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유랑민
글 : 존 랭커스터 사진 : 스티브 매커리
현대화 물결에 정체성을 위협당하는 인도의 8000만 유랑민들. 지금은 수백 년 이어온 전통을 근근이 지켜나가고 있지만 전통도 공동체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인도의 유랑민 집단 가둘리아 로하르. 이들에게도 찬란히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로하르의 조상은 7세기 무렵부터 인도 북서부에서 왕조를 이루고 크게 번성한 라지푸트 족으로 힌두왕들의 갑옷을 만들던 사람들이다. 오늘날 이들의 후예는 인도의 작은 마을 변두리에 허름한 대장간을 차려놓고 쇳조각으로 보잘것없는 세간을 만들고 있다.·따스한 2월 어느 날,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 주에 있는 로하르의 천막촌에 도착했다. 선물을 주면 아무래도 안면을 트기 쉬울 것 같아 비누도 잔뜩 챙겨왔다. 그런데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달려들어 가방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가방이 찢어져 비누가 땅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 욕설이 오가고 앞다투어 비누를 줍느라 팔들이 뒤엉킨다. 결국 아이 하나가 울면서 소동은 막을 내렸다.
이날의 소동은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인도 아대륙을 떠돌아다닌 유랑민의 수난사를 축약해 보여주는 사건 같아 씁쓸했다. 유랑민 집단 중에서 가둘리아 ‘로하르’(힌두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수레를 뜻하는 ‘가디’와 대장장이를 뜻하는 ‘로하르’를 합친 말)가 제일 잘 알려진 편이다. 두툼한 터번을 두르고 낙타라면 모르는 게 없는 ‘라바리’는 가축을 몰며 인도 서부 전역을 돌아다닌다. 사냥꾼과 식물 채집꾼도 있다. 소금 장수, 점쟁이, 마술사, 아유르베다 치료사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유랑민도 있다. 광대, 곡예사, 숫돌쟁이, 이야기꾼, 뱀 부리는 사람, 수의사, 문신 그리는 사람, 바구니 짜는 사람도 있다. 인류학자들이 인도에서 확인한 유랑민은 약 500개 집단, 8000만 명에 이르는데 이는 10억이 넘는 전체 인구의 약 7%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