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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시리아의 왕실 무덤

고고학자들은 시리아의 한 왕궁 아래에서 고대의 왕들이 죽은 사람들과 식사를 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카트나의 이단다 왕은 적의 임박한 공격에 직면했다. 전차 궁수들과 칼과 도끼로 무장한 보병들로 구성된 대군이 시리아 서부에 있는 그의 도성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약 350년 동안 카트나는 슬기로운 동맹체제 덕분에 당나귀 대상들이 지나는 교차로에서 부유한 교역의 중심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BC 1340년경 카트나 같은 작은 왕국은 주변국들의 침략을 받게 됐다. 북쪽의 히타이트인, 인근 미타니 왕국의 후르리인 그리고 남쪽의 이집트인 모두 시리아를 손에 넣으려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어떤 군주는 이단다 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절망하지 마시오! 내 당신을 지켜주리다!" 다른 동맹 군주는 또 이렇게 격려했다. "내가 갈 때까지 카트나 시의 방어를 강화하기 바라오." 이에 이단다 왕은 장군들에게 4km에 이르는 카트나의 성벽들을 요새화하라고 이르고 금속공들에게 명령을 내려 1만 8600개의 청동검으로 군대를 무장했다. 그런 다음 왕은 당대 사람들이나 이해할 법한 일을 했던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믿고 있다. 그는 다가오는 적군을 뒤로 하고 죽은 조상들과 함께 음식을 나눴다. 음력 그믐날, 초승달이 뜰 무렵이었다. 이날은 이승과 저승이 가까워진다고 믿던 날이었다. 왕궁을에워싼 도성의 여러 가정에서는 날이 어둑해지자 그 당시로서도 오래된 전통에 따라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안전한 집 안에 모였다. 각 가정에서는 장남의 주재로 '키스품'이라고 하는 제사를 지내며 조상들에게 음식을 바치면서 복을 내려 주길 빌었다. 왕궁 깊은 곳에서 이단다 왕은 지하에 있는 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가 장손이자 왕위 계승자인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내려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왕과 사제들, 그리고 왕실가족들이 기름등과 횃불 몇 개를 들고 창문 하나 없는 비밀 복도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복도 끝에서 왕과 수행원들은 목제 사다리를 타고 작은 층계참으로 내려간 다음, 다시 다른 사다리를 이용해서 지하 3층에 있는 부속실로 내려갔다. 사제들이 음식이 든 그릇들을 손에서 손으로 통로를 따라 아래로 전달했다. 굴 속처럼 캄캄한 부속실은 곧 궁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단다 왕은 목제 관대(棺臺) 위에 있는 유골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며 바위를 깎아 만든 네 개의 방으로 된 무덤 안으로 길을 인도했다. 사제들이 우유와 맥주를 따르고 소고기와 양고기, 곡물과 소금, 버터를 제물로 바쳤다. 이단다는 사자들인 그의 부모와 조부모, 증조부, 고조부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먼 조상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방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긴 석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부왕을 시작으로 조상들을 불렀다. 당시 사람들은 일단 부름을 받은 조상들의 영혼이 무덤 뒤쪽 방에 있는 침대에 와서 눕는다고 믿었다. 이단다 왕이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근동지역 전역에서 복원된 고대 문헌에서 비슷한 글들이 발견된다. "오시옵소서! 이 음식들을 드소서! 이것을 마시옵소서! 그리고 카트나의 왕 이단다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그런 문서 조각들을 통해 학자들은 BC 3000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수천 년 동안, 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그리고 이스라엘인이 살던 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상 숭배가 국가와 가정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위에 올라 왕국을 다스리거나 단순히 가정을 이끌고 집과 토지를 상속 받거나 간에 키스품 의식의 수행은 장남이 아버지의 후계자라는 표시였다. 또 산 자와 죽은 자를 상호의존적 관계로 묶어 주는 의식이기도 했다. 죽은 자들은 산 자들로부터 음식과 마실 것을 얻어야 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들과 신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조상의 축복이 없으면 가족들이 질병과 불임, 빈곤에 시달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죽었을 때 잊혀지는 가장 불행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것은 혼령을 기쁘게 하고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어쩌면 임박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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