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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신비한 수중세계

잠수부들과 과학자들이 유카탄 반도에 파인 구멍들을 조사한다. 이곳은 마야인들에게 신성한 장소이며 우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인신공희가 있었던 곳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지하에서 임무를 완수한 아르투로 곤살레스가 줄로 매단 철제 의자에 앉아 좁은 우물 통로로 올라왔다. 검은 잠수복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머리 위의 도르래가 끽끽 소리를 내며 조금씩 그를 당겨 올린다. 멕시코의 수중고고학자인 곤살레스는 방금 유카탄 반도의 가시덤불 정글에서 오래된 돌우물 속 20m 아래에 숨어 있던 세노테(수직동굴 속 물웅덩이)를 탐험하고 오는 길이다. 그의 손에는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지상으로 나오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곤살레스는 먼저 카르멘 로하스부터 찾았다. 그러고는 그의 연구 프로젝트 공동책임자인 이 젊은 여성 고고학자에게 "떨어뜨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통을 건네주었다. 로하스는 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벽은 없고 지붕만 얹어 놓은 보존실로 통을 가져갔다. 이제는 방치된 대농장 뒤쪽에 자리잡은 이 보존실에서 자연인류학자인 알레한드로 테라사스가 초조하게 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테라사스가 천천히 두개골을 들어 올렸다. 유골은 수백 년 전의 것으로 잘 다듬어진 가지의 그루터기를 없앤 참나무처럼 적당히 진하며 노란빛이 도는 밤색을 띠고 있었다. 테라사스는 유골을 통해 이 젊은 마야 남성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었다. 살과 피부, 그리고 빛나는 검은 눈동자까지도. 유골의 주인공은 25세 정도로 추정되었다. 이마는 눈구멍에서 위로 급경사를 이루며 머리 쪽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유아기에 말랑말랑한 두개골 주위를 나무 판자로 눌러서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대 마야인들이 아름답다고 여긴 평평한 이마는 당시에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이 청년은 매우 잔인하게 살해된 것 같다. 마치 누군가 칼로 난도질을 한 것처럼 두개골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던 것이다. 테라사스는 칼자국을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살을 도려낸 자국입니다."라고 말했다. 청년의 머리 끝에서부터 얼굴 아래쪽으로 근육이 제거된 것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제물로 희생되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2년 동안 멕시코의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INAH) 산하 수중고고학 분과에서 파견한 팀이 세노테를 탐험했는데, 그 유골은 약 20여 개의 물웅덩이 속에서 발견된 유골 중 살을 도려낸 흔적이 보이는 첫 번째 것이었다. 테라사스는 살점을 제거한다는 것에도 전혀 놀란 것 같지 않았다. 그러고는 마치 호스피스가 환자를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유골을 젖은 솜이 깔린 통 속에 넣었다. "마야인들에게 인체는 내세로 가는 여행의 운송수단이었어요."테라사스가 말했다. "마야의 제사장이 제물을 바칠 때 그는 신과 통하는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에서 그 일을 하는 겁니다. 신과 교류함으로써 세속의 안녕을 기약하는 것이죠. 난 도덕적인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이해하고 싶어요." INAH 팀을 처음 이곳으로 안내한 사람은 웨스 스카일스였다. 그는 3주의 탐험기간 동안 INAH 과학자들과 함께 본지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책임자였다. 이번 탐험은 과학적·문화적 관심을 끌고 있는 모든 세노테에 대한 유물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현재 6년에 걸쳐 진행 중인 조사로서 최근에 일어난 사태의 절박함 때문에 박차가 가해졌다. 유카탄 주와 그 옆의 킨타나로오 주가 위치해 있는 유카탄 반도는 구멍이 많은 석회암 지질 때문에 세노테와 물에 잠긴 동굴들이 많다. 최근 이곳을 조사하고 탐험하는 일이 잦아지자 아마추어 잠수부들이 유물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마야의 리비에라로 알려진 해안에서는 연간 약 1만여 명의 아마추어 잠수부들이 세노테로 뛰어든다. INAH의 고고학자들은 유물들이 더 이상 훼손되고 약탈당하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세노테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를 원했다. "아마추어 잠수부들이 뭔가를 가져갈 때마다 우리는 퍼즐 조각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셈이에요."라고 INAH의 수중고고학 책임자인 필라르 루나가 말했다. 그녀는 거의 30년 전에 멕시코에서 수중고고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고고학자들이 세노테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동굴 잠수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한 것은 겨우 최근 5년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이제서야 물속에 들어가게 된 거죠."라고 루나가 말했다. INAH 팀은 버려진 농장에 캠프를 차리고 세노테를 지하세계로 가는 성스러운 입구로 간주한 마야인들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했다. 또 유카탄 반도의 선사시대와 마야 이전 시대에 대한 해답을 줄 화석 증거와 지질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했다. 이들 팀은 연구 초기에 이미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으로 1만 200년 된 모닥불의 증거를 발견한 바 있다. 그 지점은 유카탄 반도에 인간이 거주한 것으로 기록된 장소 중 가장 오래된 곳이었다. 마야문명은 기원전 600년경에 태동하여 기원후 900년까지 현재의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에 이르는 지역을 장악했다. 그런데 정치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몰락했다. 마야문명은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건축물과 예술을 낳았고, 아랍과 힌두세계에 필적하는 수학과 천문학도 발전시켰다. 척박하고, 덥고, 가시 덤불이 많은 유카탄 반도 북부에는 여전히 많은 마야인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열대지방의 키 작은 관목숲이 듬성듬성 덮여 있는 평평한 석회암 지대다. 강도 없고 땅 위를 흐르는 빗물도 없다. 비는 순식간에 세노테로 스며들어 지하의 미로를 따라 눈에 안 보이게 바다로 흘러간다. 비와 햇빛을 확보하면서 자연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마야의 제사장들은 세노테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생명을 보살피는 비의 신인 차크에게 호소했다. 가뭄이나 전쟁 등을 비롯한 위험이 닥칠 때 마야인들은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 노랑가오리의 등뼈로 그들의 혀와 귓볼을 뚫었다. 그리고 흐르는 피를 양피지에 모아 태워서 제단에 바쳤다. 가끔 지위가 높은 제사장이 돌 칼을 이용해 제물로 바쳐진 사람의 가슴을 열어 펄떡거리는 심장을 꺼냈다. "사고로 인한 대부분의 갈비뼈 골절은 바깥쪽에서 안으로 생깁니다." 유골을 살펴보면서 테라사스가 말했다. "하지만 심장을 끄집어내면 골절이 안에서 바깥쪽으로 일어나지요." 이런 고의적인 갈비뼈 골절은 고고학팀에게는 희 소식일 수도 있었다. 유골의 주인공이 제물로 희생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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