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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땀으로 점철된 길 버마 로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질병과 몬순, 일본군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1730km 길이의 악명 높은 보급로를 완공했다. 이 버마 로드는 지금도 구불구불 이어지며 인도와 미얀마, 중국을 통과하고 있다. 노병의 쓰라린 가슴 또한 여전히 헤집고 다니면서.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노병들은 나에게 찾아가지 말라고 거듭 말한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도로가 아예 사라져버렸다고 여긴다. 60년이 지난 지금 산사태와 밀림의 몬순, 습지대의 토양이 두 개의 좁은 도로를 삼켜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도로는 인도의 가파른 파트카이 산맥을 넘어 버마의 밀림을 지나 중국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인도 북동쪽에 자리잡은 자이람푸르 마을 근처의 철교 위를 걸어가고 있다. 이 낡아 빠진 다리는 1943년 초 노병들이 혼탁한 카탕날라 위에 놓은 다리로, 1730km 길이의 버마 로드에 처음으로 세워진 정식 다리다. 다리 건너편에는 녹색 태피스트리 같은 열대우림이 30m 높이로 솟아 있다. 숲 사이로 걸어가면서 86세의 미첼 오파스를 생각해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육군 위생병으로 참전한 그는 각지의 재향군인회에서 인터뷰한 노병 가운데 한 명이었다. "도로가 아직도 그곳에 있으면, 당신이 사진 좀 보내주구려." 오파스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강조했다. 내 앞에 펼쳐진 포장도로에는 햇빛을 쬐며 졸고 있는 개들과 이가 빠진 아스팔트에서 이리저리 뛰노는 아이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 200m 전방에는 널빤지로 만들고 주위에 날카로운 철조망을 두른 관할 경찰서 건물이 왼쪽 갓길에 자리잡고 있다. 내가 경찰서 앞을 지나가려 하자 초록색 제복을 입은 보초가 배에 차고 있던 자동소총을 들어올린다. 그는 검은 총신으로 정문을 가리키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가 말한다. "잠깐 좀 들어오시죠." 서장실로 들어간 나는 서장과 악수를 나누고는 의자에 앉는다. 서장은 G. K. 그룽이라는 이름의 당당한 40대 남자다. 그의 올리브색 제복은 반짝거리는 금별로 장식돼 있다. 그는 나무 책상 뒤에 앉아 내 여권과 비자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는 통행금지구역 출입허가증에 특별히 관심을 보인다. 인도 아루나찰프라데시 주 안에 있는 도로의 마지막 구간인 29km를 여행할 수 있는 허가증이다. 허가증이 없으면 이 주에 들어갈 수 없다. 도로는 이곳 아루나찰의 밀림에서 팡사우 고개까지 올라간다. 1136m 높이에 있는 좁은 산길인 이 고개는 과거에 버마라고 부르던 미얀마와 접경하는 곳이라 인도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룽 서장이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미안하지만, 팡사우 고개로 이어지는 길과 관련해 새 지침이 내려왔어요. 어떤 방문객도 이 지점을 통과할 수 없게 됐어요. 안타깝지만 당신도 마찬가지구요." 그는 미소를 짓고는 오른손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린다. "요즘 반군세력이 극성을 피우고 있어요. 밀림은 일종의 완충지대나 마찬가지죠. 우린 당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갈 수 없습니다." 나도 미소를 지어 보인다. 버마 로드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노병에 대한 회상, 그리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인도 국경지대 부근 경비대의 경고와 함께.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버마 로드는 사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도로다.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두 도로는 연결하는 데 7년이 걸렸다. 어떤 이들은 이 도로를 레도 로드라고 부른다. 인도 북동쪽 아삼 주의 탄광촌인 레도에서 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캘커타 항구를 출발한 철도는 800km를 달린 다음 레도에서 멈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도에서 팡사우 고개로 넘어가는 길이 뚫리면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버마와 중국으로 무기와 군수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서둘러 만든 첫 구간, 즉 최초의 버마 로드는 1937∼1938년에 중국 인부들이 건설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항구들을 폐쇄하기 시작하자 보급로로 만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스틸웰 도로라고 부른다. 아시아에서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미군의 조지프 "지독한 조" 스틸웰 장군의 감독 아래 도로가 완공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병사들은 '죽음의 도로'라는 별칭을 붙였다. 공사 중에 저격병의 총탄과 말라리아, 혹은 폭약 폭발이나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로의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대개 버마 로드라고 부른다. 현재 남아 있는 1937∼38년 보급로와 1942∼45년 지선은 인도와 미얀마, 중국을 연결하며 약 35개의 부족이 살고 있는 산과 열대우림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어떤 부족은 1940년대와 다름없이 여전히 고립된 채 살고 있다. 이 도로를 따라가면 황금과 사파이어, 티크, 다이아몬드, 석유, 고무를 비롯해 다른 10여 종의 상품들을 팔거나 '빨간색(루비)'과 '녹색(옥)', '흰색(헤로인)', '검은색(아편)'을 거래하는 모습을 아직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버마 로드라는 이름은 역사에 전설적으로 남아 있지만 길 자체는 세월과 함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 내 목표는 앞으로 두 달에 걸쳐 버마 로드를 재개통하는 것이다. 전체 구간 중 약 절반은 외국인이 출입할 수 없지만, 나는 인도와 미얀마, 중국 정부의 호의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인이 거의 보지 못했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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