는 네 마리의 장성한 자식과 두 마리의 청년기 자식, 한 마리의 소년기 자식에 갓난 새끼까지 두고 있다. 이렇듯 이례적인 번식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서열 덕에 카콤베 계곡 중앙에서 특히 먹이가 풍부한 구역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피의 새끼 중 한 마리를 제외한 모두가 살아남았고, 현재 아들 프로도가 무리를 지배하고 있다. 내가 오랫동안 애정을 기울였던 그렘린은 곰베에서 관찰기록이 시작된 이래 세 번째로 태어난 쌍둥이를 기르고 있다. 쌍둥이는 한정된 모유를 두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렘린의 정성어린 양육 덕분에 현재 네 살인 골든과 글리타는 둘 다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놀라운 발견들이 이루어졌다. 배설물에서 DNA를 분석해 처음으로 많은 침팬지들의 친자관계를 확인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침팬지 암컷들이 형제나 모자간의 짝짓기를 기피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금기가 부녀 사이에도 적용되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곰베에서 우울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곰베 국립공원에 인간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침팬지들의 생존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아프리카 쪽 침팬지 거주지역은 여전히 광대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이번 호 '제인 구돌' 기사 94쪽 참조) 곰베 국립공원의 면적은 길이 13km, 폭 1.5~3km에 불과하다. 자연 서식지를 모두 인간에게 빼앗겨버린 채 동쪽 끝의 일부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곰베 주변에는 훼손되지 않은 드넓은 숲이 동쪽과 남쪽으로 펼쳐져 있었고, 북쪽으로 이어진 숲은 곰베의 침팬지들을 인근 브룬디에 사는 침팬지들과 연결시켜주고 있었다. 공원 외부에 있던 그 서식지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연구원들이 최근에 제작한 지도에 의하면 35km2 면적의 숲 주위에 남은 것은 농장과 벌거벗은 언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