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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남쪽땅,파타고니아

한때 양목업자들만의 터전이었던 남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 바람이 모진 곳이다. 새로운 세대의 탐험가들과 모험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파타고니아에서 바람은 가는곳마다 나를 따라다녔다. 바람에 이는 먼지 때문에 코가 막히고, 바람 때문에 지프는 자갈길을 가면서도 빙판에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바람이 거세 새들이 앞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나무들은 수평으로 휘어져 자란다. 바람은 살아 있는 존재였다. 그것은 사납게 돌변해 유리창에 구멍을 내거나, 꼬마 토네이도처럼 평평하고 건조한 스텝 지대 위로 먼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바람에 날려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종이 한 장은 마치 자석이 움직이는 볼 베어링 같았다. 푸에르토데세아도에서는 바람이 호텔을 요란한 오케스트라로 만들었고 나는 그 연주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문에서는 스네어 드럼처럼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고, 골진 지붕 밑 틈새에서는 플루트 같은 소리가 났다. 욕실의 환기구는 백파이프처럼 지속적인 저음을 냈다. 바람은 자장가처럼 피아니시모로 아주 약해졌다가 열광적인 크레셴도로 점점 거세지기도 하면서 밤새 열광적인 푸가를 연주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던 남아메리카 남단의 이 광대한 지역은 오지의 대명사로 지구 맨 끝의 땅이란 뜻에서 '피니스 테라이(finis terrae)'라고 불렸다. 파타고니아는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속하는 지역으로 그 경계도 명확하지 않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콜로라도 강 남쪽의 모든 지역과 비오비오 강 동쪽 부분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파타고니아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으며,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이것을 맛볼 수 있는 모든 곳을 말하죠!" 티에라델푸에고 북부에 사는 한 목양업자는 지글지글 소리가 나는 양고기 조각을 허공에 흔들며 말했다. 멀리 떨어져 있고 접근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파타고니아는 항상 팀북투나 샹그릴라처럼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곳이었다. 파타고니아를 어떤 한 장소가 아니라 의류 회사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다. 모험가들에게는 지구 "끝" 종착지이자 더 없이 순수한 야생의 상태로 남아 있는 자연이다. 기업가들에게는 석유, 천연가스, 황금, 어류 등 천연자원의 보고를 의미한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통신 기술의 발달로 거리상의 문제가 극복되면서 파타고니아는 신화적인 변방에서 21세기 현실의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이 지역에 새로운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으며, 나는 여행하는 동안 파타고니아에서 "태어나서 성장했다."는 뜻인 '나시도 이 크리아도'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산타크루스 주 주지사였던 네스토르 키르츠네르가 2003년 5월에 파타고니아 출신으로는 최초로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실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더욱 고취시켜 주었다. 그러나 파타고니아에 불고 있는 다양한 변화의 바람 가운데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아르헨티나 대지(臺地)에 있는 대규모 양목장인 에스탄시아의 붕괴가 가져온 토지의 소유와 이용상의 변화이다. 북쪽의 콜로라도 강에서 남쪽의 티에라델푸에고에 이르기까지 약 2400km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 걸친 무한한 황무지, 즉 스텝 지대는 파타고니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파타고니아의 문화와 경제는 목양 산업을 기반으로 발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양모 가격의 하락과 지나친 방목으로 인한 사막화로 목양 산업은 몰락하고 말았다. 에스탄시아 수백 개가 문을 닫고, 일부는 돈 많은 외국인들에게 팔렸다. 현재 350명의 외국인이 아르헨티나령 파타고니아 총면적의 약 6분의 1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이 미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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