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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육식성 유충

단단한 몸통, 먹이를 유인하는 냄새, 교묘한 위장술 등이 바로 육식성 유충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물리적, 행동적 도구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하와이 제도에 서식하는 육식성 유충들은 작은 나무껍질로 위장해 먹이를 사냥하기도 한다. 덴마크에는 땅속에서 개미를 포식하며 사는 녀석들도 있다. 한 호주산 유충은 그린트리개미(바느질개미류)의 보금자리를 습격해 닥치는 대로 새끼를 먹어치운다. 이런 식탐은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약 16만 종의 나비와 나방들 중 육식성인 종은 1% 미만이며, 그것도 대개 육질이 연한 곤충이나 거미를 먹는 정도다. 일부 육식성 나비와 나방은 태어나서 처음에는 특정 식물만 먹다가 식성이 바뀌어 특정 곤충만 먹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생활양식 때문에 육식성 유충은 매우 희귀하고 또 쉽게 멸종한다. 침묵 속의 매복 만반의 공격 태세를 갖춘 자벌레(나방 일종인 에우피테시아 오리클로리스(Eupithecia orichloris)의 유충) 한 마리가 하와이 제도의 마우이 섬에서 스크류파인나무의 잎사귀처럼 위장하고 있다(왼쪽). 머리 부근에 달린 바늘같이 뾰족한 6개의 다리(오른쪽)가 꿈틀거리는 먹이를 잡아 솜씨 좋게 처리한다. 유충의 등에는 민감한 털이 나 있고 신경이 분포돼 있어 먹이감이 스치기만 해도 즉시 감지해낸다. 아무것도 모르는 흰개미 한 마리가 살짝 스쳐 지나간다. 휙! 12분의 1초 만에 유충은 뒤로 돌아 흰개미를 낚아챈 다음 차근차근 먹는다(가운데). 배가 부른 유충이 느긋하게 마지막 살점까지 먹어치우는 동안 흰개미의 동강 난 머리에 붙어 있는 더듬이가 바르르 떤다(아래). 하와이에서 발견된 20종의 에우피테시아 모두가 감쪽같은 위장술로 환경에 적응해 살고 있는데, 잎사귀 조각이나 지의류, 이끼의 일부분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전 세계에 수백 종의 에우피테시아가 있지만 대부분 꽃이나 과일만 먹고 산다. 유독 하와이에서만 육식성 에우피테시아를 볼 수 있다. 정말 재미있는 진화 과정의 변이가 아닐 수 없다. 작은 나뭇가지로 위장한 에우피테시아 스타우로프라그마(Eupithecia staurophra-gma)가 해질녘 마우이 섬에서 풀잠자리를 움켜쥐고 있다. 녀석은 기계체조 선수처럼 몸을 뒤로 비틀어 먹이를 잡아채는 동시에 가죽끈 같은 앞다리로 버둥거리는 먹이를 꽉 쥐고 옴짝달싹 못 하게 한다. 이 육식성 유충은 식성이 까다로운 편이라 먹이가 너무 크거나, 딱딱하거나, 또는 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적 불그스름한 잔점박이푸른부전나비 유충(아래)이 아무런 제지도 없이 뿔개미 애벌레를 실컷 잡아먹는 동안 옆에 있는 성충 뿔개미는 자신과 상관 없다는 듯 이를 방관하며 둥지를 보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좀처럼 관찰할 수 없었던 이런 뻔뻔스러운 행위가 가능한 것은 냄새 때문이다. 덴마크의 래스외 섬에서 발견된 마시젠션(용담과, 오른쪽 맨 위) 위에 잔점박이푸른부전나비의 작고 흰 알들이 붙어 있다. 유충은 부화한 후 약 2주 동안 꽃을 먹고 살다가 땅으로 떨어진다. 유충의 몸에는 탄화수소가 밀랍처럼 덮여 있는데 이것이 뿔개미 애벌레와 거의 똑같은 냄새를 풍긴다. 이 냄새 때문에 지나가던 개미들이 유충을 자기네 애벌레로 착각해 둥지로 데리고 간다. 그러고는 자신이 토해낸 액체를 유충에게 먹인다(가운데). 그리고 이 유충은 개미 애벌레까지 먹어치운다. 유충이 나비가 되면 즉시 개미 둥지에서 도망쳐 나와야 한다. 그런 뒤 마침내 날개를 활짝 펴고(아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탱크처럼 단단한 리피라 브라솔리스(Liphyra brassolis) 유충은 그린트리개미 둥지를 습격해 애벌레를 잡아먹는다. 녀석이 앞다리로 애벌레를 쥐고 뜯어먹는 모습이 유리판 위로 보인다. 가죽같이 질기면서도 유연한 이 유충의 피부는 말랑말랑한 아래부분을 개미가 물지 못하도록 보호한다. 교묘한 탈출 리피라 브라솔리스가 성난 개미들을 피해 도망치는 기술은 거의 신기에 가깝다. 정부 지정 보호종인 이 호주산 나비는 유충 시기에 그린트리개미의 애벌레만 먹고 지낸다. 그러나 일단 갑옷 같은 고치에서 나온 성충 나비는 개미들의 맹렬한 공격에 희생되기 쉽다. 개미들이 떼를 지어 달려들어 침입자의 몸을 갈가리 찢어버리기 때문이다. 개미 둥지 안에서 출구까지 기어 나오는 동안 나비는 날개, 더듬이, 복부에서 엄청난 양의 하얀 비늘(왼쪽)을 떨어뜨린다. 이 비늘은 개미에게 달라붙어(오른쪽 위)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린다. 개미 둥지 안에서 먹고 자란 나비 종류에게만 이런 낙엽성 비늘이 있는데, 정말 놀라운 적응력이 아닐 수 없다. 일단 탈출에 성공한 나비는 날개를 펴고 말리는(오른쪽) 동시에 배우자를 찾는다. 이들은 차세대 육식성 유충의 목표가 될 그린트리개미 둥지 근처에 알을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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