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기 없는 차보의 수사자
사자에게 제왕의 권위를 부여하는 갈기. 그런데 케냐 차보의 수사자들에게는 갈기가 없다. 이들을 둘러싼 신비를 벗겨본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현 단계에서는 적외선 카메라로 수사자들을 좀더 연구해보겠다는 것이 페이턴의 생각이다. 우리는 캠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은돌롤로 근처에서 큰 사자 무리를 발견했지만 암사자와 새끼와 젊은 사자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다 자란 수사자 한두 마리가 무리를 이끄는 게 보통인데 말이다. 어느 날 아침, 페이턴은 나를 데리고 다 자란 녀석들을 찾아 나섰다.우리는 4륜구동차를 타고 칸데리 습지와 보이강에 면한 울퉁불퉁한 길을 덜컹거리며 달려 덤불이 많지 않아 앞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갔다. 페이턴이 테이프를 틀자 소름끼치는 하이에나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고 우리는 쌍안경으로 주위를 살폈다.
"어머나!" 갑자기 페이턴이 놀라서 외마디를 지르는 순간, 하이에나 울음소리에 화가 난 코끼리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코끼리 아홉 마리가 관목들 사이에서 우리의 오른쪽으로 돌진해오는 중이었다. 코끼리 특유의 뻣뻣한 걸음걸이로 새끼 코끼리 세 마리와 젊은 코끼리 두 마리를 대동한 어미 코끼리 네 마리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놈들의 귀는 강풍에 휘날리는 돛처럼 펄럭였고 코는 위로 치켜 올라갔으며 엄니는 이른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녀석들과의 거리는 기껏해야 100m밖에 안 됐는데, 그나마도 2초 정도면 절반으로 줄어들 거리였다. 이때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어미 코끼리가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겁주기는 이 정도로 끝내겠다는 신호였다. 이제 어미 코끼리는 단 하나의 끔찍한 목적을 갖고 우리를 향해 똑바로 다가왔다. 녀석의 엄니면 4륜구동차의 얇은 알루미늄 차체쯤은 간단히 뚫을 수 있고, 다른 녀석들이 약간만 도와주면 차를 뒤집어엎은 뒤 맥주캔처럼 납작하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이때 페이턴이 존경스러울 정도로 침착하게 녹음기를 끄고 시동을 걸더니 도로 사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속도는 그다지 나지 않았다. 대장 코끼리가 무리를 이끌고 우레같이 큰 소리를 내며 우리가 주차해 있던 곳에 들이닥쳤을 때 우리는 그리 멀리 도망가지 못한 상태였다. 여덟 마리는 거기서 추격을 중단했지만 대장 코끼리는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게 몸을 돌려 속도위반 차량을 쫓는 교통경찰처럼 우리 쪽으로 내달렸다.
마침내 대장 코끼리는 우리를 쫓아내 만족했는지 추격을 멈추고 작별의 울음소리를 낸 다음, 마지막으로 큰 머리를 한 번 치켜들더니 몸을 돌려 무리에게로 돌아갔다. 우리는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코끼리떼를 지켜봤는데,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차분한 모습이었다. 녀석들은 밝은 오렌지색에서 살구색으로, 그리고 다시 담황색으로 물들어가는 동쪽 하늘을 배경으로 근엄하게 행진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