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터파 신앙공동체
37년 전, 한 젊은 사진기자가 미국 몬태나 주에 위치한 작은 신앙공동체 마을을 찾아가 그곳의 삶을 취재했다. 그의 마음 속에 그곳은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1969년 여름 인간이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하고, 수천 명 이 모여 베트남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 나는 미국 몬태나 주 중부의 서프라이즈크리크라는 공동체 마을에서 생활하는 평화주의 종교단체 후터파교도들의 삶을 취재하고 있다. 그들의 삶은 내 삶과 아주 다르고, 아마 여러분의 삶과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취재로 나는 일평생 지속될 우정을 얻을 것이다. 나는 젊은 남자로 결혼해 두 아들과 두 딸을 두고 있다. 맏아들 스코트는 아홉 살이다. 2004년 가을 이제는 더 이상 달 탐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도 이제 늙었고 그 사이 재혼해 아들 하나가 더 있다. 아들 스코트는 이제 44세이고, 죽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적어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늘 나는 트럭 옆자리에 내가 키우는 잉글리시스프링어 강아지를 태우고 몬태나 주로 향한다. 서프라이즈크리크의 후터파교도들을 다시 취재하기 위해서다. 가는 길에 스코트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코트가 살고 있는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외곽에 들렀다. 후터파 기사를 과연 또 쓸 가치가 있을까란 생각에 아들에게 물어 본다. "예전 기사를 그저 반복하는 게 되지 않을까?" 스코트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을 앓고 있다. 그것도 악성이다. 아직은 건강해 보이며 잘 생겼다. 내가 후터파교도들과 얼마나 가까운 사인지 잘 아는 아들은 "아버지, 언제 또 그렇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취재를 할 기회가 오겠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래, 맞다." 아침에 나는 몬태나 주로 떠났다. 후터파 마을에서 내가 며칠간 묵고 있는 데리어스와 애니 월터 부부의 깔끔한 목조주택은 내 집처럼 편안하다. 나는 이 마을을 몇 년간 벌써 여러 차례 찾아왔다. 때론 내가 키우는 개 사라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와서 새 사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늘 월터 부부네서 묵었다. 그래서 내 딸 테리는 후터파교인들과 월터 부부를 "아빠의 또 다른 가족"이라 부른다. 데리어스(65)는 식탁의 자기 자리에 앉아 있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인 그와 나는 절친한 사이다. 여느 후터파 기혼 남성들처럼 그도 수염을 기르고 있고, 나이와 상관없이 후터파 남자라면 모두 입는 멜빵 바지를 그도 입고 있다. 예전에 비해 살이 좀 쪘고 얼굴은 더 붉어졌지만, 풍성한 은빛 머리칼에 반짝이는 눈, 온화한 미소, 뛰어난 유머감각은 여전하다. 데리어스가 앉은 자리에서는 흰 커튼이 쳐진 창문을 통해 잔디밭 건너편의 새 모이통과 빨래줄들이 보인다. 여자들이 입는 긴 원피스와 치마와 흰 블라우스, 남자들이 입는 검은 바지와 흰 양말과 격자무늬 셔츠, 그리고 똑같은 스타일로 크기만 작은 아이들 옷이 빨래줄에 널려 가을 산들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마당 바로 너머로는 흙길이 나 있어 마을의 목조주택들과 시설이 깔끔한 트레일러 이동주택들, 공동 부엌, 그리고 교회로 이어진다. 작은 지류인 서프라이즈크리크와 평행으로 나 있는 이 길은 정원들과 양들의 낡은 목조 외양간들, 그리고 막 돋아난 겨울밀의 싹들로 푸르른 밭을 지나간다. 데리어스는 무선전화기를 쥐고 있다. 마을 전체에서 전화기는 이것까지 딱 두 대다. 나머지 한 대는 샘 호퍼 목사의 집에 있다. 데리어스는 이미 수 차례 이 공동체 마을에 들어오고 싶다며 끈덕지게 전화를 해 오는 텍사스 주의 한 남자와 통화를 하고 있다. 외부인이 마을에 들어오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후터파교도들은 개종을 장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 낭비예요." 데리어스가 퉁명스레 대꾸한다. "후터파교도로 태어난다 해도 힘듭니다. 늘 규율을 어기는 사람들이 나오거든요. 우린 개종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그런 줄 아십시오. 더 이상 '왜?'냐고 묻지 마세요." "왜?"냐는 질문은 후터파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옷차림과 생각 등 대부분의 미국인이 소중히 여기는 인권에 있어 개인주의는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마을 공동체가 모든 재산을 소유한다. 그래서 개인 재산도 없고, 개인 은행계좌도 없으며, 개인 소유물도 거의 없다. 사생활도 마찬가지다. 대신, 모든 이에게 옷과 음식이 제공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후터파는 오늘날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공동체 집단에 속한다. 젊은이 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인구가 늘고 있다. 내가 처음 서프라이즈크리크에 왔을 때만 해도 주민이 50명가량이었는데 지금은 125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약 500km 떨어진 몬태나 주의 북동부에 프레리엘크라는 새 공동체 마을을 조성하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언젠가는 서프라이즈크리크에 계속 머물 사람과 프레리엘크로 떠날 사람들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데리어스는 미주리 강 남쪽을 따라 3000ha 면적으로 조성되는 새 마을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마을 공동체에서는 이 지역의 지대로 320만 달러를 지불했는데 용수권만으로도 투자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그는 내게 말한다. 그는 프레리엘크에 있을 때 더 편안해 보인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농부였다. 1994년 연로한 서프라이즈크리크의 마을 촌장이 죽자 후임자로 데리어스가 선출되었다. 그 자리는 쉬운 자리가 아니다. 많은 규정들을 집행해야 하고, 마을의 부채도 관리해야 한다. 아침마다 부엌 바로 옆의 사무실에 앉아 고지서를 챙기고, 남자들에게 일거리를 배분하고, 마을의 각종 업무를 처리한다. 늦은 오후, 나는 월터의 집 뒤편에 있는 잔디밭에서 강아지에게 먹이와 물을 먹인 후 멀리 돌아다니지 못하게 나무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 어느새 나는 마을에서 제일 어린 꼬마 몇 명에게 둘러싸였다. 사내아이들은 집에서 만든 모자와 재킷을 입고 있고, 여자아이들은 땋은 머리 위로 스카프를 두른 채 긴 원피스를 입고 있다. 꼬마들은 질문할 때 성까지 다 붙여 내 이름을 부른다. 보통 질문들이 많다. "빌 앨러드 씨, 저 강아지가 사라예요?" 일곱 살 난 르네가 내 강아지에 대해 묻는다. "아니, 사라는 죽었고 이 녀석은 버스터란다." 예의바르게 다들 조용히 입을 다물지만 이 침묵도 잠시뿐이라는 걸 나는 안다. "빌 앨러드 씨," 여섯 살짜리 그레고리가 입을 뗀다. "버스터도 꿩 사냥을 할 줄 알아요?" "글쎄다, 녀석은 아직 어려서. 하지만 해 보면 알겠지." "빌 앨러드 씨," 이번엔 아홉 살 난 라이언이다. "사냥갈 때 따라가도 돼요?" "아니, 오늘은 안 돼." 아이들은 그 질문에 내가 뭐라고 대답할지 알면서도 늘 물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