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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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함께한 삶

어떤 사람들은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함께 낭만적인 모험을 떠나기를 꿈꾼다.톰 에버크롬비는 그 꿈을 실현한 사람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60년 전 미국 미네소타 주 스틸워터. 한 15세 소년이 형을 따라 시내로 '벌목꾼의 날' 퍼레이드를 구경하러 갔다. 비행기 조종사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얼마 전에 돌아온 형 브루스는 이탈리아에서 사 온 라이카 카메라로 퍼레이드 행렬을 찍기 시작했다. 동생은 잠시 지켜 보다 따분해져서 더 흥미로운 것을 찾아 혼자 이리저리 다녔다. 그러다 보도에 있는 한 소년을 발견했다. 소년은 퍼레이드 차량 위에 서 있는 소녀들을 웃기기 위해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형, 저런 걸 찍어!"라며 동생은 형을 불렀다. 나중에 동생은 형의 라이카 카메라를 빌려 도면을 그린 후에 거울과 버려진 렌즈, 플라스틱 조각으로 카메라를 만들었다. 그가 찍은 첫 작품은 여자 친구 린의 사진이었다. 토머스 J. 애버크롬비의 기자로서의 열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기념비적인 경력을 쌓고 1994년 은퇴한 후 최근 75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몸 담았던 38년 동안 그는 세계 각 대륙을 돌아다니고 4개 언어를 익혔으며 숱한 죽음의 위기도 넘겼다. 그가 작업한 기사만도 43건이나 된다. 그 가운데는 본지의 가장 야심찬 역작에 드는 것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길이 남을 업적은 분명 1956년에서 1994년 사이에 이슬람 세계를 돌아다니며 완성한 16건의 기사 안에 담겨 있다. 애버크롬비는 195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를 찾아왔다. 당시 그는 미 육군에서 잠시 복무한 후(인명구조원으로 일할 때 걸린 무좀 때문에 조기 전역해야 했다) 미 중서부 지역의 두 일간지인 '파고 포럼'과 '밀워키 저널'의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뉴스 취재로 '밀워키 저널'에서 '올해의 신문 사진기자상'을 받은 경력이 있었지만 정작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멜빌 벨 그로브너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뒤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의 사진이었다. 아메리카울새가 부리로 벌레를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로브너는 마치 다른 아메리카울새가 찍은 사진처럼 사진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애버크롬비는 입사 시 받아야 하는 신체검사에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무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높이 산 편집부는 그를 채용했다. 애버크롬비는 그 때까지 미국 밖을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처음 맡은 해외 임무인 레바논 취재에서 이 키 작고 무뚝뚝하지만 사람 좋은 미네소타 주 출신 청년은 자신이 거의 누구와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레바논의 카밀 샤문 대통령을 인터뷰했는데, 깐깐하기로 유명한 샤문 대통령이 그를 얼마나 편하게 여겼는지 나무 밑에 쭉 뻗고 누워 있는 자신과 영부인의 모습을 찍어 달라고 할 정도였다. 레바논의 카브일리야스에서는 생전 처음으로 모스크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곳에서 톰은 인생에서의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다. 그 때의 느낌을 기사에 이렇게 기록했다. "예배가 끝나고 나는 인파에 뒤섞여 사원 문 밖으로 떠밀려 나왔다. 그리고 길게 늘어선 걸인의 무리를 지나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동안 나는 따뜻한 소속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들은 나를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