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우주 시대
글 : 샘 하우 베르호벡 사진 : 댄 윈터스
지난 수십 년간 우주여행 분야에서 아무런 발전도 없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침내 탐사와 이권 경쟁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우주여행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50년 전 7월, 인간이 달에 발을 디뎠을 때 이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 중 하나였다. 그 이유가 단지 인간이 최초로 다른 세계에 간 일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인 성취에 속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한 그 일이 당시 초강대국이던 두 나라의 절정으로 치달은 경쟁을 보여줬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 일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강대국들의 경쟁이 끝났다는 것도 아니고 그때까지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획기적인 성과를 달성했다는 것도 아니었다. 이 성과는 시작에 불과했다. 인류가 탐사하고 심지어 거주할 수도 있는 장소에 대한 인류의 시각이 새롭게 바뀐 것이다. 우리는 대지를 누비던 종으로 시작해 바다를 항행하게 되면서 지구 전역으로 행보를 넓혔고 동력 비행을 통해 하늘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대기권까지 정복했다. 이제 우리는 숙명에 따라 광활한 새로운 세계에서 개척자의 길을 가야 했다. 우리는 우주여행자였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행성을 누비는 종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지구인’이라는 말은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호가 달에 내려앉은 1969년 7월 20일의 환희와 경이감에 휩싸였던 분위기에서도 이 모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전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곧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국장 토머스 O. 페인은 화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막연한 목표가 아니라 당 시 본지에도 게재됐듯이 이 목표에 대한 상세한 일정표를 제시했다. 출발: 1983년 10월 3일. 원자력 로켓으로 발사되는 75m짜리 우주선 두 대에 12명의 승무원이 나눠서 승선. 화성 궤도 진입: 1984년 6월 9일. 80일간 화성 표면 탐사. 지구 궤도로 귀환: 1985년 5월 25일. 달에 도달한 것으로 우리는 실제로 더 먼 우주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와, 당신네 미국인들이 해냈군요’라고 하지 않았어요. 어디서든 사람들은 ‘우리가 해냈어요!’라고 했죠. 우리 인간이, 우리 인류가, 우리가 해낸 겁니다.” 아폴로 11호의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는 이렇게 회고했다.
동이 트려면 아직 몇 시간 더 있어야 한다. 카자흐스탄 남부의 외진 스텝 지대에서 내가 탄 버스가 수 킬로미터의 개방된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이따금씩 버스의 전조등 불빛이 색이 바랜 거대한 벽화나 군데군데가 부서진 모자이크 타일을 비춘다. 양식화된 이 미술품들은 뜨거운 여름과 혹한의 겨울이 얼마나 가혹했는가를 보여준다. 녹슬고 버려진 거대한 건물들에 장식돼 있는 이 작품들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인 소련이 수십 년간 추진해온 우주 계획의 영광을 기린다.
수 킬로미터를 달린 후 버스는 출입문이 있는 길로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허름한 대형 건물 앞에 멈춰 선다. 이곳은 분명 버려진 건물은 아니다. 위장복 차림에 무장한 러시아인과 카자흐스탄인 경비원들 이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듯하다. 이곳은 사방이 투광조명등으로 훤하게 밝혀져 있다. 이 격납고 안에는 새 로켓이 어슴푸레한 빛을 발하고 있다.
나는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 와 있다. 달 착륙 50주년 기념일을 곧 앞둔 이 시점에 이곳은 지구에 서 인간이 우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주로 날아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지구 상공 약 400km에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이다. 그곳은 달까지 거리의 1000분의 1에 불과한 지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