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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인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들이 3000 년 동안 지중해 해상 무역을 장악했다는 것을 안다. 이제 DNA 테스트와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페니키아의 유산이 고대 세계와 우리의 시대에 갖는 의의가 드러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나는 페니키아인입니다." 한 청년이 자신은 2000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진 페니키아인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적어도 내가 페니키아인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 조상들은 이곳에서 수세기 동안 어부와 선원으로 살아왔죠." "좋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진짜 페니키아인을 상대로 실험을 할 수 있게된 셈이군요." 미국인 유전학자 스펜서 웰스가 말했다. 레바논 비블로스에 있는한 식당의 베란다에 자리잡고 앉아 있는 웰스는 그 젊은 남자의 팔에 지혈대를 감고 있다. 비블로스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고대 석조유적 도시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도착하기는 했지만, 피에르 애비 사드라는 이 청년은 베일에 가려진 페니키아인의 정체를 밝히려는 이 실험에 열성적이다. 사드는 지원자들과 함께 식당 차양 아래에 놓인 탁자에 빙 둘러앉아 있다. 지원자들은 어부와 상인, 택시 운전사들이다. 약간 마른 체격에 외향적인 성격을 지닌 웰스(34)는 사드를 비롯한 실험 참가자들을 설득해 혈액 표본을 채취하게 됐다. "혈액으로 뭘 알 수 있죠?"라고 사드가 묻자 웰스가 대답한다."여러분의 혈액에는 DNA가 들어 있는데, 이것은 역사책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곳 비블로스에는 수없이 다양한 민족이 도래했는데, 여러분의 혈액 속에는 그들이 남긴 흔적이 숨어 있어요. DNA를 분석하면 수천 년 전 여러분의 조상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웰스는 고대인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개발한 이 새로운 연구기법의 효과를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옆에 서 있는 안경 낀 동료 연구원도 마찬가지다.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피에르 잘루아(37)는 자신의 레바논 혈통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과학자다. 이 둘은 이번 실험으로 오랜 세월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페니키아인들의 정체에 대해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길 고대하고 있다. 페니키아 민족은 고대 문헌에 뛰어난 상인이자 뱃사람으로 심심찮게 등장하지만,실제로 이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다. 역사가들은 문화를 기준으로 기원전 1200년 이전의 페니키아인들을 가나안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에서 들여오는 자줏빛의 고급 옷감 때문에 페니키아인을 '붉은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포이니케스'라고 불렀다. 페니키아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페니키아인들이 스스로를 '페니키아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비블로스, 시돈, 티레와 같이 자신들이 출항하는성곽도시의 시민이었던 것이다. 후세에 페니키아 문화라고 칭하게 된 문화는 기원전 3000년경 레반트에서 번창했다. 이 해안 지역은 현재 레바논과 시리아, 이스라엘로 분할되어 있다. 기원전 9~6세기에,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를 장악하며 거대 상권을 형성하고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당시 세력 범위가 동쪽으로는 키프로스, 서쪽으로는 에게 해,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스페인에 이를 정도였다. 그들은 외지에서 들여온 값비싼 금속, 포도주, 올리브유 같은 물품들을 거래하며 부를 축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교역 품목은 레바논산 삼나무로, 페니키아 본국 해안에서부터 가파르게 솟아오른 산속에는 삼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잘 부서지는 파피루스에 기록된 페니키아 저작물들은 대부분 소실됐다. 따라서 오늘날 페니키아 관련 지식은 당시 페니키아의 적들이 기록한 사료에 기초한 것이라 편향된 내용일 수밖에 없다. 페니키아인들은 왕성한 저작활동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모두 한 줌 재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말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용되는 알파벳을 실제로 고안하여 다른 나라와 교역하며 널리 전파한 민족이 바로 페니키아인들이기 때문이다. 페니키아인은 현재 시리아와 이라크에 해당하는 강력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왕국에서 에게 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사상, 신화, 지식 등을 널리 전파하며 문화의 중계자 역할을 했다. 그들이 전파한 사상은 그리스에서 꽃을 피우며 문화 부흥을 촉발했으며 다시 그리스 문화의 황금시대로 이어졌다. 이렇게 하여 서구 문명이 탄생한 것이다. 페니키아인들이 이집트에서 수입한 파피루스의 양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고대 종이의 명칭을 페니키아 최초의 거대 항구인 비블로스에서 따 왔다. '책'이라는 뜻의 '바이블(성서)' 또한 비블로스에서 파생된 말이다. "페니키아 문명은 유령이 되어 사라져 버렸어요."라고 웰스는 말한다. 웰스와잘루아는 또 다른 '알파벳', 즉 DNA라는 '문자'를 이용하여 사라진 페니키아 문명을 되살릴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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