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쿠마 국립공원
글 : 마이클 페이 사진 : 마이클 니콜스
상아를 노리는 밀렵꾼들이 중앙아프리카에 마지막 남은 코끼리들을 살육하고 있는 가운데 차드의 한 보호구역에서는 무장경비원들이 멸종위기에 처한 코끼리들을 구하기 위해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커다란 수컷 코끼리 1마리가 죽은 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고통이 심했던지 오른쪽 다리를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흙을 걷어내니 한쪽 눈이 보인다. 코끼리 사체 위에 흙을 뿌리는 것은 독수리 떼가 몰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밀렵꾼들의 ‘처방’이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줌 지린내가 코를 찌른다. 중앙아프리카에서 수없이 본 장면이다. 녀석의 코에서 꼬리까지 쓰다듬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귀를 들춰보았다. 선홍색 핏줄기가 입에서 흘러내려 땅에 고였다. 피부는 주름살투성이였다. 코 뿌리 부분의 굵기가 남자 몸통만 했다. 발바닥은 강줄기처럼 이리저리 쩍쩍 갈라져 있었다. 발바닥의 균열에서 녀석이 30년을 살면서 걸었던 발자취를 읽을 수 있었다.녀석은 노예와 상아를 노리고 북쪽에서 내려온 아랍계와 아프리카계 술탄 병사들의 수세기에 걸친 노략질에도 살아남은 코끼리들의 후예다. 내전과 가뭄에도 꿋꿋이 생명을 지탱해오던 녀석은 오늘 멀고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인간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줄 단 몇 킬로그램의 상아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녀석의 입 속에는 아직도 촉촉한 풀잎이 남아 있었다. 녀석은 친구들과 함께 달콤한 수액이 가득한 나뭇가지들을 낚아채 먹으면서 나무 그늘 속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도망치려 해보지만 너무 늦었다. 말을 탄 밀렵꾼들이 녀석을 추월하면서 총알이 연달아 녀석의 몸에 박혔다. 머리에는 작은 총알구멍이 8개나 있었다. 총알이 두꺼운 피부를 뚫고 근육, 뼈, 뇌에 박히면서 녀석은 쓰러졌다. 녀석을 발견하기 전 모두 48발의 총성이 울렸다.
국립공원 기마경비대장 술레이만 만도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서 복수하고야 말리라는 의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나도 같은 심정이었다.
“다음번엔 놈들을 꼭 잡아요.” 내가 말했다.
그는 억지로 웃어보였다. “인샬라(신의 뜻때로)!”
자쿠마 국립공원에서 밀렵단속은 위험한 일이다. 원칙적으로는 밀렵꾼들이 총을 쏘면 경비원은 자위수단으로 응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은 양쪽 모두 사살을 목적으로 총을 쏘기 때문에 먼저 쏘고 봐야 한다. 지난 8년 동안 경비원 6명이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었고 밀렵꾼들도 최소한 6명이 경비원들에게 사살되었다.
몇 발 쐈느냐고 술레이만에게 물어보았다. 3발이라고 했다. 아둠, 야쿠브, 이사, 아팀, 브라힘, 살레, 압둘라예 등 다른 대원들은 모두 21발을 쐈다. 그러나 AK-47과 M14 자동소총을 가진 밀렵꾼 2명은 이미 말을 타고 도망쳤다. 술레이만은 이들이 아랍 유목민이라고 했다. 말을 타고 도망치는 밀렵꾼 2명이 더 있었다. 아둠이 발포하자 달아났다. 코끼리 1마리가 총상을 입은 채 공포에 질려 도망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오합지졸 경비대와 코끼리 밀렵의 주범인 아랍 유목민은 이처럼 서로 죽고 죽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어느 쪽도 이 상황을 안타까워하지는 않았다. 경비대는 이 지역 마을출신인 정착민들로 아랍인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무슬림이며 밀렵꾼 대부분은 아랍 유목민들이기 때문이다. 술레이만은 밀렵꾼들을 추적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상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인치고 숲 속에서 상아를 보고 입맛을 다시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이제 다른 경비대원들도 마저 합류했다. 죽은 코끼리에 대한 동정은 온데간데없이 그들은 정신없이 상아를 잘라냈다. 은종고가 칼로 두께가 2cm쯤 되는 갑옷 같은 코끼리의 거친 가죽을 가르자 흰 연골과 거무스레한 근육이 드러났다. 칼날이 더 깊숙이 파고들자 에나멜을 입힌 듯 부드럽고 새하얀 콧구멍 2개가 보였다. 은종고는 잘린 코를 죽은 뱀처럼 내동댕이치더니 도끼로 평평한 얼굴뼈를 내리쳤다. 거의 1시간이나 조금씩 잘라내다 보니 등이 땀에 젖었다. 깊숙이 박힌 원뿔 모양의 상아는 도끼로 잘못 내려치면 상처가 나기 때문에 정확하고 섬세하게 작업해야 한다. 은종고는 이따금씩 상아가 헐렁하게 되었는지 살폈다. 은종고가 힘껏 잡아당기자 우지끈하면서 상아가 두둑한 살집과 뼈에서 떨어져나왔다.
술레이만이 상아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상아 뿌리가 땅에 툭 떨어졌다. 이 상아는 그들이 나흘 동안 밀렵꾼들을 열심히 추적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증거다. 그러나 상아를 갖지는 못한다. 상아는 본부 창고에 보관된다. 창고에는 압수된 상아가 점점 쌓이고 있다. 밀렵꾼들이 가지고 간 상아는 밀림을 지나 카르툼, 두알라 같은 인근 도시에서 조각품이나 보석류로 팔리거나 암거래상을 통해 아시아로 밀반출된다.
술레이만은 코끼리 귀를 잘라 안장삼아 당나귀 등에 깔고 상아를 단단히 묶었다. 경비대원들이 각자 말에 올라타고 우리 일행은 살라마트 강의 지류인 바싹 마른 바르베헤다 강을 지나갔다. 남쪽에서 독수리 떼가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총상을 입은 두 번째 코끼리가 비틀거리다 지금쯤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경비대원들은 녀석을 찾아 나설 기력이 없다. 2006년 5월 말, 한낮 기온이 46℃에 육박했다. 베이스캠프까지 가려면 4시간을 더 가야 한다.
건기가 되면 차드 동남부에 있는 자쿠마 국립공원은 그야말로 유목민들에게 지극히 귀한 곳이 된다. 이 지역은 코롬 강, 팅가 강, 그리고 베헤다 강이 살라마트 강과 합류하는 곳으로 사하라 이남에서 물이 마르지 않는 첫 번째 땅이기 때문이다. 노예무역, 식민지배,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도 사람들은 이곳에 야생동물의 피난처를 만들었다. 인간의 마음이 아주 메말라버린 것은 아니었던지 말이다. 오늘날도 동쪽으로 320km 떨어진 수단 다르푸르에서 내전을 피해 난민들이 끊임없이 차드로 밀려오고 있지만 자쿠마 국립공원의 코끼리들은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러나 자쿠마는 면적 3000km2도 안 되는 작은 공원이다. 매년 건기가 끝나면 코끼리 약 3500마리가 공원을 떠나 먹이가 더 풍부한 곳으로 이동한다. 바로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수단 남부와 차드 동남부, 그리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동부로부터 콩고 밀림 가장자리까지 이르는 미국 텍사스 주만 한 지역에서는 인간들 때문에 코끼리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이 지역의 코끼리 수는 1970년대 초만 해도 30만 마리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1만 마리 정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