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가뭄과 지진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재건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불안한 상태다. 그럼에도 아프간인들은 조국의 평화를 열망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려 쌓이는 장터에서 마을 주민들이 아우성을 치며 4륜구동 픽업 트럭들에 실린 식품과 연장, 기타 생필품을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플라스틱 신발이 진흙탕에 미끄러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럭들은 아프가니스탄 도시 잘랄라바드와 외딴 북동부의 누리스탄 주를 잇는 좁은 비포장도로를 정기적으로 운행한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힌두 쿠시 산맥의 봉우리들과 나무와 돌로 지은 집들의 평평한 지붕 위로 가파르게 솟아 있는 삼나무 숲에 산비탈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때는 11월 초, 이곳은 물살이 거센 누리스탄 강 상류에 걸쳐 있는 작은 교역도시 파프록이었다. 일주일 동안 아프가니스탄은 이곳을 비롯해 여러 지역이 비에 흠뻑 젖었고 더 높은 지역에는 눈이 내렸다. 마침내 4년간의 가뭄이 막을 내리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바로 이겁니다. 하지만 더 많이 필요할 거예요. 두 계절 정도 더 내려야 해갈이 될 거예요." 영국 자선기관인 아프가나이드의 지역개발 프로젝트 매니저 모함메드 알리는 이렇게 단언했다. 가뭄이 시작된 이후 많은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이 두 차례, 심지어 세 차례까지 수확 기회를 놓쳤다. 경작 가능한 땅의 절반이 넘는 약 400만ha의 천수답에 밀을 심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농민들은 절박한 최후 수단으로 가축을 팔아야 했다. 그러는 사이 카불의 저수지들은 수량이 발목 약간 위까지 잠길 정도로 줄어들었으며 축구장만한 크기로 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지진이 일어나 북부 지역이 파괴되고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조국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함메드 알리 같은 아프간인들에게는 자연재해의 영향이나 전쟁의 영향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2년 전 10월,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1996년부터 이 나라를 통치해온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탈레반을 전복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사반세기의 혼란 속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이 나라의 인민민주당 공산정권에 반기를 든 민중봉기가 일어났던 1978년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인민민주당은 수개월 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고 있었다. 내전이 확대되자 궁지에 몰린 공산정권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소련은 1979년 12월 27일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500만여 명이 파키스탄과 이란 등 다른 나라로 피난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탈출 사건이었다. 1989년 소련군이 철수할 때까지 150만 명의 아프간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벌어진 권력 투쟁 과정에서 추가로 카불 시민이 5만 명은 죽었을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1980년대에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극단주의자 굴부딘 헤크마티야르의 군대에 의한 무차별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미국과 동맹국들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할 때도 민간인 3000~4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런 격동의 역사를 감안하면 많은 아프간인들이 위태롭지만 평화와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이라고 믿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때 무자헤딘 전사였던 모함메드 오랑의 말처럼. "평화를 확고히 하는 것은 우리 보통 아프간인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그는 현재 바다흐샨 주 북동부의 개발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당분간 아프간인들은 자기 나라의 치안을 유지하고 국제 사회의 재건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천 명의 외국 군인들과 구호요원들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유엔과 세계은행이 향후 10년간 110~19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는 대역사인 재건 사업의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의 농업 부문 회복, 귀국한 난민들의 일자리 제공, 도로 복구, 보건과 교육 향상을 돕는 것이다. 이미 300만 명이 넘는 아동들이 학교로 돌아갔다. 그중 거의 3분의 1이 여자 아이들이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인도 아대륙까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놓는 것 같은 토목사업에 대한 투자 역시 복구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자금 조달 지연과 아프가니스탄 내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사업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재건 사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아프가니스탄이 이름으로만 하나의 국가라는 점이다. 실상은 국제 사회가 지원하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중앙정부가 있는 카불의 아프가니스탄 말고도 다른 '아프가니스탄들'이 있는 것이다. 현재 카르자이 대통령의 세력권은 수도권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0~2500만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황폐해진 농촌 지역은 군벌들이 장악하고 있다. 카불과 다른 지역들 사이에 팬 골은 나라를 단결시키기 위해 고전하고 있는 카르자이 대통령이 직면한 가장 힘든 과제들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다. 어떻게 하면 권위를 확보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가운데 극히 다양한 민족들과 파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행정부를 만들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다양한 곳일까? 아프가니스탄은 6개 주요 민족 집단으로 구성돼 있다. 카르자이 정부와 보안군은 북부 지방의 타지크족이 다수를 차지하며 그중에는 소위 판지샤이리 마피아도 포함돼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많은 북부인들의 태도는 전통적으로 이 나라를 통치해온 인구가 더 많은 파슈툰족을 소외시키고 있다. 자신의 권력을 카불 너머로 확대하려는 카르자이 대통령의 노력은 지금까지 거의 진전이 없다. 이런 현상은 탈레반의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던 파슈툰족이 주로 사는 남부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카르자이 자신도 남부 도시 칸다하르 출신의 파슈툰족이지만 파슈툰족 다수가 그를 미국과 북부인들 편으로 여긴다. 경제도 걱정이다. 원조, 평화유지군, 아편 등의 불법거래로 조성되는 막대한 자금이 없다면 재건 사업은 곧 중단될 것이다. 지난 1년간 특히 카불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사무실과 호텔, 식당은 국제원조단체와 평화유지군 등 대부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아프간인들에게 합법적인 생계수단을 마련해주고 중앙정부에 세금 징수를 통한 정당한 수입을 제공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탄탄한 교역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경우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한 번 혼란의 도가니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카르자이 정부는 새로 제정된 헌법이 나라를 안정시키고 단합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헌법이 보통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해줄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진보파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보수파가 탈레반과 다름없는 구속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의 민주화에 반대하는 외세의 위협도 상존하고 있다. 일례로 파키스탄 근본주의자들은 농촌지역에 침투해 폭력 사태를 조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