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공의 명수, 알바트로스
글 : 칼 사피나 사진 : 프랜스 랜팅
육지 한 번 밟지 않고 수천 킬로미터를 날면서 망망대해를 돌아다니는 알바트로스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날개를 가진 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알바트로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멋진, 살아 있는 비행체다. 알바트로스는 뼈와 깃털, 근육, 그리고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바트로스가 팽팽하게 당긴 긴 활이라면 바람은 활을 쏘아 날리는 활시위다. 대담한 무늬와 뚜렷한 선을 가진 이 ‘아르 데코’ 스타일의 새는 엄청난 장거리 여행가이고,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한 배우자이자 부모다. 새끼에게 줄 한 끼를 위해 1만 5000km 이상을 날기도 하니 말이다. 자연계에서 가장 긴 날개(최장 3.5m)로 날갯짓 한 번 없이 수백 킬로미터를 활공하면서 여러 대양을 가로지르며 세계를 일주한다. 50년을 산 알바트로스가 비행한 거리는 최소 600만km가 넘는다.
무공해 청정에너지를 자가 재생해 수백만 킬로미터를 여행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알바트로스다. 엄밀히 말하자면 알바트로스의 비행 실력은 그저 그렇다. 하지만 활공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알바트로스는 스위치블레이드(손잡이의 버튼을 누르면 날이 튀어나오는 칼)처럼 양 날개를 곧게 편 채 고정시킬 수 있다. 녀석은 이 글라이더의 방향만 잡아주면 된다. 바람을 타고 상승했다가 중력을 이용해 수면 쪽으로 하강하면서 긴 파동의 형태로 비행한다. 대부분의 새가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지만 알바트로스는 바람을 이용한다.
알바트로스가 다른 새들, 이를테면 갈매기와 구별되는 점은 몸 구조만이 아니다. 정신적인 면, 즉 매우 정교한 몸을 능숙히 조종하는 뇌 기능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갈매기의 뇌를 알바트로스의 머리에 끼운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비행체라도 알바트로스가 늘상 오가는 먼 거리까지 비행하는 건 감히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갈매기가 늘 해안에서 맴돌며 부두 위 말뚝들의 제왕으로 살아가는 반면 알바트로스는 아침 한 끼를 위해서도 대양을 횡단한다. 짝짓기 때만 해안을 밟을 뿐이다. 알바트로스에게 육지란 번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디뎌야 하는 장소인 것이다.
어쩌다 땅에 내려오면 고개를 흔들며 주걱 같은 넓적한 발로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걷기는 녀석들의 주 종목이 아니다. 그러나 오!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면 얼마나 근사해지는지, 무어라 형언하기 어렵다.
천사처럼 우아하고 잡초처럼 질긴 삶을 사는 약 24종의 알바트로스 모두 육지와 아득히 떨어진 먼 바다에서 모진 풍파를 견디며 수개월, 때로는 수년까지 보낸다. 지구상에서 바람이 가장 심한 지역에 사는 이들은 인간과는 다른 차원에 사는 존재 같다.
알바트로스가 사는 곳은 온통 물로 뒤덮인 행성의 한가운데인 듯한 느낌을 주는 외딴 원시 섬들로,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인간은 그들이 사는 모든 곳에 영향력을 미친다. 그 결과, 최근 수십 년 사이 거의 모든 알바트로스 개체군의 수가 급감했다.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수가 가장 밀집해 살고 있는 개체군들을 찾아냈다. 그 어디에서나 이들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 이런 위협 요인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알바트로스의 개체수를 회복시키기 위해 이제 우리는 이 새들과 공존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위 51°에 위치한 포클랜드 제도의 스티플제이슨 섬. 사람 키만 한 에메랄드빛 풀숲이 우거진 해안 위로 둥근 언덕들이 맨어깨를 우아하게 드러내고 있다. 섬 북단을 걷다보면 생명체들의 놀라운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검은눈썹알바트로스가 바위 턱과 해안선에 너무나 빽빽이 모여 있어 이 새들이 바로 해안선 같다. 이 집단번식지는 4km나 이어진다.
검은눈썹알바트로스의 소프트볼만 한 머리에는 까만 눈 위로 녀석의 이름처럼 검은 줄무늬가 그어져 있어 그윽한 눈매를 연출한다. 마치 에어브러시로 칠한 듯한 10cm 길이의 부리는 옅은 겨자색에서 투명한 핑크빛으로 그러데이션되다가 갈고리처럼 휘어진 부리 끝에서 장밋빛으로 마무리된다. 바다에서 4~5년 살다가 처음 육지로 돌아온 어린 녀석들의 부리는 거무스름하다. 지금은 구애의 계절. 녀석들이 일본의 가부키처럼 과장된 몸동작으로 자신을 과시한다. 깃털 다듬기도 마치 춤추듯 연출하고 꼬리를 부채처럼 펼치기도 하며 구구거리고 서로 목을 길게 뻗어 상대의 몸 위에 부리를 올려놓기도 한다. 또 흠 없이 완벽한 날개와 건강한 깃털, 공들인 몸단장을 자랑하며 번식력을 보여주는 특정 부위를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어린 녀석들은 대개 자기 이상형을 잘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여러 상대를 만나보는 것도 중대한 결정에 앞서 필요한 과정이다. 배우자 선택은 새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암수가 함께 새끼를 키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애에만 흔히 2년이 걸린다. 관계가 진척된 쌍은 오랫동안 서로 붙어 앉아 상대의 머리와 목의 털을 골라주면서 상호 보살핌과 신뢰의 관계를 강화한다. 이렇게 평생 지속될 유대가 시작된다. 이 유대관계로 ‘생명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갈 것이다.
시선이 미치는 곳마다 수백 마리의 새가 공중을 오가고 있지만 날갯짓하는 모습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알바트로스는 바람과 중력의 두 거대한 힘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면서 힘 안 들이고 여유 있게 하늘을 난다.
바람은 알바트로스를 날게 해주는 엔진이지만 강렬히 내리쬐는 햇빛과 무섭게 쏟아지는 우박 폭풍, 눈발과 함께 부는 강풍 같은 변덕스런 날씨를 해안으로 몰고 오기도 한다. 시속 80km의 강풍 속에선 숨쉬기도 힘들다. 알바트로스는 인간이 감히 흉내도 못 낼 초연함으로 이런 거센 바람을 견뎌낸다. 바람막이는 없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마음속에서 피난처를 찾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