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 고통의 나날들
카프카스산맥은 유럽을 아시아의 경계이다. 종교, 정치, 그리고 10년 간의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 지역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두자녀를 둔 젊은 체첸의 여의사, 말리카(가명)는 단테의 신곡에 나온 지옥을 연상시킬 만큼 끔찍했던 조국의 분리독립 전쟁 때문에 거의 모든 가족을 잃었다. 어머니는 2001년 러시아군 폭탄에 맞아 사망했고, 아버지는 폭격은 피했으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태를 견디지 못하고 곧 병으로 쓰러졌다. 러시아군은 그녀의 남자형제를 끌고 가 다섯 달 동안이나 임시 감옥에서 모진 옥살이를 시켰다. 그는 적십자의 도움으로 풀려나기는 했으나 얼마 안 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최악의 사태가 닥친 것은 2002년 어느 봄날 밤이었다. 새벽 1시경, 마스크와 헬멧으로 중무장한 남자들이 말리카의 아파트에 들이닥쳐 남편을 끌고 갔다. 말리카의 집은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 있었다. "아직도 남편의 생사를 몰라요." 말리카가 말했다. 그로즈니의 공무원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로즈니 지방 검찰청에 있는 남편의 파일은 '실종'이라는 단 한 마디로 표시된 수천 개의 파일 중 하나에 불과하다. 말리카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 조용히 간직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갈가리 찢긴 고립된 조국 위에 관을 덮는 휘장처럼 드리운 절망감은 여성을 포함한 일부 체첸인들이 극악무도한 행동도 불사하게끔 만들었다. 2004년 9월 첫날, 체첸인으로 이루어진 32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이웃 북오세티야 공화국에 있는 소도시 베슬란의 제1중학교를 장악했다. 52시간 동안 학교를 점거한 사건은 사상 최악의 테러 사태로 기록되었다. 약 330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반 이상이 어린이였다. 서방 뉴스 앵커들이 익숙지 않은 지명을 발음하느라 애쓰는 동안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은 믿기지 않는 듯 뉴스를 지켜 보았다.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까지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러시아인 역시 공포에 질려 이 비극적인 사태를 지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카프카스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테러의 근본원인을 알고 있었다. 카프카스는 러시아 남서부에 걸쳐 있는 산악지대로 체첸을 비롯해 러시아 연방에 속한 여러 무슬림 공화국들이 자리잡고 있다. 10년 이상 이어진 전쟁으로 체첸에선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았고, 그 동안 러시아군과 체첸 분리독립주의자들은 제네바협정의 세부사항 따위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1991년, 구소련 전역에 걸쳐 발생한 민족주의적 움직임에 고무되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 소련 공군 장성 출신인 체첸의 조하르 두다예프가 분리독립운동을 일으켰고, 그 해 말 그는 조국의 독립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소련 정부는 만일 체첸의 분리독립을 허용한다면 다른 자치 공화국들도 잇따라 분리독립을 주장할 것을 우려하여 이 독립선언을 비난했다. "우리는 러시아의 일부가 분리되어 나가는 사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단호히 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러시아 붕괴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4년 12월 31일, 옐친은 그로즈니 중심부에 수백 대의 탱크를 투입했다.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분쟁의 시작이었다. 이 전투로 10~30만 명이 사망했고, 불과 1만 5000km2 지역에 흩어져 살던 체첸인 50여 만 명이 피난을 떠났다. 그로즈니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유럽에서 가장 심하게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