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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에서 듣는 보헤미안 랩소리

첨단 유행의 파리 근교 마레에서는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경찰이 도미니크 알라부안을 체포해 손잡이를 돌려 연주하는 배럴 오르간(barrel organ)을 압수하려 한다면 그녀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지 못하게 내 몸을 오르간에 묶어버릴 거예요." 도미니크가 검은 눈을 번득이며 말한다. 오늘 오후에는 다행히 경찰이 눈에 안띈다. 그래서 가늘고 깡마른 체격에 에디트 피아프처럼 눈이 움푹 들어간 도미니크는 '릴리 마를렌'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우렁찬 선율이 보주 광장(Place des Vosges)의 아케이드에 울려 퍼진다. 마레(Marais)의 심장부인 이 광장은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17세기에 건설됐다. 센 강 오른쪽 기슭에 위치한 마레는 삼각형이며 크기는 약 125ha 정도인데 어쨌든 파리 시민들에게는 일종의 야외 카바레인 셈이다. 이 동네의 좁다랗고 활기 넘치는 거리는 도미니크가 음악을 연주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대다. 그녀가 말한다.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요. 사람들과 일체감이 생기거든요. 거의 영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지요." 보주 광장 앞에서 연주를 끝낸 도미니크는 배럴 오르간을 끌고 생탕투안 가를 내려간 후 생제르베-생프로테 교회 앞 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낑낑거리며 올라간다. 도미니크는 멜로디가 기록된 천공카드를 오르간에 끼우더니 손잡이로 축을 돌려 비틀스의 '내가 예순 넷이 되었을 때(When I'm 64)'를 연주하며 프랑스어 악센트로 이 노래를 맑은 소프라노 음성으로 노래한다. 내가 늙어 머리가 빠질 때, 아직 먼 훗날 그때. 백랍 장식으로 머리를 묶은 한 할머니가 3층에서 육중한 나무 덧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당신은 그때도 내게 발렌타인 카드,생일 카드, 포도주를 보내주겠소? 교회 옆의 한 아파트 문이 활짝 열리더니 손에 포도주병을 든 사내 두 명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포도주 잔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른 오후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오르간 주위로 모여든다. 모두들 감사하는 마음으로 포도주 잔을 받아 들고는 맛을 음미한다. 마치 음악이 사람들의 영혼에서 닫힌 부분들을 열어 세상과 타인에게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것 같았다. 도미니크가 말한다. "남자 친구를 만난 것도 바로 이렇게 노래를 할 때였어요. 그는 매일 내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을 보러 왔죠. 그에겐 뭐든지 말할 수 있었죠." 알고 보니 그 역시 음악가였다. "인생은 놀라움의 연속이에요." 경이로움에 취해 도미니크가 말을 계속한다. "아니, 놀라움이 아니에요."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거리의 마술이었죠." 마레의 매력은 조약돌에서 조금씩 번져나와 연철(鍊鐵) 가로등 주위를 감아 돌며 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운다. 거리를 걷다 보면 노점상이 분홍색 장미다발을 갑자기 요술처럼 만들어낸다. 엄숙하게 보이는 17세기 건물 정면 너머에는 라일락 향기로 흠뻑 젖은 정원이 있다. 그리고 보주 광장이 있다. 사방에 각각 9채씩 거의 똑같은 대저택을 거느리고 있는데, 남쪽과 북쪽에는 더 웅장하고 정교한 왕과 왕비의 저택들이 있다. 벽돌은 부드러운 아침 햇살을 받으면 옅은 분홍빛을 발한다. 완벽한 기하학적 모양으로 가지치기한 피나무들이 광장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정원의 경계를 만들어주고 있다. 연인들은 서로 팔을 휘감은 채 풀밭 위에 누워 있다. '늪'이라는 뜻의 마레는 마치 어느 우화 속의 부자가 거지가 되었다가 다시 부자가 되는 것처럼 부침을 겪었다. 헨리 4세는 1600년대에 보주 광장을 건설하여 최고급 주거지로 만들었다. 약 200년이 지나자 이곳은 점점 슬럼가로 변해가기 시작해 유대인 거주지가 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이곳은 다시 오명을 벗고 재기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가장 비싼 주거지역은 아니지만 이 첨단 유행의 수도에서 가장 멋진 주거지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변모를 마술이라고 불러도 좋다. 아니면 프랑스인들의 제스처를 흉내내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인생의 달콤함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괜찮겠다. 이 지역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지은 17세기 대저택들을 거느린 마레에는 화려함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마레는 그다지 으리으리한 곳은 아니다. 파리에는 훨씬 더 화려한 동네들이 많다. 제16구 같은 곳을 예로 들 수 있다. 제16구는 부자 동네로 아르누보나 아르데코 스타일의 아파트들이 떼지어 들어찬 곳이다. 여성들은 누빈 샤넬 가방을 들고 다니며, 아이들에게는 전통적으로 중산층의 색상인 네이비블루나 암녹색 옷을 입힌다. 파리의 제3, 4구에 걸쳐 있는 마레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사실 브르타뉴 가를 건너 삼각형인 마레 북쪽 정점에 해당하는 동네로 들어서면 거리는 조용해지고 집들이나 도로는 조금 낡았다는 인상을 준다. 최신 유행을 뽐내는 곳이나 그렇지 않은 곳이나 마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16세기나 17세기식 건물들이 마치 술에 약간 취해 몸이 기울어진 사람처럼 도로변에 기대어 있다. 좁다란 골목길이 꼬불꼬불 이어지고, 거리들에는 퐁토슈(양배추 다리) 같은 이상한 이름이 붙어 있다. 이 동네에서 살며 영화감독으로 일하는 자콥 베르제는 마레가 '드 갱구아(de guin-gois)' 하다고 표현한다. 약간 삐딱하다는 뜻이다. 이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도 약간 정상적이지 않다. 멋 내기를 거의 직업으로 삼고 있는 파비앙 두이야르를 한번 만나보자.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난 후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그는 자신이 지금 시대에 속하지 않는다고 믿기로 했다. 그는 매일 아침 17세기 작곡가 륄리의 바로크 선율에 잠을 깨고, 연미복에 모자를 쓴 정장차림을 한 다음 우아한 찻집인 마리아주프레르로 향한다. 그곳에 앉아 송아지 피지(皮紙)를 제본하여 문직(紋織)으로 장정한 고급 가죽종이 책에 시를 쓴다. "당신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죠?" 통역을 담당한 엘리자베스가 인터뷰 일정을 잡기 위해 전화를 걸어 묻는다. 마치 마리아주프레르에서 연미복에 모자를 쓰고 점심 식사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타조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든 사람이 바로 나예요." 파비앙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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