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폭발한 그날
글 : 샘 킨 사진 : 파올로 베르초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손꼽히는 베수비오산 대분화는 단 한 번으로 끝난 재앙이 아니었다. 화산 인근의 세 정착지가 서로 다른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서 고대 로마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뒤흔들리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바깥세상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탈리아 나폴리만 수면 위에는 잿빛 부유물이 두껍게 쌓여갔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고대 로마 도시 오플론티스의 해안가 창고 안에서 약 60명의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다급히 챙겨 온 금화와 보석 등 가문의 재산을 꼭 쥐고 있는가 하면 평범한 쇠 연장 외에는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도 있었다. 한 젊은 여성은 뱃속의 태아를 걱정하며 불룩한 배를 감싸안고 있었다. 나이도, 신분도 제각각이었지만 이들이 저장실에 모여든 이유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끝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구조선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AD 79년 그날 벌어진 일은 하나의 사건, 즉 베수비오산의 분화로 시작됐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폼페이를 비롯해 화산 아래에 있던 각각의 정착지는 화산과의 거리, 화산 분출물이 도달한 시기와 속도,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재앙을 맞았다. 운 좋게 탈출에 성공한 사람도 소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사망했다. 상업 중심지였던 폼페이는 대체로 화쇄류로 인한 피해는 피했지만 바람에 실려 온 화산력이 3m 두께로 쌓이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후 시신 주위로 두껍게 쌓인 화산재가 굳으면서 빈 공간이 생겨났는데 수 세기 후 그 공간에 석고를 부어 죽음의 순간을 그대로 간직한 유명한 주조상들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부유층의 해안 휴양지였던 헤르쿨라네움은 화산력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화쇄류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 결과 파피루스 같은 유기물이 탄화됐고 도시는 약 20m 두께의 돌더미에 파묻혀버렸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사이에 자리한 오플론티스는 두 재앙을 모두 겪었고 그로 인해 정교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저택은 물론이고 수십 명에 달하는 희생자들의 유골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저장실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설령 구조선이 도착할 수 있었다 해도 창고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약 9m 두께의 화산 잔해 아래 파묻힌 상태였을 것이다. 그들은 이후 거의 2000년 동안 그 자리에 묻혀 있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건강, 충만한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간 활기 넘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