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제국
글 : 마거릿 델 주디체 사진 : 네우샤 타바콜리안
페르세폴리스 변방에서 진상품을 올리려고 찾아온 고관대작들은 다리우스 대제(BC 522~486년)가 세운 초강대국 페르세폴리스의 위용에 압도되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이란 남부 페르세폴리스 유적, 알렉산더 대제가 점령하면서 불태워버린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를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발견된다. 남아 있는 석벽에 폭력적인 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없다는 것이다. 군인들의 모습은 보이지만 싸우고 있는 광경은 아니다. 무기도 등장하지만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장면은 없다. 부조에 새긴 형상에선 자애로운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평화롭게 모여 선물을 들고 있거나 서로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고 있다. 야만이 판치던 시대에 페르세폴리스는 사해동포주의가 배어 있는 ‘글로벌’ 도시였던 것 같다. 오늘날 이란 사람들에게 그들의 조상이 누구였으며, 어떤 일을 했는지 환기시켜주는 감동적인 역사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2500년의 역사를 지닌 이란은 1979년 보수적인 성직자들이 서방의 지원을 받는 국왕을 몰아낸 혁명을 계기로 오늘날 이슬람 공화국이 되었다. 이는 현대사에서 제정일치 국가를 수립한 세계 최초의 사례로, 야심찬 실험이었다. 과연 이처럼 풍성한 역사를 간직한 민족을 극단적인 회교율법으로 다스릴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효율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할까?
페르시아는 대제국을 건설한 정복 국가였지만 고대 역사에선 드물게 영화롭고 어진 문명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오늘날 이란인들이 석벽 조각에 담긴 역사를 그들의 정체성과 얼마나 결부시키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란인에게 ‘페르시아’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두 차례 이란을 방문했던 지난해만 해도 이란은 국제사회가 기피하는 나라였다. 서방세계는 이란을 악마로 묘사하는 영화들을 찍어냈고, 이란 지도자들을 핵무기를 만들어 세계를 위협하려는 테러분자로 간주했다.
이란인이 누구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어찌 보면 얼마간 페르시아인이고, 또 어찌 보면 무슬림이며, 얼마간은 서구인이다. 페르시아인의 정체성은 어떤 면에선 이슬람과 전혀 관계가 없지만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기도 하다. 페르세폴리스에 가면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가 기도 시간을 알리는데, 이럴 때면 관광객들은 페르시아 왕국의 땅인 동시에 이슬람 공화국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기사는 일부 나마 페르시아의 뿌리를 간직하고 있는 이란인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금욕과 기도, 그리고 때로는 숙명론을 요구하는 이슬람 문화 뒤에 포도주와 사랑, 시, 노래로 삶을 즐겼던 페르시아인의 기질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