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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비밀

글 : 케네스 개릿 사진 : 바냐 주라블리오프

마야문명이 강성한 원인과 멸망한 이유는 오랫동안 학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최근 ‘불이 태어나다’라는 이름을 가진 장군이 마야문명을 융성하게 만든 주인공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문명을 파멸로 이끈 것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가지 문제가 아니었다. 간단히 말하면, 모든 게 잘못 돌아갔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마야인들은 10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종교적, 세속적 안녕을 신성한 왕에게 위탁했다. 왕들은 사치스러운 의식과 가장행렬, 화려한 예술품과 건축물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했고, 석비, 벽화, 도자기 등에 비문을 새겨 자신들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겼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충족되는 동안은 그런 사회체제가 성공적으로 유지되었다. 실제로 경제적 여유 덕분에 뛰어난 예술적 업적과 학문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고대문명 중 하나인 마야문명이 활짝 꽃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도시 규모가 작고 자원이 비교적 풍부해 이런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귀족층이 확대되고, 도시국가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한된 환경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과테말라에서 가장 넓은 주인 페텐 주에는 밀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외딴 마을에 36만 7000명이 살고 있다. 그런데 몇몇 추정치에 따르면, 8세기에는 마야 저지대에 1000만 명이 살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거대한 도시국가들을 연결하는 얽히고설킨 산길과 포장된 둑길을 따라 집약적 농업을 하는 농경지, 밭, 마을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마야 농부들은 척박한 열대 토양에서 수확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발달된 농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호수 바닥에 쌓인 퇴적물을 연구해본 결과 9세기부터 오랜 가뭄이 마야 세계를 강타한 듯하다. 특히 농작물을 재배하는 소택지 ‘바호스’에 댈 관개용수와 식수를 모두 빗물에 의존했던 티칼 같은 도시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칸쿠엔과 같은 하항은 가뭄으로 인한 재난은 모면했을지 모르지만 마야 대부분 지역에 걸쳐 있는 침식된 고대의 토양층을 보면 당시 토지 남용과 산림 벌채가 횡행했음을 알 수 있다.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지만, 쿠울 아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흉년이나 교역에 대비해 비축이 가능한 한 가지 주요 작물을 재배하는 단일경작 농법은 우림에서 지속될 수 없었다. 대신 도시국가마다 옥수수, 콩, 호박, 카카오 등 다양한 작물을 소량 생산했다. 그나마 초기에는 왕국을 충분히 먹여 살릴 정도의 식량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는 동안 마야의 최상류층은 위태로울 정도로 비대해져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류층의 복혼과 왕족들 간의 근친결혼으로 지배 계급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왕족들은 비취와 자개, 이국적인 장식비단날개새의 깃털, 화려한 도자기들, 그리고 마야 세계에서 그들의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값비싼 의식용 복장들을 요구했다. 왕족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왕은 그들과 관계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시국가들 간의 해묵은 경쟁 구도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쿠울 아호들은 이웃 국가를 압도하기 위해 더 큰 신전과 더 화려한 궁전을 짓고, 공식 가장행렬을 더 정교하게 연출해야 했다. 이런 일들을 벌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동력과 인구가 필요했으며, 또 적을 함락시켜 강제 노역을 조공으로 받아내기 위해 자주 전쟁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야의 체제는 과중한 짐에 짓눌려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최고의 경쟁관계는 한때 고전기 마야문명이 활짝 꽃피우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마야 세계의 분열을 초래했다. 5세기부터 도시국가 티칼은 아마도 멕시코 고지의 강대국 테오티와칸과 맺은 동맹에 힘입어 파시온 강 계곡을 지나 지금의 온두라스에 있는 코판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며 동맹국과 속국을 만들어나갔다. 그로부터 100년 후 이에 맞서는 강력한 국가가 출현했다. 현재 멕시코 저지의 캄페체에 있던 북부의 도시국가 칼라크물이 북으로는 유카탄 반도, 동으로는 현재의 벨리즈에 이르는 페텐 지역 전역의 도시국가들과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이다. 동맹으로 거대해진 이 두 도시국가는 130년 이상 경쟁하며 대결을 펼쳤다.
이 기간은 고전기 마야문명의 황금기였다. 쿠울 아호들은 이 두 거대 동맹체제 하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예술품과 건축물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그러는 한편 소규모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칼라크물은 562년에 있었던 대전투에서 티칼을 물리쳤지만 도시와 주민들을 완전히 괴멸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티칼은 다시 일어서 칼라크물을 물리쳤고, 이어서 티칼 최고의 웅장한 건축물들이 많이 탄생했다.
사이먼 마틴은 니콜라이 그루브와 함께 티칼-칼라크물의 경쟁관계를 냉전 시대 초강대국 간의 대치 상황에 비유한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무기류에서 우주탐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상대를 앞지르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이들 두 나라 중 어느 쪽도 결코 우위를 점하지 못하자 냉전체제가 결국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듯이 마야 세계의 교착 상태도 마침내 안정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정은 지속되지 못했다. 마틴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의 경쟁과 마찬가지로 마야인들 간의 힘의 균형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했던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니면 오만한 마야 강대국들이 환경 파괴가 극에 달하자 더욱 필사적으로 경쟁에 매달렸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붕괴는 칸쿠엔의 파시온 강 하류 근처에 있던 작은 병영 국가 도스필라스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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