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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비

글 : 마크 제이콥슨 사진 : 요나스 벤딕센

뭄바이가 급성장함에 따라 악명 높은 다라비 빈민가의 주민들은 인도에서 가장 값비싼 부동산 지역에 살게 되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인도의 모든 도시들이 다 시끄럽긴 하지만 과거 봄베이로 불리던 뭄바이보다 시끄러운 곳은 없다. 도로는 항상 막히고, 경적은 끊임없이 울린다. 하지만 1에이커당 1만 8000명이 모여 사는 인구 100만 명의 다라비 빈민가에 들어서면 소음은 문제되지 않는다. ‘툭툭’거리는 오토릭샤(오토바이 인력거)도 다니지 못할 만큼 좁고 복잡하게 얽힌 골목 깊숙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 빈민가는 날이 저물면 울창한 숲 속처럼 고즈넉해진다.
다라비는 흔히 ‘아시아에서 가장 큰 빈민가’로 불리고 종종 ‘세계에서 가장 큰 빈민가’로 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멕시코시티의 네자-찰코-이차 구역 인구는 다라비 인구의 4배다. 아시아에서는 파키스탄 카라치에 있는 오란지 타운십 인구가 다라비 인구를 웃돈다. 심지어 도시 인구 1200만 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좋게 말해 ‘비공식’ 주택에 살고 있는 뭄바이에도 규모나 열악함에서 다라비에 뒤지지 않는 빈민가가 많다.
그렇지만 다라비는 빈민가 중에서도 독특한 곳이다. 뭄바이 도심 한복판에서 2.5km2 면적을 차지하는 이 동네는 정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맨해튼의 할렘에 비견될 만한 지리적·심리적·정신적 중심지다. 경제적으로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인도의 야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도시 뭄바이에서 이 동네는 노른자위 땅에 해당한다. 머지않아 전 인류의 절반이 도시에 살게 될 지구에서 지금 다라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인도의 도시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 도시들의 미래를 보여준다.
다라비에 정착한 지 오래된 주민들에게(어떤 가족은 삼대도 넘게 이곳에 살고 있음) 이 동네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물어보면, “우리가 만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콜리족 어민들이 살던 맹그로브 늪지대였다. 늪지대가 쓰레기 등으로 매립되자 콜리족은 밀주업자로 전락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살 터전이 되었다. 구자라트 주에서 온 쿰바르 사람들은 옹기마을을 만들고, 남부에서 온 타밀족은 가죽 공장을 열었다. 호경기를 맞은 직물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수천 명이 몰려왔다. 그 결과 인도에서 가장 다채로운 도시인 뭄바이에도 가장 다양한 사람이 모인 동네, 가장 다양한 특성을 지닌 빈민가가 생겼다.
폭이 1m 정도 되는 라젠드라 프라사드 촐 골목에 있으면 금세 그곳 생활 리듬에 익숙해진다. 아침이면 콸콸거리는 수돗물 소리에 이어 각종 찬송가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라비에는 수도가 설치된 집이 얼마 없었다. 우거지상을 한 미라 싱은 이 골목에서 35년을 살았는데, 예전에는 1.5km 이상 걸어서 그날 쓸 물을 길어와야 했다. 그녀는 동네 불량배에게 돈을 내고 멀리 떨어진 수도에서 물을 받아왔다. 행정 사각지대인 무허가 주택단지에선 많은 일들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빈민가 주민들은 ‘지역 마피아’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수도는 물론 전기도 불량배들이 장악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라젠드라 프라사드 촐 주민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최근 들어 이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집에 수도를 끌어 쓰고 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물을 틀어 골목을 청소하고 집 앞에서 양치를 한다.
다라비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거리의 너비에서 이름을 딴 나인티피트 도로 위로 택시 기사들이 낡은 피아트 자동차를 살살 달래가며 시동을 건다. 옹기마을에서는 0.5m2 크기의 가마가 이른 시간부터 시커먼 연기를 뿜어낸다. 재활용업자들은 구질구질한 공업용 수로 옆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다라비에서는 버리는 물건이 없다. 고장난 플라스틱 장난감은 거대한 분쇄기에서 잘게 부순 후 녹여서, 알록달록한 알갱이로 만든다. 복제 바비 인형을 만들 재료이다. 판지상자나 200ℓ짜리 석유통도 재활용되고 또 재활용된다.
라젠드라 프라사드 촐의 아침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자신의 아파트 한켠에 세들어 사는 가구공 8명이 출근하면 미라 싱은 손자손녀의 머리를 빗긴다. 잠시 후 그녀와 20대 아들 아미트만 남고 15명이 사는 아파트는 텅 빈다. 아미트는 멋진 콧수염에 최신유행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미라는 가장 좋아하는 방송인 바바 람데브가 주황색 요가복 차림으로 나와 손톱을 비비며 노화 방지 시범을 보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왜 이런 바보 같은 걸 봐?” 아미트가 핀잔을 준다.
“모르는 소리.” 미라가 쏘아붙인다. “여든 살이 넘었는데도 머리칼이 새까맣잖아.” “여든? 마흔도 안 됐을걸. 이딴 사기에 넘어가지 마.”
미라는 고개를 젓는다. 분별 있게 살라고 아들을 설득한 적도 있지만 포기한 지 오래다. “도무지 현실감각이라곤 없어요.” 그녀는 아미트가 형 마노즈처럼 취직하기를 바란다. 마노즈는 다라비에 흔한 ‘카르카나스’, 즉 노동착취 공장에서 청바지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미트는 자기에게 그런 일이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색하기 좋아하는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 이런 자부심 뒤에는 싱 일가가 다라비에 오게 된 가족사가 있다. 아미트의 종조부들은 카스트 제도에서 브라만 다음으로 높은 크샤트리아 출신이었다. 영국을 위해 일하던 지주, ‘자민다르’였던 그들은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특권을 박탈당했고, 일가족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뭄바이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아미트의 아버지는 직물 공장에 다니다가 1970년대에 공장이 망하자 다라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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