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공예의 대가들
손재주 없는 야만인들이라구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고대 시베리아의 초원지대를 말을 타고 누볐던 이들 스키타이족은 놀라운 솜씨로 황금 문화를 건설했습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시베리아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인 투바 공화국에서 한 쿠르간(봉분) 밑을 파고 있던 레이어스는 통나무로 벽을 쌓아올린 지하 묘실 안을 막 훑어본 참이었다. 그는 유골 2구와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금을 보았다. 엄청난 양의 금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황금 고리토스(활과 화살을 넣는 상자)였어요. 다른 쪽에는 더 많은 황금이 있었죠." 큼직한 황금 가슴 장식(나중에 무게를 달아보니 1.5kg이나 나갔다.) 하나와 그보다 작은 가슴 장식 하나, 그리고 각각 30cm 정도 되는 길이의 황금 머리핀 두 개와 황금을 박아 넣은 단도들이 있었고 바닥에는 빛이 나는 금속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수많은 여름을 러시아의 발굴 현장에서 보낸 베테랑 고고학자 레이어스는 우리가 오늘날 '스키타이'라 일컫는 베일에 싸인 민족의 왕릉 안을 2700년 만에 처음으로 들여다본 인물이 되었다. 사나운 전사들이자 유목민이었던 그들은 일찍이 기원전 9세기에 중앙아시아에 살았고 그들의 문화는 서쪽으로 퍼져나가 남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독일에까지 미쳤다. 그러다가 그리스도 기원(AD) 초기에 점차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레이어스가 짤막하게 외치는 소리에 발굴팀 대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콘스탄틴 추구노프도 구덩이로 내려갔는데 묘실 천장의 통나무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고는 놀라워했다. 바로 뒤를 이어 베를린의 독일 고고학연구원에 근무하는 헤르만 파르칭거와 아나톨리 나글러도 따라 내려왔다. "세상에!" 나글러가 아래를 들여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자네 말이 맞아. 경찰을 불러야겠어!" 눈 덮인 봉우리들과 초원지대에 드문드문 사람이 살고 있는 투바 공화국은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3400km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가축 절도가 이곳의 가장 흔한 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자들은 휑하니 뚫린 이 드넓은 지역에 아주 값비싼 보물이 있는 무덤이 파헤쳐진 채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그 후 3주 동안 소총을 든 보초들이 무덤을 지키는 가운데 20kg의 황금이 이곳에서 나왔다. 과거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시베리아의 그 어떤 고분에서도 이렇게 많은 양의 황금은 나오지 않았다. 스키타이족의 대규모 공동묘지이며 이 쿠르간이 자리해 있는 골짜기는 수십 개의 다른 고분들로 대지가 굽이친다. 여기 사람들은 이곳 무덤 모두에 왕이 묻혀 있기라도 하듯 이곳을 '짜르의 골짜기'라 부른다. 몇 군데엔 확실히 왕이 묻혀 있었다. 종종 석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거의 모든 쿠르간은 단순한 흙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중 네 곳은 전체적으로 돌로 되어 있어 바로 눈에 띄었다. 추구노프와 파르칭거, 나글러가 이 중 한 곳을 목표로 정해 아르잔 2호(아르잔은 인근 마을의 이름이다.)라 명명했다. 그 무덤을 짓기 위해 수천, 적어도 수백 명의 스키타이인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높이 2m, 지름 80m의 이 무덤은 수천 톤의 돌로 만든 왕관 같았다. "정말이지 그렇게 많은 유물을 발견하리라곤 예상치 못했어요." 추구노프가 나중에 한 말이다. 스키타이족의 무덤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들은 아마도 도굴꾼들이 먼저 그곳을 다녀갔을 거란 사실을 이전의 안타까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실제로 아르잔 2호의 중앙 한 군데가 함몰된 모습은 수세기 전에 약탈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굴꾼들은 항상 중심부로 파들어가죠. 만약 쿠르간 밑에 왕이 묻혀 있다면 바로 그곳에 있을 테니까요." 파르칭거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