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탈출기
글 : 톰 오닐 사진 : 창첸치
북한 탈출혹독한 고향 땅을 탈출한 탈북자들에게 중국을 가로질러가는 3000km 넘는 위험천만한 여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국경을 무사히 넘고 나면 이들은 전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1월 어느 날, 북한 국경에서 16km 떨어진 중국 옌지의 한 허름한 아파트 3층 문 밖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던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 이 소리에 젊은 여자 둘은 급히 뒷방으로 몸을 숨기며 벽에 바싹 몸을 붙인 채 쭈그려 앉았다. 잠시 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탈북 여성들은 최악의 상황을 예상한 듯 머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신분증이 없다는 사실이 중국 공안에 발각되면 수갑과 쇠사슬에 묶여 북으로 강제 송환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노동수용소에서 수년간 중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두 여자에게 강제로 인터넷 화상 채팅을 시켰던 조선족 업주도 이들을 찾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레드와 화이트(중국 공안에게 검문당할 상황에 대비해 취재 수첩에 두 여성의 이름을 가명으로 적음)는 방 안에 갇혀 인터넷 상에서 음담패설을 나누고 한국 고객들이 원하면 카메라 앞에서 옷까지 벗으며 포로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바로 전날 밤,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탈출해 이 은신처까지 오게 됐다.
노크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안에 누구 없어요? 문 좀 열어요.” 남자가 소리치자 화이트가 어제 자신을 구출해준 선교사의 목소리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얼른 달려가 문을 열었다. 문 밖에 마른 남자 한 명이 전기밥솥과 쌀 한 자루를 들고 어색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그는 “배고프죠?” 하며 말을 건넸다. 여자들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그를 부엌으로 안내했다. 곧이어 이야기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곧 떠나야겠어요. 방금 전화가 왔거든요.” 그는 말했다.
현재 이들처럼 중국에 숨어 지내는 탈북자의 수가 약 5만 명에 이른다. 그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 대부분은 1450km에 이르는 국경 주변 외딴 마을과 도시에 숨어 지낸다. 그 수는 알 수 없지만 몇 개월만 중국에 몰래 들어와 지내다가 식량과 돈을 구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다수는 끔찍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 싫어서 중국에 계속 머문다. 이들에게 남은 선택이라고는 두 가지뿐이다. 계속 숨어 지내든지 아니면 이른바 ‘지하철도’ 여정에 나서든지 해야 한다. 탈북자들의 탈출 경로를 일컫는 ‘지하철도’는 도보나 차량, 기차를 이용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위험천만한 여정이다. 검문소, 밀고자, 험난한 지형 등 도처에 버티고 있는 장애물 때문에 무수한 탈북자들이 체포됐다. 그러나 1만 5000여 명의 탈북자들은 몇 안 되는 인권운동가들이나 대가로 350만 원 이상을 요구하는 브로커들의 도움으로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대부분이 한국행을 선택한다. 탈북 과정에서 정신적 충격을 겪은 데다 변변한 기술도 없는 이들은 새로운 곳에서 또다시 최대 난관에 봉착한다.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