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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인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미래를 바꿔 놓을지 모를 선거를 앞두고 민주주의를 향해 힘들게 나아가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빅토르 유셴코는 매일 새벽 생애 가장 힘든 나날을 시작하면서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통령께서는 자신의 모습에 낯설어 하십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내면의 자신을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이죠." 그의 보좌관이 털어놓는다. 그러나 수백만 그의 동포는 퉁퉁 붓고 곰보자국으로 얽은 데다 심하게 변색된 그의 얼굴이 자신들의 조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과거가 상처로 얼룩져 있지만 온갖 역경을 딛고 살아남은 우크라이나를 적절히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셴코는 오랫동안 때를 기다렸다. 프랑스보다 더 큰 면적에 인구 4600만 명이 사는 우크라이나는 레오니드 쿠츠마 대통령 집권기의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지역 파벌과 파렴치한 소수 권력자들의 봉건 영지로 전락했다. 개혁가들이 미약하게나마 권력기관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기울어 가는 부패 정권의 손아귀에 있었다.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 다른 유럽 국가들과 서방 세계에 합류하고 싶어하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유셴코는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마침 유셴코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긴박한 시점에서 당시 후보였던 유셴코는 응급 치료를 받기 위해 비밀리에 우크라이나를 빠져 나갔다. 그의 상태는 위독했다. 오스트리아의 의사들은 다이옥신 중독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유셴코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얼굴이 심하게 변형되었고, 이는 당시 정권이 그의 암살을 지시했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유셴코의 정적들은 그를 암살하려다가 자신들도 모르는 새 그가 주도한 혁명의 시녀가 되어 버렸다. 유셴코의 지지율 상승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역에 "야 스타야브 나 마이다니!"라는 함성이 메아리쳤다. '나는 마이단에 섰다'라는 뜻이다. '마이단'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중심에 있는 독립광장으로 그 단어의 의미 역시 '나는 거기에 있었다, 나는 자유를 위해 일어섰다, 나는 변화를 기대할 권리가 있다'라는 뜻이다. 지난 정권이 부정 선거를 계획하고 미래가 불확실했던 그 춥고 긴박한 몇 주간, 우크라이나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도로 몰려와 마이단에 텐트를 치고,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로 역할을 겸하는 키예프의 중심가 크레솨칙을 점거했다. 전 세계는 몇 주 동안 진행된 대치 상태를 지켜 보면서 유셴코의 본거지인 우크라이나 서부와 800만 러시아인 대부분이 거주하는 동부 간에 내전이 발발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위대는 진압부대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자리를 지켰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깃발, 티셔츠, 스카프, 풍선이 전부였으며 모두 오렌지색이었다. 오렌지혁명은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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