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을 하는 이유
글 : 피터 그윈 사진 : 마르코 그롭
탐험가들은 왜 다른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에도 위험에 맞서 탐험을 계속하는 것일까?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의 그랜드캐니언을 끝에서 끝까지 둘러보는 전례 없는 탐사를 시도한 이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미국의 호황기였던 금박시대의 모험가를 연상시키는 근사한 외모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지질학자 존 웨슬리 파월은 키 168cm에 짧고 뻣뻣한 모발과 가슴까지 내려오는 담뱃진이 묻은 지저분한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의 재킷 오른쪽 소매는 텅 비어 있었는데 미국 남북전쟁 당시 ‘샤일로 전투’에서 총탄에 맞아 오른팔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쟁 후 기나긴 로키 산맥을 조사하고 적대적인 아메리카 원주민 무리들과 어울려 살며 뗏목을 타고 그린 강과 콜로라도 강을 건너고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미로 같은 세계에서 가장 큰 협곡계 중 한 곳을 탐험했다.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팔이 하나뿐인 이 연약한 교수가 왜 당대에 가장 위험한 일부 탐험에 나섰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사실, 1888년 1월 13일 미국 워싱턴 DC의 ‘코스모 스 클럽’에서 파월과 자리를 함께했던 32명에 대해서도 똑같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파월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대부분 미지의 황무지로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섰다. 그들 중에는 남북전쟁과 아메리카 원주민 전투의 참전 병사들, 해군 장교들, 등반가들, 기상학자들, 공학자들, 동식물학자들, 지도 제작자들, 민족학자들도 있었고, 시베리아를 횡단한 경험이 있는 기자도 한 명 있었다. 이들은 북극에서 고립되기도 하고 험악한 바다 날씨도 이겨냈으며 야수의 공격과 눈사태에서 살아남았으며 극한의 굶주림을 견뎌내기도 했으며 오지를 여행할 때 찾아드는 영혼을 짓누르는 외로움과 싸워 이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그날 저녁 모여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를 설립하고 ‘인류의 지리 지식 증진과 확산을 위하여'라는 이 새로운 조직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미지의 땅으로 힘겨운 탐험에 나서야 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그들의 정신은 그보다 거의 20여 년 전 파월이 콜로라도 강을 탐험하는 동안 적었던 일기의 한 구절로 요약될 수 있다. 파월이 이끄는 원정대가 작은 배로 급류를 타고 폭포를 지나는 등 무시무시한 낙하를 몇 차례 하고 나자 대원들 중 3명이 탐험을 중단하고 협곡을 타고 빠져나가 사막을 횡단하는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탐험을 계속하지 말라고 간청했고 이곳을 탐험하는 일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탐험이 거의 다 끝나가는데 탐험을 다 마치지 않는 것, 즉 내가 탐험할 수 없는 지역이 아직 더 남아 있다는 말을 나는 결단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탐험을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파월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