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나팔리 해안
글 : 조엘 K. 본 2세 사진 : 다이엔 쿡, 렌 젠셸
오색찬란한 빛으로 둘러싸인 카우아이 섬의 거친 나팔리 해안. 태평양 한가운데에 떠 있는 안식처이자 막대한 관광수입을 안겨주는 보물단지 같은 존재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샹그릴라로 가는 여정은 짧아야 하지 않을까. 신비로운 길을 걷다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아름답고 그윽한 비밀의 계곡에 이를 것만 같다. 하지만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에 있는 이 길은 평범한 쿠히오 고속도로다. 구불구불한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가면 섬의 북쪽 연안에 있는 진흙투성이 주차장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이어진 케에 해변 모래사장 너머에는 푸른 태평양에서 솟구친 나팔리 해안의 절벽이 속세의 범접을 거부하는 듯 버티고 서 있다.
하지만 고립된 낙원은 아름다운 환상일 뿐이다. 미지의 샹그릴라와 달리 나팔리는 카우아이 섬 관광지도에 빠짐없이 표시되어 있다. 본지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1960년도 잡지에 90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숨어 있는 울창한 계곡을 찍은 사진 한 장을 실어서 이런 절경에 목말라 있던 세대에게 보여줬으니 말이다.
뒤이어 많은 인쇄·영상 매체들이 이곳을 다뤘고 사람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어떤 관광객은 바다가 잔잔한 여름에 카약을 타고 와서 25km에 걸쳐 이어진 해식동굴이나 주름진 절벽, 들쑥날쑥한 해변을 돌아보고 어떤 이들은 아무리 거친 파도도 타고 넘을 수 있는 고무모터보트로 ‘극한 모험’을 즐긴다. 대부분은 ‘쥬라기 공원’ 영화에 찍힌 풍경을 보려고 한 시간짜리 헬기 관광을 하며 상공에서 섬을 내려다본다. 나팔리는 ‘킹콩’, ‘남태평양’ 등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몸과 마음이 젊은 사람들은 칼랄라우라 불리는 가장 큰 계곡까지 18km 길이의 좁고 험한 비탈길을 걸어가서 야영 기간으로 허용된 5일을 넘겨 몇 주, 심지어 몇 달 동안 그곳에 머물기도 한다.
나팔리의 장관을 보겠다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사실 이 대지의 드라마는 수백 년 전에 시작되었다. 나팔리 해안은 한때 해저에서 정상까지 8km 높이에 달했던 오래된 순상화산의 산어깨 부분이다. 여느 하와이 섬들처럼 카우아이 섬도 마그마가 분출되는 지점인 열점 위에 생긴 화산섬이다. 지각 변동으로 섬이 열점 밖으로 밀려나자 화산은 식고 대지의 조각가, 물이 이곳을 장악했다. 연강수량이 거의 2만 5000mm에 달하는 곳도 있을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깊은 계곡이 생기고 하얀 물거품이 이는 폭포가 절벽을 뒤덮었다. 해수면이 오르내리면서 거센 겨울 파도가 현무암 절벽에 부딪혀 가파르고 거친 비탈이 형성됐다. 그렇게 해서 이곳에 오늘날의 깊숙한 계곡과 주름진 절벽이 생기고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솟은 산벼랑이 태평양보다 1000m 높은 곳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크고 작은 영상 매체에서 나팔리는 지상 낙원의 대명사가 됐다.
옛 하와이인들에게 이곳은 고기를 잡고 계단식 토란밭을 일구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해안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계곡 중 하나인 누알롤로 카이에 가면 이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배를 타야만 접근할 수 있는 이곳은 돌담과 제단, 집터와 카누 창고, 수많은 무덤 등 사람이 적어도 600년 이상 머물며 생활한 흔적으로 점철되어 있다.
하와이에는 신과 조상들이 만물에 ‘마나’라는 영적인 힘을 불어넣었다고 믿는 전통이 있다. 누알롤로 카이에 깃든 마나는 실로 강력해서 지구 반대편에서 찾아온 방문자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곳을 관리하는 하와이 국립공원 소속 고고학자 앨런 카펜터는 “이런 느낌을 하와이에선 ‘닭살’이라고 부릅니다”라고 한다. “난 여기 올 때마다 닭살이 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