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무적 대함대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중국 명나라 시대의 환관이었던 정화는 거대한 무역선들을 지휘해 멀리 아프리카까지 해상 원정을 떠났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스리랑카 최남단의 돈드라 곶. 대양을 향해 길게 뻗어 있는 바위투성이 곶에서 시야에 잡힌 명나라 선단의 첫 모습은 마치 수평선에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 같다. 이 그림자는 점차 떠오르면서 열대의 태양에 선홍빛으로 물든 커다란 구름으로 모습을 바꾼다. 바람을 맞아 팽팽히 부푼 구름 같은 돛들은 계속 접근해 오며 이글대는 선홍빛 품 안에서 거대한 도시를 드러낸다.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상 도시'를 말이다. 관리와 병사들, 농부들이 그들 눈 밑에 펼쳐진 이 광경에 너무 놀라 넋을 잃는다. 굉장한 위용으로 인도양을 수 킬로미터에 걸쳐 덮고 있는 이 도시는 바로 명나라 수군 제독 정화(鄭和)의 함대다. 이번 달로부터 정확히 600년 전에 이 명나라의 대선단은 난징(南京)에서 첫 항해의 닻을 올렸다. 멀리 서쪽으로 아프리카까지 일곱 차례에 걸친 역사적 대원정의 시작을 알리는 항해로서 이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상륙보다도 거의 한 세기 전 일이다. 한 세기가 지난 후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선단과 비교해 볼 때 이 유럽인들의 원정은 보잘것 없는 수준이었던 듯하다. 정화의 지휘 하에 출범한 선단의 배는 그 선창 하나에 콜럼버스와 다 가마의 배들이 모두 너끈히 들어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화는 분명 중국 4000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해양인이었다. 새 세상을 꿈꾸고 이를 이루기 위해 의식 있게 일을 추진했던 선각자였다. 하지만 그의 출신 배경은 한 수군의 제독이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그것이 황실 소속 제독이라면 더더군다나 그랬다.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이 뱃사람은 아주 가까운 항구에서도 몇 주는 들어가야 하는 아시아 대륙 깊숙한 곳의 산악지역에서 자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화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본명은 마화(馬和)였고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교 집안 출신으로 몽골 윈난성(雲南省)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382년 중국인들이 몽골족을 정복했을 때 포로가 되어 중국으로 붙잡혀 온 것이다. 거세당한 후 환관이 된 그는 호전적인 연왕(燕王) 주체(朱 )에게 보내진다. 명나라 군대에 거세당하는 고초를 겪은 이 소년은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사이 연왕의 총애를 받는 최고 고문관의 한 명이 되었다. 그는 또한 1402년 주체를 ('영원한 즐거움'이란 의미의) 영락제(永樂帝)로 등극시킨 반란의 핵심 전략가였다. 영락제로부터 정(鄭)씨 성을 하사 받은 그는 역대 수군 가운데 가장 막강했던 수군 부대 하나를 통솔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6세기가 지나 나는 사진기자 마이클 야마시타와 함께 정화의 유산을 찾아 중국의 윈난성에서 아프리카의 스와힐리까지 약 1만 6000km 거리에 이르는 여정을 떠났다. 정화가 갔던 길을 좇아가면서 나는 이 사나이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