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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해협의 해적들

글 : 피터 그윈 사진 : 존 스탠마이어

해적들은 오늘날까지도 뱃사람 약탈, 선원 납치, 선박 나포 같은 행위로 동남아시아의 말라카 해협을 위협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난 여기서도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죄수가 말한다. 말레이시아 북부의 한 방음 교도소에 갇힌 남자가 하는 말로는 다소 믿기 어려운 얘기다. 이곳은 제일 가까운 바다에서 갈매기가 온다 하더라도 몇 킬로미터는 날아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눅눅한 회벽 감옥 안에서 내가 맡을 수 있는 냄새라곤 바닥 청소용 암모니아의 아릿한 냄새뿐이다.
이 죄수의 말은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결백을 주장하다가도 자의로 범죄에 가담했다고 자백하니 말이다. 자식도 처음엔 셋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네 명이라고 번복한다. 여권상 이름은 요한 아리핀이지만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것이 그의 실명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의 나이는 44세로, 주소는 싱가포르 정남쪽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바탐 섬으로 기재돼 있다. 희끗한 새치로 봐서 나이는 얼추 맞는 것 같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대개 바탐 출신이라고 교도관이 내게 귀띔한다.
죄수의 신분은 불분명하지만 그의 직업만큼은 분명하다. 그는 ‘라눈’이다. 통역관에게 라눈의 뜻을 묻자 여기엔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마땅히 번역할 단어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굳이 번역하자면 그는 ‘해적’이다.
그가 라눈이라는 호칭을 얻은 것은 말라카 해협에서 300만 달러 상당의 디젤 연료 7000톤을 실은 유조선 ‘네플린 델리마’ 호를 나포한 사건으로 공범 9명과 함께 말레이시아 해양경찰에 체포됐을 때다. 이 사건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 반도(남단에 싱가포르가 위치해 있음)를 가르는 804km의 해협에서 2005년 발생한 몇 건의 해적 약탈사건 중 하나다.
수백 년간 뱃사람들은 향신료, 고무, 마호가니, 주석 등 풍부한 자원의 보고이자 인도와 중국을 잇는 직항로라는 점에 매료되어 이 비좁은 해협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해협으로 흘러드는 수백 개의 강, 수 킬로미터에 걸친 해안 습지, 광활한 해역에 흩어진 작은 섬들, 암초와 모래톱이 공존하는 말라카 해협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상제국이라 불릴 만하다. 일찍이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수상 마을을 짓고 어업, 무역, 전쟁 등 용도별로 배를 만들어 육지와 바다를 넘나드는 생활을 했다. 일부는 해적이 되어 자신들의 바다를 겁없이 오가는 외국 선박을 약탈했다. 해적들은 가볍고 기동성 좋은 배들로 함대를 구성해 해협을 통과하는 배를 정기적으로 약탈한 후 강 상류에 있는 요새로 달아났다. 노획한 황금과 보석, 화약, 마약, 노예는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시아 해안지대 대부분을 장악했던 강력한 술탄 제국을 건설하는 데 쓰였다.
1800년대 말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해군을 동원해 술탄 제국들을 굴복시켰을 때도 라눈만큼은 근절되지 않았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21세기형 해적들이 호시탐탐 약탈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들은 크게 선박에 올라타 선원들의 물건을 훔치는 갱단과 선박 전체를 나포하는 다국적 범죄조직, 그리고 몸값을 노리고 선원들을 납치하는 게릴라 집단으로 나뉜다.
현대판 해적의 공격대상은 무궁무진하다. 런던로이즈(국제보험업자협회)에 의하면, 매년 7만 척의 상선이 전 세계 해상무역 물량의 5분의 1, 전체 원유 거래량의 3분의 1을 이 비좁은 해역을 통해 운반한다. 복잡한 지형 때문에 말라카 해협에서는 치안을 유지하기 어렵다. 긴장 관계에 있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놓여 있다는 점도 치안 확보를 더욱 어렵게 한다. 말라카 해협은 북단의 폭이 약 402km에 이르는 반면 남단 근처는 폭이 16km 정도로 좁아진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백 개의 맹그로브 무인도들은 온갖 범죄자들의 은신처로 이용되고 있다.
국제해상국(IMB)의 기록에 따르면 2002년 이후 말라카 해협과 주변 해역에서 신고된 해적 활동은 258건에 달한다. 인질로 잡힌 선원이 200명을 넘고 살해된 선원도 8명이나 된다. 2005년 6월 런던로이즈의 보험 부서가 이 해협을 전쟁지역으로 분류하면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가 각각 자국 영해의 순찰을 강화했고, 2006년 8월에는 전쟁지역으로 판정됐던 등급이 일단 보류되었다.
그러나 해적의 출몰 횟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IMB의 해적신고센터 책임자인 노엘 충은 해적사건의 절반가량만 신고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떤 때는 선주가 신고하려고 하는 선장을 만류하기도 합니다.” 그는 말한다. “선주들은 자기 배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돌거나 조사 때문에 배가 묶이는 것을 원치 않거든요.” 그 결과 말라카 해협에서 활동 중인 해적의 정확한 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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