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선, 폭풍을 만나다
1865년 금화와 은화, 그리고 남북전쟁 이후 재건을 향한 희망을 싣고서 남부로 항해하던 한 외륜선이 미국 조지아 주 앞바다에서 난파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보물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화재를 진화하고 상처를 핥으며 계속 전진해야 할 때였다. 남북전쟁은 5월에 끝났고 전후의 엄숙한 침묵은 기회를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름날의 활기로 변해갔다. 패배한 남부는 가난과 쓰디쓴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이 나라의 나머지 주들은 전쟁이 끝난 것에 감사해 하며 다시 돈벌이에 나섰다. 버몬트 주의 한 연대에서 대령으로 복무한 바 있는 윌리엄 T. 니콜스는 10월에 그의 남동생 헨리와 함께 각각 60달러를 지불하고 맨해튼 부두에서 뉴올리언스 행 증기선 리퍼블릭 호에 올랐다. 그들은 특등실인 13호실을 찾아 짐을 풀고 오후 3시 30분 출항을 기다렸다. 항구에서 좀 떨어진 대서양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이 증기선은 다음날 아침까지 스테이튼 섬에 정박해 있다가 10월 19일 오전 9시에 다시 출항했다. 전함에서 민간 증기선으로 새롭게 재단장한 리퍼블릭 호의 양옆에 붙은 외륜은 석탄 연료를 때는 보일러들에 의해 움직였다. 당시 이 배에는 승객 59명이 타고 있었고, 화물 500배럴과 보고된 바에 따르면 40만 달러어치의 주화가 실려 있었다. 남부연합에 속해 있던 주(州)들에서는 금화가 아주 귀했고 뉴올리언스는 파산상태여서 은행가들과 사업가들은 그들이 가진 화폐의 구매력이 높아진 것을 십분 이용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주화를 배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똑같은 20달러짜리 금화로 뉴욕 시에서 구매할 수 있는 양의 두 배를 뉴올리언스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리퍼블릭 호에는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 새로운 임지로 떠나는 육군 장교들,그리고 니콜스 같은 사업가들이 타고 있었다. 실크 모자에 실크 옷을 차려 입은승객들은 소금기 있는 따뜻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카드 놀이와 와인을 즐기면서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을 기뻐했다. 게티즈버그 전투에 참전했던 35세의 윌리엄 니콜스에게 운명은 그리 너그럽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에 딸 메이를 장티푸스로 잃었다. 또 주식과 양모에 투자해 큰 돈을 날렸다. 이제 그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남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뉴올리언스에서 텍사스 주까지 계속 내려갈 생각이었고, 그곳에서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이 항해로 기운을 회복했다. 러틀랜드에 남겨 둔 아내 스리자에게 보낸 편지에 "날씨는 화창하고 배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신나게 달리고 있다오."라고 썼다. 10월 22일 일요일, 리퍼블릭 호는 케이프 해터러스를 통과했다. 그런데 바람이 점차 거세지더니 다음날 저녁 무렵에는 북동풍의 돌풍으로 변했다. 그 돌풍이, 에드워드 영 선장이 묘사한 바에 따르면 "그야말로 완벽한 허리케인"으로 변했을 때 배는 조지아 주 앞바다에 있었다. 남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항해하고 있던 영 선장은 이 허리케인을 피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