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문화 구하기
그 유명한 박트리아의 황금 유물은 되찾을 수 있었지만 다른 많은 유물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속속 사라지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혼란 이후 재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 나라가 과연 과거 유산을 그들의 미래에 남겨 놓을 수 있을까?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마을 근처에서 명문(銘文)이 새겨진 석판을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모하메드 모크타 아마디는 값진 그 물건을 넘기라는 군벌 지도자의 요구에 맞섰기에 아프간 중부 고원지대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두려워 카불로 숨어 들어갔다. "어딜 가든 그들이 나를 죽일까봐 겁이 나요." 카불에서 경적을 울려 대는 차들과 매연을 내뿜는 트럭들, 당나귀가 끄는 덜거덕거리는 수레와 겁 없이 도로로 뛰어드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헤치고 나가면서 그는 말했다. 아마디의 시련은 1995년 그가 남동생과 함께 고대의 불교 사원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안에서 그들은 책 한 권과 금화, 보석의 원석이 담긴 석함(石函)을 하나 찾았고 외벽에는 낯선 문자로 된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그 지역의 군벌 지도자인 압둘 카림 칼릴리 휘하의 병사들이 석함과 그 내용물을 압수해 갔다. 마을의 지도자인 아마디는 외벽에서 떼어 낸, 명문이 새겨진 그 석판을 보관했다. 2002년 무렵 칼릴리는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아프간의 부통령이 되었고 그의 사병들은 마을로 돌아와 그 석판을 요구했다. 아마디는 그들이 인수증을 그에게 써 주는 데 동의한 후에야 마지못해 내주었다. 그 후 즉시 카불로 가서 정보문화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현지 언론이 칼릴리에게 의문을 제기하자 그는 처음에는 석함이나 석판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카불의 한 일간지에 아마디의 말을 뒷받침해 주는 인수증의 사본이 게재되자 그제서야 칼릴리는 그 석판을 국립박물관에 넘겼다. 석함과 그 내용물의 소재는 묘연한 상태인데, 칼릴리는 이에 관한 언급을 거부했다. 아마디는 그의 나라에 있는 놀라운 문화유산들이 팔려 나가 아프간 땅에서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10월 선거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칼릴리가 고대 유물과 복수를 즐기는 많은 군벌 지도자 중 한 명에 불과하다고 말함으로써 그와 같은 우려에 공감을 표명했다. 약탈행위에 불만을 표하는 의로운 시민들은 체포되거나 그보다 심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니 아마디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아프간인들이 자기네 나라의 보물에 대해 걱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 지난 4월에는 놀라운 희소식도 있었다. 사라진 것으로 우려되었던 그 유명한 박트리아의 황금이 카불에 있는 대통령궁의 밀폐된 지하실에서 2만 점 이상 고스란히 발견된 것이다(30쪽의 '골드러시' 참조). 그러나 이 지역의 복잡하고도 찬란한 역사를 증언하는 수천 점의 예술품과 고고학 유물들은 여전히 위기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