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수호자 사냥꾼
글 : 로버트 M. 풀 사진 : 윌리엄 앨버트 앨러드
사냥터와 야생동물보호에 매우 적극적인 미국의 전통적 사냥꾼들이 줄어들고 있다. 과연 신세대 사냥꾼들이 이들의 뒤를 이을 수 있을까?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지하실에 오리들이 나타났다. 4744마리에 이르는 청둥오리의 뒤를 검은오리, 비오리, 고방오리, 넓적부리, 고리목오리, 큰흰죽지가 따르고, 마지막으로 6000마리가 넘는 캐나다기러기들이 긴 행렬의 끝을 장식했다. 모두 2만 2963마리나 되는 각종 오리들이 가을부터 겨울까지 계속되는 기나긴 이동을 마치고 1월의 어느 습한 아침에 이곳 메릴랜드 주 로렐에 있는 미 어류·야생동물연구소에 안착했다.
연구소에 있는 오리와 기러기는 엄밀히 말하면 오리와 기러기의 ‘한쪽 날개’다. 이들이 어떤 새인지는 그 날개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곳 연구소에 도착할 때쯤이면 검은오리나 검은머리흰죽지의 몸에서 남은 것이 얼어붙은 날개뿐이기 때문이다. 날개들은 2006~07년 대서양철새날개연구회에 나가기 위해 새의 종류별로 분리된 다음 지하 냉장실에 보관됐다.
노먼 세에키가 마분지 상자에서 청둥오리 날개 하나를 꺼내더니 날개를 펼쳤다. 금속처럼 푸르스름한 광채를 띤 깃털이 빛을 받아 번쩍이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30년이나 이 일을 했지만 예쁜 날개만 보면 넋을 잃습니다.” 그가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날개를 들어 보이며 칭찬을 기대하는 투로 말했다. 네바다 주 야생동물국에 근무하다 은퇴한 생물학자 세에키는 미국 물새들의 건강상태를 진단하는 데 꼭 필요한 이번 날개연구회를 위해 대륙을 가로질러 왔다.
새의 날개는 저마다 내력을 지니고 있다. 세에키 같은 전문가는 날개만 잠깐 훑어봐도 새가 수컷인지 암컷인지, 새끼인지 다 자란 녀석인지, 그리고 순종인지 잡종인지를 분간해낸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일주일 동안 날개로 새의 종류를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각 종별로 대를 이을 어린 새들이 넉넉한지 가늠하게 된다. 동물자원관리국은 이 조사결과와 다른 지역에서 산출된 연구자료를 합해 각 물새종이 사냥의 영향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 판단한다. 미 어류·야생동물관리국에서는 이것을 기준으로 다음 사냥철에 잡을 수 있는 물새, 멧도요, 도요새, 비둘기 같은 연방 보호철새의 수렵허용치를 결정한다.
“연령대 분포를 보면 어떤 종이 얼마나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미 어류·야생동물관리국 대표로 대서양철새날개연구회에 참석한 폴 패딩이 말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많은 이 새들이 그들을 죽이는 사냥꾼들이 없으면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리라는 데 있다. 세에키와 이번 연구회 참가자들에게 제공된 날개도 전부 미국 전역의 물새 사냥꾼들이 보내온 것이다. 사냥꾼들은 선불 우편 봉투에 잡은 새의 날개를 접어 넣고 잡은 장소와 날짜를 적어 우송한다. 이는 미국의 1250만 사냥꾼들이 야생동물 관리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협조자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사냥꾼들이 오리 사냥 허가증을 사는 데 지불한 돈만 지금까지 7억 달러가 넘는다. 이 돈으로 정부는 허가증을 처음 발급하기 시작한 1934년 이후 210만ha의 땅을 미국 국립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사냥꾼들이 매년 각종 사냥 허가를 받기 위해 지불하는 수백만 달러는 사냥관리기관 예산으로 사용된다. 또 이들이 총포와 탄약, 기타 사냥장비를 구입하면서 내는 소비세가 연간 2억 5000만 달러 이상이다. 이중 대부분은 새로운 공공수렵지 조성에 쓰인다. 야생동물보호사업에서 사냥꾼들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이다.
사냥꾼이자 미디어 사업가인 테드 터너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메리카들소의 서식지를 회복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인 그는 80만ha의 땅을 생물다양성 유지와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목축, 벌목, 어업, 사냥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땅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서 모든 게 시작됩니다.” 터너가 말했다. 그는 돈을 받고 자기 땅에 사는 메추라기, 엘크, 들소, 야생칠면조 등을 사냥하게 하고 있다. “동물들이 건강하려면 땅이 건강해야 해요. 좋은 물, 좋은 은신처, 좋은 먹이가 있어야 하죠. 셋 중 하나만 없어도 동물은 살 수 없습니다. 내가 땅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억만장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요.”
터너는 환경보존을 위해 사냥을 유료화하는 방안을 고안해냈다. 뉴멕시코 주와 콜로라도 주에 있는 그의 베르메호 수렵장은 해마다 소수의 사냥꾼들이 엘크 200마리를 사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는 그가 기르고 있는 엘크 1만 마리 중 2%에 지나지 않는다. 사냥꾼에게는 1인당 1만 달러씩 받는다. 그렇게 받은 돈이 연간 200만 달러에 이른다. 터너는 이 돈을 거의 야생 그대로인 그의 24만ha 땅을 관리하는 데 쓰고 있다. 울타리가 거의 없는 이곳에서는 토종 동식물이 왕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냥꾼들은 다른 방법으로 야생동물 보호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은 ‘페전츠(꿩) 포에버’, ‘목도리뇌조협회’, ‘미국야생칠면조연맹’, ‘퀘일(메추라기) 언리미티드’와 같이 특정 동물에 관한 과학연구와 주요 서식지 보호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에 매년 2억 8000만 달러를 기부하고 있다. ‘덕스(오리) 언리미티드’는 1937년 창설된 이후 50만ha가 넘는 습지와 고지대를 보존해오고 있다. 또한 사냥꾼들은 주와 연방 의회, 그리고 시장에서 대중의 관심이 야생동물 보호에 쏠리도록 노력하고 있다. 덕스 언리미티드의 상품 카탈로그에 올라 있는 24달러 99센트짜리 카키색 셔츠를 사면 수익금 일부가 야생동물보호 사업에 사용된다. 한편 몬태나 주 보즈먼에서 슈니스 팩 부츠 한 켤레를 사면 끈에 가격표가 달려 있는데, 거기에는 지불한 가격의 일부가 ‘로키산맥엘크재단’의 엘크 보호에 쓰인다고 적혀 있다.
“이런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건 사냥꾼들이에요.” 버지니아 주 윈체스터에서 중학교 교사 겸 사냥꾼이자 칠면조 유인음 장치를 만드는 짐 클레이가 말했다. “그들은 돈과 시간을 할애하죠. 사냥꾼들이야말로 야생동물보호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