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운하 주변의 삶
글 : 예룬 윤테 사진 : 크리스 토알라 올리바레스
400여 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 당국은 원형 운하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 기념비적인 환경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아침 이슬이 수면에 맺힌 채 움직임이 없다. 이런 이른 시각의 정적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에 좁은 운하는 차들과 모터스쿠터, 자전거들로 꽉 막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버려진 영화 촬영장처럼 썰렁하다. 우리가 탄 배에서는 운하 주변의 집들은 더 웅장하고, 나무들은 더 높으며, 다리들은 더 넓어 보인다. 부두에 부딪혀 밀려나는 잔물결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고요하다.
요란하게 물을 튀기며 물속에서 지렛대가 나타나면 정적은 사라진다. 요즘 쓰레기 수거용 배가 운하에서 건져 올리는 내용물에는 녹슨 자전거, 갈색 얼룩이 진 쇼핑 카트, 그리고 쓰레기 잔해들이 튀어나온 진흙 덩어리 등이 섞여 있다. 쓰레기는 굉음을 내며 투입구로 사라지고 고인 물에서 나는 냄새와 배의 모터에서 나는 디젤 매연이 뒤섞여 고약한 냄새가 진동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운하의 수질을 감독하는 워터넷 사의 마르텐 오보테에 따르면 5척의 배가 운하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떠다니는 쓰레기를 수거한다. 이 배들은 자전거 30~40대를 포함해 매일 3000kg이 넘는 쓰레기를 수거한다. “냉장고와 가구, 심지어 동물 사체도 볼 수 있어요.”
암스테르담은 말 그대로 물 위에 건설됐다. 1300년경 암스테르담은 제방에 세워진 소규모 정착지로 주민이라고는 1000여 명에 불과했다. 이곳은 도랑, 습지, 작은 호수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무역에 능했고 강과 북해 사이에 있는 유리한 입지도 이 도시가 급성장하는 데 한몫했다. 중세 말을 기해 발트 해 주변 지역들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이들 지역은 암스테르담의 주요 교역 상대가 됐다. 암스테르담은 유럽 내 곡물과 목재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17세기에는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에 해당하는 동인도제도와 실론과도 수익성이 좋은 향료 무역을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